새롭게 시도하는 매거진 [익숙한 명제의 재해석]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관념에 대해 지담이 '이건 아닐걸?' 의문과 반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저 저의 사고수준이 여기까지인지라 너그러이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꽃길만 걸어라!
내가?
내가 꽃길만 걸으려면
누군가는 흙길만 걸어야 할텐데?
우주는 조화와 질서를 위해 그리 할 수밖에 없을텐데?
꽃길을 걷는 내 발밑은 흙길인데?
나는 흙을 밟아야만 꽃길을 걸을 수 있는데?
억수같은 비로 진흙투성이의 흙길이면?
지독한 가뭄에 공기중 수증기라도 갈라진 그 틈새로 들어가야 할텐데 내 발이 그 틈을 막으면?
그러다가 혹여 아직 꺼지지 않은 생명 부여잡은 미물하나 내 발밑에 놓인다면?
꽃길만 걸으라 하는데
나는 조심스럽고 무섭고 안스럽다.
대지가, 토양이, 흙이 하는 일에 내가 괜한 훼방을 놓을까 싶어서...
꽃길은 흙길이다.
꽃의 에미는 토양이다.
에미의 희생없이 그 어떤 것도 세상에 탄생할 수 없다.
꽃은 대지의 희생으로 꽃이 되었고
자기 목을 떨구며 다시 대지로 삶을 되돌린다.
꽃길만 걸으라 내게 명한다면
꽃 한송이 피우기 위해 자연이 희생한 가치를 가슴에 품으라,
꽃을 피우기까지 아파했던 고통의 시간을 내 시간속에 담으라,
꽃망울이 터지는 화려함 직전의 설레임에 고개숙여 경외하라,
곧 떨어뜨릴 씨앗의 생명을 간절하게 염원하라,
다시 에미의 품으로 되돌린 또 다른 생명을 온 정성담아 자연의 손에 맡기라,
거대한 우주의 질서에 제 몫 다하고 목 떨구는 한 생명의 최후에 무릅꿇어 감사하라,
그리하여
한 생명이 전생애에 걸쳐 애쓴 오성(五性)이
장렬하게 씨앗을 떨구며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는 이성에 힘을 보탤 때
나 역시 이 모든 순환에서 다를 바 없음을 스스로에게 명하는 것이다.
꽃길만 걸으소서...
그렇게 지독하게 흙을 밟으소서...
그리하여 자연의 하나로 살게 하소서...
그런대로 화려한 인생, 지금 내 발밑에 무엇이 닿아있는지 알게 하소서...
그런대로 행복한 인생, 내 발밑에 무엇을 닿게 해야 할지 깨닫게 하소서...
이리하여 나는 꽃길만 걸을 것이다.
그 길에서 내 발을 더럽히는 흙의 지나친 장난에도 기꺼이 감사할 것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미물들도 호들갑떨며 반가이 사랑할 것이다.
그 길에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눈길 한번 더 주며 공손한 인사를 건넬 것이다.
그 길에서 생의 진리에 따라 나 역시 작은 미물에 지나지 않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꽃사이를 스치며 내가 걷는 이 길은
흙속에 뿌리를 깊게 빠뜨릴수록 강인하면서도 화려한 자신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지는 꽃에 남아있는 향기마저도 한때 뿜어내던 짙은 향기못지 않게 소중한 인생이라는,
뿌리째 뽑혀 버려진 꽃마저도 자신을 탄생시킨 토양에 온몸붙여 마지막 힘을 다 쏟는 애잔함이 인생이라는,
자기만의 색, 향, 모양새로 꽃밭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일체(一切)를 위한 조화에 내 몫하며 잘 살아낸 인생이라는,
자칫 모르고 살 뻔한 내게 꽃같은 삶의 길을 알려주는 사유의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