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다.
처음엔 새벽 4시부터였고 지금은 조금 더 당겨진 새벽, 매일 2시간 이상 새벽독서를 실천한지 1000일을 훌쩍 넘기고 지금은 글쓰기까지 보태어 나의 새벽은 더 다채로워졌다. 나는 나를 탐구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고 'ㅅ'으로 시작되는 3가지, 삶, 사람, 사유(사유하는 사람으로 사는)를 최고의 쾌락으로 즐기며 일상을 보낸다. 이로써 나는, 나의 남은 생을 관조할 수 있는 몇가지 관점을 갖게 되었기에 이를 하나씩 기록해 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 10번째,
나는 나무인 것 같다.
아니, 저 먼 시선이 나를 볼 때 나는 나무겠지.
무한정 베푸는 숲의 울창한 기운 속에서
자연의 양기 듬뿍 받으며
하늘 향해 쑥쑥 커나가는 나무.
나는 나무다.
썩어가는 한쪽 가지, 너덜대는 이파리들.
들러붙는 파리떼에
딱따구리가 쪼아대고
새들이 자기집짓느라 내 가지를 마구 꺾고
네발달린 생명체가 내 온몸에 구멍을 만들고
심지어 날아드는 온갖 해충까지 들러붙어도
나는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온종일 햇살향해 아파도, 힘들어도,
그저 하늘 있는 곳으로 나를 키우는 것밖에 할 게 없는,
나는 나무다.
바람타고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나는 동(動)할 수 없이 늘 정(停)해야 하니
묵묵히 내 자리 지키며
보이지 않는 뿌리에 의지하며
그것만이 오로지 내가 할 일의 전부인듯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나는 나무다.
나는 나무다.
나를 베어내어 어디에 쓸지 내가 정할 수도 없다.
의자를 만드는 목공소로 갈지
집을 짓는 건축가가 데려갈지
어디 장작으로 태워질지
푸른바다를 헤쳐갈 배로 만들어질지
고사 손으로 만지작댈 꼬맹이의 장난감이 될지
병석에 누운 누군가의 마지막 잎새를 지켜줄 나무로 다시 옮겨질 지
이도저도 아니면,
이 자체로 여기서 썩어갈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데려가는 곳에서
그 용도에 맞게 쓰이기만 하면 되는
나는 나무다.
나의 질이 좋으면 귀한 집의 기둥이 되겠지
나의 두께가 두터우면 커다란 배의 중심이 되겠지
나의 키가 크다면 누군가의 하늘담은 눈 속에 내가 있겠지
나의 나이테가 많다면 그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지혜를 전하겠지
이도저도 아니면 뭐 어떠리.
그저 그 자체로 어딘가에서 쓰이겠지.
온갖 다채로운 자연과
넓은 치마폭으로 날 감싸고 있는 숲의 기운으로 난 오늘도 자라고 있으니
이렇게 내 자리를 지켜내어
나의 작은 기운,
무한정 받은 보상 되돌려줄 수 있다면
나는 그저 내 몫을 다한 것이겠지.
그러니
내 아무리 큰 키로 보이는 게 많고
내 아무리 무성한 잎으로 들리는 게 많아도
내가 깨달아야 할 것은
내가 뿌리내리는 대지는 죽은 생명의 재로 켜켜히 쌓여 있다는
내가 뻗쳐올리는 하늘은 새 생명의 탄생을 점지하고 있다는,
이 고귀한 진리 속에
나는 살아있는 생명으로써 이 자리를 지켜내야만 한다는
진리를 가슴에 담고
나를 단단히 키워내는 것밖에는
그 무엇도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잡음과 소음, 바람과 잎이 빚어내는 소리에 묻혀지길
세상의 고약한 내음, 하늘코에 닿아 내린 비가 쓸어주길
세상의 혼탁한 공기, 청량한 풀, 꽃, 내, 숲이 정화하길
나는 오로지 나를 키우는 것말고는
모든 것을 자연의 신에게 의탁해야 하는
나는 나무다.
나는 움직일 수 없는 나무다.
태양이 나보다 친구에게 양기를 더 준들 그리 갈 수 없고
벌레들이 나에게만 들러붙은들 털어낼 수 없고
바람이 내 가지만 꺾어버린들 막아낼 수 없으며
꽃들이 무성한 나무에만 벌과 나비가 모인들 나는 이들을 곁에 둘 수도 없다.
주변으로 흩어진 나의 불안한 시선과 소란한 정신은
숲이 소용돌이를 일으켜 나를 다잡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홀로 서 있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내 시선은 나를 키워주는 하늘로 향해야 하는 것을,
내 지식은 나의 뿌리로 더 깊고 진하게 양분을 보내야 하는 것을,
내 정신은 나의 소란한 이파리들까지 진정시키게 넓고 강해야 하는 것을,
내 이성은 나의 정체를 더 세밀하게 분절시켜 내가 나무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을,
내 영혼은 나를 위해 세상 더 멀리까지 자유로워야 하는 것을.
나는
더 높게 깊게 넓게 멀게,
그러면서도 세밀한 부분까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이로써 에머슨이 말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가장 나에게 적합한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꽃은 꽃이 되려 허공으로 꽃을 뿜고
나비는 나비가 되려 번데기안에 웅크리듯
나무는 나무가 되려 이리 힘들게 하늘로만 뻗치고 있는 것이다.
자체가 되려는 것이 자체가 견뎌내야 할 유일한 몫이다.
나는 나무다.
나무로 살아야 하고
나무여야 하니
나무답게 나무로써 나무가 되어야 한다.
자체가 되는 것이 자체가 스스로 떠안은 유일한 고통이리라.
자체가 자체가 되는 것
나무가 나무가 되듯
꽃이 꽃이 되듯
새가 새가 되듯
나는 내가 되어야만 한다.
나무는 나무이니 꼿꼿이 서 있어야
꽃은 꽃이니 꽃을 피워야
새는 새이니 새로서 날아야 하듯
나는 나인데 무엇을 해야 나인 것인가?
그들처럼 그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연의 힘에 의지해
오는 것을 막지 않고
가는 것을 잡지 않는,
그저 그렇게 나를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는
나는 나무를 닮아 나무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