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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r 24. 2023

'수준'은 '기준'부터
'기준'은 '기분'말고 '기본'

엄마의 유산 16

위아래를 쳐다보며 사는 것은 비겁한 짓이야. 

위를 본다는 것은 너 스스로 자신을 하찮게 본다는 의미이고

아래를 본다는 것은 네가 정당한 대가로 얻은 것들이 너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우쭐거리기 위해서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지. 또한, 우쭐대기 위해서 인색해지겠지. 왜? 계속 우쭐댈 수 있게 보여줘야 하니까. 나눌 수가 없어져. 그리고 계속 더 많은 걸, 더 좋은 걸 보여줘야 하니까 가난해지는 길로 가는 거야.

그러니, 수준이 어쩌구하는 말에는 동참하지 말고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길 바란다.

굳이 수준을 논하려면 나의 인격적 수준에만 집착하길 바래.


너는 고등학교 졸업하자 운전면허증을 취득했지.

자동차 운전에도 자격증이 필요한 것처럼

모든 일에는 자격(자질의 격, 수준)이 갖춰져야 해.


그렇다면 

인간의 격, 인격은 어떠한지 이 부분은 왜들 간과하고 있을까...

자동차면허증보다 내 인격이 하찮아서인가?

아니면, 제대로 면허증따고서도 음주운전이나 뺑소니처럼 맘대로 운전해도 된다는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나라에서 주는 자격증이 필요없으니 인격없이 살아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인가?


결국, '수준'을 논하려면 자신의 '인격'부터 논해야 해.

남과 비교되는 수준은 처음에 말했듯이 오히려 너 자신을 하찮게 보거나 우스꽝스럽게 우쭐거리는 인간으로 전락시키지. 하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을 재단하고 검열하며 스스로 갈고 닦은 인격은 그 자체로 너를 빛나게 할거야. 그 자체로 너의 수준을 드러나게 하는거야.


그러니, 지금처럼

명품에 눈길주지 말고 명품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사는 쪽으로 가라. 명품이라면 흔히 말하는 무슨 브랜드들일텐데 사람들은 가끔 명품을 정말 가지고 싶어 하면서도 명품가진 사람들을 속물이라 비웃지. 그런데 그 명품을 소유한 사람의 수준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트에서 물건사듯 그렇게 명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겐 명품샵이 마트인거야. 그런 삶까지 자신의 삶을 올려놓으면 그건 그저 일상이 되지만 그런 수준이 안되면서 명품 하나 걸친다고 결코 명품인생이 되는 건 아니야. 몇백만원받는 월급으로 최고급승용차를 몬다거나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를 벌면서 명품 가방을 들거나 하는 것은 자신을 더 자존심없는 사람으로 비추는 형색일뿐이야. 그 명품의 값을 치르기 위해 그렇게 수개월간 다른 누군가의 노예로 충실하게 구속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할만큼 자기 자신이 그 명품 하나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명품을 들면 자신의 인격이 명품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지하다고 드러내는 꼴인가?


수준에 맞게 소비하고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관계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많게, 크게 소유하고 싶다면

너 자신의 수준부터 높이도록 해야할거야.


수준을 높이기 위한다면 기준이 높아야 한단다.

기준은 말 그대로 출발점이니까.

기준은 기분에 의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네 삶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먼저 가늠한 뒤 정하는 선이어야 해

기준.

기분이 아니라 기본을 갖추는 것이 너의 기준, 즉, 인격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거야.


그렇다면, 기준을 어떻게 잡는 것이 좋을까? 여기에서 한가지 꼭 명심해주길 바라는 게 있어. 아니, 외워두길 바래.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원리라는 것이 있거든. 원칙은 관습과 사회, 문화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원리는 변하지 않아. 흔히 이치라고도 섭리라고도 진리라고도 하지. 


세상은 양극에 의해 움직인단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지. 아래가 있으면 위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차가움이 있으면 뜨거움이 있지. 양극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으면 아래에 참고된 글을 좀 더 읽어보길 바라며 자, 이런 이유로 네가 누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즉,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면 누릴만한 대가를 먼저 치러야 해. 즉, 의무를 먼저 이행해야 해. 


조금 더 쉽게 풀어볼까? 네가 어렸을 때 사탕을 달라고 조른 적이 많지. 그 때마다 밥을 먹으면 사탕을 먹을 수 있다. 또는 치카치카를 1일 3번하는 날엔 사탕을 주겠다. 라곤 했어. 밥을 먹거나 치카치카를 하는 것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고 사탕은 보상이지. 의무를 먼저 이행하면 권리(사탕)를 누릴 수 있어. 의무는 선택할 수 없어. 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권리는 선택할 수 있어. 사탕이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즉, 권리를 가진 자에게 자유가 주어지지.


반대로 권리먼저 누리고, 즉, 사탕만 많이 먹고 치카를 안한다면 앞으로 너에게 사탕을 줄 수 없게 되지. 치카(의무)를 하지 않고 순간의 즐거움(권리, 보상)을 먼저 누리면 영원히 너의 달콤한 사탕은 먹을 수 없게 돼. 자유로부터 멀어지지. 

한마디로, 

해야할 것 먼저 / 하고 싶은 것 나중.이라는 말이야.


이런 의미에서 

너에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준은

해야할 것 먼저, 하고 싶은 것 나중.

가야할 곳 먼저, 가고 싶은 곳 나중.

먹어야 할 것 먼저, 먹고 싶은 것 나중.

읽어야 할 책 먼저, 읽고 싶은 책 나중.

봐야할 것 먼저, 보고 싶은 것 나중.

들어야할 말 먼저, 듣고 싶은 말 나중.

이해해야 할 것 먼저, 이해시키고 싶은 것 나중.

이런 식이지.


이렇게 3달정도 너의 일상의 의무들을 행한다면 그게 너의 기준이 될 것이고 그 기준점부터 점점 더 책임감있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어. 그런 사람의 삶의 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지. 즉, 인격이 삶의 격이니까 당연히 너의 수준도 높아지지.


보여지는 것으로 수준을 논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수준을 채워가렴.

그 어떤 보이는 것도 보여지는 이면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허상에 불과하단다. 

아무리 근사한 명품으로 휘감은들 금방 들통나버리는 참 가엽고도 꼴사나운 모습일 뿐이지.


엄마는 이런 점에서 참 조심스럽단다.

엄마의 글이, 강의가 늘 조심스럽고 두렵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해. 

명품핸드백같은 것은 잠깐의 보여지는 것에 그치겠지만 글이나 강의는 사람의 정신에 침투하는 것이라 함부로 쓸 수가 없어. 그래서 매일 새벽독서를 하는거야. 그렇게 출력될 것(글이나 강의)보다 더 크게 많이 입력되지 않으면 요란한 명품핸드백으로 나를 포장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너도 너의 나이에 맞게, 너의 기준을 잡아보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어른스러울 필요도 없고 철없는 어린아이같아서도 안될 것이야. 그저 그 나이에 딱 맞는 너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그 기준아래로는 자신을 하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 스스로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으면서 세상이 널 존중해주길 바라면 안돼. 그러니 너 스스로 기준에 맞지 않게 삶을 꾸리지 않도록 너에게 집중하렴. 


너의 기준.

사고와 건강과 정서와 관계의 기준.

학생이면 학생으로서

사회인이면 사회인으로서

어른이면 어른으로서

시민이면 시민으로서

인간이면 인간으로서의 기준. 

그 기준부터 스스로 정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너의 수준을 스스로 높여보렴.


* 양극에 대한 이해를 위해 아래의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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