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을 삽니다.
이 과정을 세월이라
이 전체를 인생이라
인생을 위해 세월을 보내는 주체는 '나'라 하더군요.
그런데
'아직도 네가 너를 모르느냐?' 고 오늘도 호된 호통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철학자들은
사람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또 묻습니다.
이는 저만 모르는 것이 아니니 저만 당하는 호통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사용함으로써
나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기에
'나'라는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보다 나은 삶에 대해 상상조차 못했던 첨단과학으로 저의 주변을 변화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사용함으로써
나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기에
'나를 모른다'는 무지는 첨단과학의 노예가 될 것이 뻔한 결론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혹 누군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지적유희나 허영이라며
그냥 사는 게 다 그런거지.. 퉁치듯 말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왜 내가 여태 살아있고
왜 지금 내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고
왜 추구하는 꿈이 간절한지'에 대해
이는 내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를 선택한 신의 계획에 나라는 인간이 투입되었음을 느끼기 때문'이라 감히 말해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는 그저 주어진 것에 만족해도 되는 그럭저럭 괜찮다 평을 받는 일상을 지니고 있기에
이리 살아도 무방, 저리 살아도 무방한 현실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왜 나는 지금 어딘가로 향하는 이 느낌에 빠져
왜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라 여기는 이것을 통해
왜 더 큰 사랑을 받고 나누려 하는지'에 대해 아는 이가
'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너는 너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여정은
'나'밖에 할 수 없으니
'나'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저의 본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능.을 거스를 수 없는 생명체의 본능.으로 인해
그저
본능.대로 살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아주 힘듭니다.
현실의 나를 바라봐야 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절 억압해온 관념도 제거해야 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저를 데려다 놓을 용기를 가져야 하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신의 명을 감지하기 위해 의식을 쉬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때론 추락하듯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론 날아오르듯 열정과 의지에 기쁘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관된 것은 이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은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누구인지를 알아야만 하는지' 다시 제게 물으신다면
알아야 쓰니까요.
써봐야 이해하니까요.
이해해야 사랑하니까요.
사랑해야 나누고 싶어지니까요.
나누면 더 크게 되돌아올 거니까요.
더 크게 되돌아오면 더 크게 쓰이고
더 크게 쓰이면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깊이 이해하면 더 오롯히 온전히 사랑하게 되니까요.
나를 알아가는 이 여정 속에 과정이 있고
과정 속에
타인과 세상을 알아야 하는 숙제가 있고
숙제 속에
오늘을 살아갈 힘이 주어지고
오늘의 힘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줄 것이니까요.
나의 인생, 나의 삶을 위한 '도구'로서 '나'를 아는 것은
소중한 '나의 삶'을 소모되는 것이 아닌 의미로 채워나가기 위함입니다.
귀중한 '나의 인생'을 방치되는 것이 아닌 가치로 단장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나라는 사람'을 외면시키지 않고 조화로이 함께 걸어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과거로 떨구지 않고 미래에 쓰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호통쪽으로 제 걸음을 옮겨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어떻게 쓰일 것인가
나는 얼마나 흘러 넘칠 것인가
나는 무엇에게로 스며들 것인가.
이 사고의 걸음은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외면해야 하는지
누구의 손을 잡고 누구의 손을 놔야 하는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책을 덮어야 하는지
오늘 어떤 선택으로 일상을 이끌어나갈 것인지
날 신중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게 '너는 누구냐'고 물으시는 호통은
아직도 잘 모르는 절 자책 아닌 성찰하게 하며
아직도 덜 사랑하는 절 더 사랑하게 이끌어 줍니다.
이런 이유로
여전히 절 구속하는 이 질문이야말로
오로지 나의 인생을 살아갈 길을 알게하고 힘을 주는 질문이며
내가 나에게 던져야 할, 던지고 있는 유일한 질문이며
마땅히 찾아야만 하는 질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또 다시 새벽입니다.
나는 누구인지를 찾는 여정이 또 시작되었군요.
태양의 출두에 아무런 도움도 못주지만
오늘도 이리 마중나왔으니 내 손을 잡아달라 청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