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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02. 2023

기다려, 너 아니야.

'판단'에 대한 소고

그 사람의 과거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그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라.

그 사람의 미래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라.


불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빡빡한 현실에 등을 돌리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겠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려면.

내가 추구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사고하고 읽고 먹고 주고 받고 

누구를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를 모두 고찰해야겠지만

샤르트르의 말대로 인생은 BCD라니 결국 살펴봐야 하는 것은 C.

(BCD란 태어나서(Birth) 죽을 때(Death)까지 무엇을 C(Chioce)하는지가 인생이라는 의미)


선택. 결국, 판단에 의해 인생은 진행된다.

판단. 이라면 무엇을 위해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인 것이니

선택한 것의 결론.이라고 봐야겠다.

결론에 의해 결과가 드러나고 

결과의 집합이 '인생'의 모양새이다.


현재는 과거선택들의 결과.

지금 나의 삶은 이대로 괜찮을까?

괜찮다. 그런대로 잘 살아왔고 이렇게 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나는 바라는 바가 있다. 

원하고 추구하고 갈망하고 소망하는 바가 있다.

그러니, 

다른 미래를 원하기에 다른 선택으로 다른 판단을 하여야만 한다.

다른 판단을 위해 지금까지의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판단을 경계하기 위해 관성이 이성을 점령할 때 판단정지해야 한다.

판단정지하기 위해 지금 나도 모르게 슥 올라오는 판단에 직면해야 한다.

직면한 판단에게 '기다려, 너 아니야' 명하고 전혀 다른 상반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두렵다.

관성을 거부한다는 것은 무척 두려운 것이다.

과연 그럴까?

두려운 게 아니라 낯선 것은 아닐까?

낯선 것은 의외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호기로운 자극은 재밌고 신나는 의외의 쾌감으로 나에게 쑥 들어온다.

쑥 들어온 쾌감을 분석, 이해하지 말고 그냥 그냥 그냥 느껴보는거다.

그 느낌 속에서 싹 스치는 섬광같은 빛.

바로 그것이 새로운 판단이 나에게 예시하는 결과일 것이다.


슥 올라온 판단에 정지를 외치고

쑥 들어온 쾌감에 전진을 명하고

싹 스치는 섬광에 판단을 맡기면

그것이 

새로운 판단이 새로운 결과를,

새로운 결과가 원하던 미래를,

원하던 미래가 추구하던 바를,

추구하던 바가 나의 정체임을

알려주는 것일테다.


지금 나는 오로지 이것만 하기 때문에 단순하기 그지없다.

새벽에 일어나 목표적고 책읽고 글쓰고 토론하고 코칭하고 프로그램만들고 만보하고 끝.

새벽에 일어나 감사하고 감동하고 이해하고 이해받고 용기내고 내 안의 나를 느끼며 끝.

2023년 2월 26일부터 3달간 오로지 이것만 해야지. 했는데 너무 신나고 재미나고 일이 날 데려가는 것에 끌려다니는 수동이 너무 편해서 또 3달을 이리 한번 더 살기로 했다.

하루의 모두가 이 단순한 두 줄의 선택만을 하고 지내니

나의 미래는 과거와 너무나 다르게 흘러가리라 믿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나는 판단정지 후 새롭게 판단한다. 

고로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존재로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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