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두려움, 불안과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그렇잖아?라고 말할 지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지. 나도 그렇고.
하지만 상당기간의 훈련으로 나는 두려움이나 불안,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파생된 잔재들이 뿜어내는 기운과는 다소 멀어졌거나 결별한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나의 미래에, 내가 원하는 것들에, 내가 창조해낼 결과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들을 얻었음에 감사하고 얻게 해주실 이 과정들을 겸허하게, 고통이 있더라도, 손해가 가더라도,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감사의 마음으로 걷고 있는 내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칭찬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는, 나의 무의식은 바로 과거의 기억이 뿜어내는 기운, 부정의 기운이라는 사실이 연관되면서. 아... 무의식에 담겨있는 기운이 '원하지 않는', 같은 현실을 되풀이하게 만드는구나를 알게 되었기에 지금 사실 조금 참담하다.
두려움과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어떤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향할 때 당연히 따라오는 부록과도 같은 것이며 인간이 추구하는 본성을 지닌 이상 응당 지니고 다녀야 할 감정인데도 불구하고 이 감정을 없애기 위해, 또는 덜 느끼게 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더 그것을 가열차게 추진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인과 자체가 나에게는 다른 미래를 주지 못할 것이라는 또 다른 불안으로 엄습해오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건데?
어떻게 하라는 것인데?
내가 방법을 알고있나?
아니, 전혀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저 나는 나의 무의식에 잔재들이 있음을 알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정의 기억과 감정들이 자기 할 일을 하고 어서 나가주기를 기대하면서 완벽한 무시를, 신성한 무관심을 보여야 하는 쪽으로 나의 의식을 열어야만 한다.
무관심하고 무시해야 할 것이다.
관심두는 쪽이, 초점맞추는 쪽이 분명히 커진다.
불안을 조금 덜 느끼려 결과를 쫒는다면 불안에 초점맞춰진 것이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면 두려움에 초점맞춰진 것이다.
실패를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기필코 해내리라 다짐하는 것은 실패에 초점맞춰진 것이다.
향하려는 의지, 도달하고자 하는 결과의 추동체, 즉
불안, 두려움, 실패라는 부정들이 무의식에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기에
제 아무리 내가 발버둥쳐도 무의식의 그것들에 초첨이 맞춰져 있어 초점맞춰진 그것의 결과를 내가 불러오게 된다.
안된다.
우주는 무의식과 교신하니 안된다.
우주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소통방식도 행동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우주는 단 하나, 진동으로 모든 만물의 조화를 이뤄가기 위한 소통을 한다. 에너지는 무조건 파장을 일으키고 파장은 진동의 강도와 지속으로 소통된다. 그러니 나도 파동을 일으키는 무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제 아무리 행동과 언어 등의 표현을 바꾼다 한들 같은 결과만 되풀이될 뿐이다. 아니, 무의식이 부정의 에너지를 내보내면 '원치않는 그것'을 원하는, 내가 오히려 끌고 오는 꼴이 된다.
무의식바꾸기.
인식이 끼어드는 순간 정지.
인식을 외면하는 신성한 무관심.
나의 에너지를 가장 높일 수 있는 나만의 정서에 초점맞추기
초점맞춰진 그 느낌에서 원하는 결과로 의식 열기
그 의식 안에서 그 느낌으로 지속시키기
당분간 지금껏 내가 알아낸 이 단계대로 나를 좀 더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