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키웁니다. - 행동리셋 1
지난 9월 14일, 그러니까 딱 10일 전,
느닷없이 나는 쓰기로 했다.
'쉽게, 단순하게, 짧게'
내가 참 못하는 글쓰기여서 도전해보고 싶었고
'나의 이야기로, 내가 지난 4년을 어떻게 나를 키워나가고 있는지'를
그저 담담히 써보고 싶기도 해서다.
새벽에 느닷없이 나에게 느껴진 제안을 그대로 수락, 그 날 주루룩 순식간에 목차를 잡고(어렵지 않았다. 불과 4년전부터 지금까지의 행보라서인가보다) 그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쓰고 있다. 30일, 30편으로 맞춘 것은 아닌데 우연히 그렇게 30이라는 숫자로 정해졌고 30일이면 끝낼 일이라 30일간 매일 1편씩 쓰기로 하고 어제까지 챕터1의 마인드리셋을 끝내고 오늘 챕터2, 행동리셋을 시작한다.
나를 키우는 것은 사고방식(마인드리셋)과 행동방식(행동리셋)을 바꾸는 것이고 이러한 변화로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연습하듯 걷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다 보면 내 나이 50이 넘었지만 남아있는 생, 내가 원하는, 나대로, 나다운, 나여야 하는 이유의 길 위에서 나는 걸을 것이고 이유에 걸맞는 결과에 나는 도착해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일 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미래를 모른다. 하지만 원하는 미래는 있다. 자신없고 주책맞고 나약하지만 그래도 원하는 바를 위해 나를 키워보고 싶다는 담담한 바람은 이렇게 30일간의 연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글이란 묘하다. 나도 모르는 내 속을 내비춰준다. 내가 이랬나? 정말? 나 스스로에게 물으며 놀라기도 당황스럽기도 가엽기도, 또 당차기도 하다. 나는 나를 키우며 제2자도 아닌, 3자가 되어 나를 들여다보는 쾌거를 이루는 중이라고도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나도 나를 구경하는 게 신난다. 오늘부터 시작될 행동리셋편에서도 나는 나를 발견하고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점검이 제대로 되길 바란다.
훈련소에 들어간지 이제 3주된 아들은 주말에 1시간씩만 핸드폰을 받아서 전화를 할 수 있다. 오늘 아침 아들이 묻는다. '엄마! 헬스장 다니고 있어?'. 뜨끔했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솔직하게 말했다.
'하루 가고 3일 아팠어. 안 다닐래.'
헬스장은 아들이 군대가면서 엄마를 위해 신청하며 1달 해보고 더 연장하라고 나에게 신신당부했던 유일한 부탁이었는데 난 딱 하루 가고선 안가겠다고 선언한 나쁜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그 나이에 살빼고 몸짱되고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상체근육 좀 만들고 건강하게 나랑 오래오래 살아야 하니까 꼭 운동해!'했었는데 그 마음을 내가 무참하게 져버린 것이다. 아이고, 가슴아프다.
하지만!
난 못하겠다.
그렇다고 전혀 운동을 안하는 것은 아니다. 몇 년간 병원에 간 적이 없는 걸 보면(코로나예방접종시 빼고) 나름 건강하고 차없이 늘 걸어다니니 하체, 특히 허벅지 근육은 아주 탄탄한 편이고 유연성도 나이에 비해 아주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제대로 하는 운동 하나 없는 것이 아들은 늘 걱정인가보다. 할 줄 아는 운동이 없다. 수영도 못하고 골프는 전혀 해본적이 없고 테니스나 마라톤,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운동들이 있지만 배운 적도, 배울 생각도 전혀 없는 나다.
건강에는 유독 자신하는 계기 중 하나는 심하게 아팠었던 그 때 내가 날 이겨낸 기억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에서 몇 번 공개한 적이 있듯이 나의 목디스크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거북목을 뛰어 넘어 거꾸로C자 목이다. 걸음을 걸을 때 꾸부정한 것은 당연하고 신경이 눌려서 오른팔을 전혀 쓰지 못할 지경까지 가면서 통증주사를 맞지 않으면 너무 아파서 늘 인상을 쓰고 짜증이 극에 달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수술? 물론 MRI를 찍고 수술날짜까지 받았지만 병원가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답게 수술거부!, 운동으로 스스로 고치겠다 선언한 후 말같지도 않게 '디스크가 별거야? 자세문제잖아. 자세 바로 하고 어차피 뼈는 다시 원상복귀 안되니까 근육운동하면 되는 거잖아!'했다. 단순한 성격답게 단순한 해결책을 스스로 내린 후 진짜 울면서 운동했다. 매일 3km를 걷고 목좌우로 돌리기를 매일 300번씩 했다. 옆으로 돌아가지 않던 목은 징징 울면서도 300번을 채우는 내가 기특했는지 조금씩 자유로워졌고 당연히 오른팔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갔다.
사람은 당해봐야 정신차린다는데 내가 딱 그랬다. 그리고 좀 나아진 상태로 지금까지 난 멀쩡하다. 꾸부정하게 걷지도 않고 목과 오른팔은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만 책상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거의 하루종일인 나인지라 1시간간격으로 움직이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긴장하면 곧바로 목뒤와 오른쪽 승모근쪽이 신호가 온다. 그럴 땐 좀 무섭기도 하다. 예전에 너무 아팠던 기억이 떠올라서겠지.
나는 50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스운 건 늘 '운동해야 하는데'를 머리 속에 담고 산다는 것이다. 머리로 알면서, 입에 '해야지해야지' 달고 살면서 실천하지 않는 오만하고 무모한 인간이 나다. 유독 운동면에서는 그렇다. 이렇게 나는 나를 키워내면서 '운동시키기'가 제일 날 애먹인다. '안다, 안다. 할께 할께'하면서도 절대 하지 않는 이 고약한 투지는 뭐란 말인지. 행동리셋이라는 챕터2를 적자마자 '운동시키기가 젤 어렵다'는 말이 그냥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것은 아마도 언제나 늘 항상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이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체와 정신 중에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할까?
답이 없는 질문을 한다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고 질문이 잘못되면 답도 잘못되는 것인데 이 답없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며 나는 나를 가르친다. '둘 다 중요하다'라고. 몸이 아프면 정신이 맥을 못 차리고 정신이 요동치면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결코 논할 수 없고 둘 중 하나라도 기준 밑으로 내려가면 둘 다 망치게 된다. 신체와 정신만 망치느냐? 천만에. 이들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주는 나의 영혼조차 애먹을 것이다. 아무리 신호를 줘도 몸쓸 신체와 정신이 알아차리질 못할테니 말이다.
글을 쓰면서 결론을 맺어야 하는데 결론이 없다. 어떻게 어떻게 운동을 하겠다. 라는 각오나 다짐을 하질 못하겠고 하고 싶지도 않고 '필요'한 것을 알면서도 '필요'보다 '편한'쪽을 택하는 내 자신에게 길들여진 것 같다. 여성들이 필라테스니 뭐니 재미있다고들 하는데 난 왜 아무 것에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할까? 아, 재미는 지속된 양이 쌓였을 때 얻어지는 쾌거이니 재미보다 호기심 정도라도 느껴져야 하는데 전혀 호기심이 없다. 그냥 운동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거라는 오만에 빠진 나를 정당화시키기 급급하다.
결론없는 장이지만 나는 나를 키우는 데 있어
운동시키기가 제일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열심히 나에게 채근해보련다.
차타지 말고 걸으라고.
어깨돌리기라도 하라고.
자전거라도 타라고.
아령이라도 들어보라고.
스쿼트?라도 해보라고
나는 이렇게 말안듣는 50의 나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