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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01. 2023

남이야 뭐라 하건!

'글'에 대하여


내이름 '주원' : 중심을 지키며 흐름대로.

대학원 강의때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글 가운데 첫사랑글 읽었는데 어떻게 첫사랑을 공개하셨어요? 용기가 대단하시다!'

...

그런건가?

그런 건 공개하면 좀 거시기한건가?


내가 배운 것을

내가 알려주고자 할 때에.... 

한마디로, 

지식에 나의 경험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다'고 할 수 없는데?

그날그날, 순간순간 내가 느낀 감각으로 나를 해체시키는 게 좋은데?

배운 이론만 떠드는 떠벌이가 되는 것은 싫은데?

남의 이야기, 남의 말 옮겨대는 앵무새가 되면 안되는데?



나의 글에

나의 일상이 담겨 있다는, 담겨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주장 내지 견해에 대해

'나는 이러한 경험을 이렇게 감각하고 인지하고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어요!'를 피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글이 나의 글이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나를 오픈한다.

여기에 용기는 필요없다.

오히려 혼을 담지 못한 글을 발행하는 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 용기가 없어 나는 나를 오픈하는 게 오히려 편하다.


'소크라테스'도-물론, 직접 그가 쓰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직접 만나 나눈 대화를,

'몽테뉴'도 그 유명한 '에쎄'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헨리데이빗소로우'도 '월든'에서 자신의 생활을

'괴테'도 '시와 진실'에서 자신의 과거 시절과 가정사를(물론, 자서전이니까)

'에머슨'도 '수상록'과 '자기신뢰철학'에 자신의 주관적인 사고와 의지를

'니콜라스나심탈레브'도 자신이 살며 부딪힌 난감함을

'롭무어'나 '보도세퍼'도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위해 민낯을

'리차드파인만'도 자신의 엉뚱한 짓들을

'앤디워홀'도 자신의 발칙했던 발상과 행동들을

'팀페리슨'도 자신이 인터뷰한 내용을

'아우구스티누스'도 자신의 가슴치는 성찰 고백을

'마르쿠스아우렐레우스'도 자신이 전쟁터에서 겪은 난해한 인간군상에 대한 탄식을

'톨스토이'도 '인생론'에서 자신이 직접 읽은 책들을, '고백록'에서는 자신의 과오를

'릴케'도 자신이 지인에게 보낸 리얼한 편지를

'세네카'도 자신이 네로와 생활하며 겪은 감정들을

'에피쿠로스'도 그 무지막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쾌락에 대한 주장을

'세익스피어'도 장터를 무대삼아 시대에 반하는 자신의 신념을


모든 위대한 책에 저자의 경험이 없는 것은 없다. 자신의 서사를 글에 담는 것에 대해 '혹여 남들이 자만하다고 여기면 어쩌나?', '혹여 남들이 날 비웃으면 어쩌나?' 뭐, 이런 고민은 글쓰는 이라면 누구나 하겠지만 나폴레온힐은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독자에게 믿을만한 정보를 주기 위해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언급한다면 그것이 언제나 자만의 표시는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하기 바란다. 그렇게 하려면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특별한 경우에, 이 이야기 속에 그토록 자주 슬그머니 끼어들어갔던 '나'라는 인칭대명사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내 노력의 진가가 상당부분 떨어질 것이다. 내가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확실하고 믿을만하기 때문에 가설적으로 설명하거나 3인칭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자만심이 강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주).


철학은 일상, 즉 실천의 옷을 입었을 때 자체만이 지닐 수 있는 참된 가치를 가진다.

self-narration.

자신의 서사는 자기 인생철학이 된다.

감정이든 지식이든 경험이든 무엇이든 

글쓴이의 것이 없으면, 

또는 글쓴이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떠벌이며 앵무새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서사(敍事, narration)가 들어가야 

진짜 내 글이라 여긴다!


내 것이니

유일하고

독보적이고

창의적이며

탁월할 수밖에 없다.

나만이 유일하게 겪은, 

나의 시간과 공간의 역사가 

활자가 아닌 혼으로 담겨지기에 


남이야 뭐라하건, 

나의 글은 세상에 유일하며

유일한 것은 일단 탁월하다!


나는 앞으로도 나를 오픈하려 한다.


머리통도 열고

기억도 열고

미래꿈도 열고

뭐든 다 열어젖히며 

나를 글에 묻힐 것이다.

아니,

글이 나를 파헤쳐줄 것이다.

세상에게 이게 나야 드러내야 진짜 내 것이라 인정받을 것이다.


릴케(주)의 조언대로 '나의 평범한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주제로 나의 슬픔과 열망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스쳐지나가는 생각이나 믿음을 묘사(중략)'하고 '나의 꿈의 영상이나 추억을 적극 활용'해보련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수십년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궁금한 -모든 인간의 궁극의 질문이랄 수 있는-

데카르트(주)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자체가 신만이 아는 사실을 넘겨짚으려는 주제넘는 짓이라 했지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나는 나의 글에 그 답을 맡겨봐야겠다.


비로소,

나는 또 다시 분리되었다.

'나'와 '나의 글'로.


나는 계속 해체되고 분리되어 구분지어진다.

나의 삶

나의 글

나의 사유

이 모두는 따로이며 하나이다.


그리고

이 따로이며 하나인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로

나는 나를 분리시킨다.


남이야 뭐라 하건!



* 본 글의 제목 '남이야 뭐라하건!'은 리처드파인만의 저서제목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힙니다.

* 주> 나폴레온힐, 황금률, 2009, 비즈니스맵

   주> 릴케, 말테의 수기, 2005, 민음사


안녕하세요, 지담입니다.

15개월, 브런치에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지켜오면서 650여개의 글로 여러 독자분들과 소통을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 제 글이 Daum과 브런치 메인에 노출이 잦다 보니 많은 독자분들께서  '글'과 '사유', '독서', '교육'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을 해주십니다. 


이에 대한 보답의 의미와 함께 

구독자 2천명을 맞이하기도 했고 

2023년도 마무리되고... 

여러 의미들을 보태어 독자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낯을 가리는 성격탓에 매회 단 10분만 모시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께서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어 덧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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