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독서 1800일을 향하며
새벽독서 1500일을 향하며
나의 지인들은 분명 나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어렵거나 곤란한 경우 나를 찾는다.
나에게서 뭔가 비법이라도, 해결책이라도 얻으려 하겠지만
나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나는 그런 감량을 지니지 못했다.
나의 옷장엔 수년간 입지 않는, 입지 못하는 옷들만 수북하고 지금 내가 걸친 거라곤 갈아입을 트레이닝복, 정장바지 하나, 그리고 십년넘은 청바지 두어개, 가끔 차려입어야 할 경우를 대비한 검정과 흰셔츠 하나씩, 그리고 더위를 위한 반팔티 몇장, 추위를 대비한 오래묵은 패딩하나. 실제 내게 온 누구라도 그가 걸친 외투 한벌, 구두 한켤레가 내 옷장 모든 옷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값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거죽이 이러하니 살림살이도 마찬가지겠지.
차도 없고 그럴듯한 가구하나 없고
설령 함께 식사라도 하려하면 만찬을 대접할 생각도 없이
그저 나 먹는데 숟가락하나 얹을 뿐인데...
그리고 내 머리속을 들여다보면
너덜거리다가 제 맘대로 뭉쳐져 어지럽게 흩어진, 다듬어지지 못한 채 자기자리 못잡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잡다한 지식의 파편들이 대부분인지라 초라하기도, 소란스럽기도 한 이상한 모양새들 뿐이니 내게서 나온 정신은 항상 모자라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며 소중하게 여긴다.
내 부모도, 내 가족도, 내 지인들도 나를 소중히 아껴준다. 그러니 나와 나눌 대화를 위해 자신의 귀와 시간과 차한잔값을 치르며 나와 마주앉으려는 것이겠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겉모습만으로는 마냥 하릴없이 빈둥대는 것처럼 보일터인데...
땅속에 갇혀 살다 비만 오면 고개내미는 지렁이나
우리집 어딘가에 몰래 숨어들어 혼자 집짓고 사는 거미나
가끔 벽모서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다리 붙인채 잠들어버린 돈벌레나
방충망에 붙어 내가 문열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집안으로 기를 쓰고 들어오는 노린재나
매해 날아들어 부지런히 집짓더니 어느 샌가 수십마리 아가벌들을 데리고 떠나는 2층창가의 쌍살벌이나
저어기 하늘에서 바라보면 네모난 몇평 안되는 방구석에 혼자 쳐박혀 글쓰는 나나
다 자신만의 동선과 흥미로 살아가는게 매 한가지라
나는 내 삶이 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신의 치마폭에서 숨쉬는 안락함을 느낀다. 게다가 이들처럼 신의 어여쁨으로 부여받은 내 거처할 어떤 구석에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분주함이 있으니 이 또한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다 보니, 그다지 다른 것에게 관심두지 않아
내 감정이 누군가로 인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내 시간이 어디선가에서 불필요하게 쓰이지 않고
내 사고가 무언가에 저당잡혀 혼잡해지지 않고
내 공간도 어떤 이유로 어지럽혀지지 않으니
나는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가진 것으로
'나'에게 주어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이 자유'가
보편적이지 않고 이례적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한없이 소중하고 귀하다.
이는
아마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신이 더 나를 사랑해서겠지
아마도 내가 나에게 관심두는 것보다 신이 더 나에게 친절해서겠지
아마도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신이 더 나를 귀하게 여겨서겠지
아마도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신이 더 나를 많이 알아서겠지
내 나이에 벌써 신의 곁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도 있고
내 나이와 비슷한데도 자신의 삶조차 자기것으로 만들지 못하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부지런히 달리기만 하는 이들도 많은데
능력이나 의지, 열심에 신이 더 친절하다면 아마 나한테까지 사랑과 관심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사색하는 자유란 당신의 창조물인 내자신의 더 큰 가치를 더 깊이 보고자 하는 갈구일터, 그러니 추구하며 다가가는 자를 귀하게 여기시는 게 당연하겠지. 겉으로 하릴없어 보이는 내 모습은 누구나 누릴 수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열심히 달리지만 신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보다 나은 것이 없기에
나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알려줄 수도 없기에
나는 3살짜리 꼬마의 순수함을 잃은 지 오래기에
나는 청년들의 기발함과 솔직함만큼 날카롭지 않기에
나는 노인들의 지혜를 담아내기엔 아직 세월을 덜 살았기에
날 찾는 이들에게
모든 자연이 내게 알리려는 것을 듣는 일에 푹 빠져 있고
이에 순종한 내 세포들이 알아낸 것들을 꺼내는 일에 충분히 분주한 나의 삶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이리하여 나라는 나약한 이라도 타고난 내면의 강인함이 존재함을 믿고
흔들림없이 내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그 어떤 불운도 나를 비껴가게 만들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밖에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제 아무리 애를 써도 나의 논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한 힘에 의해
내 허락없이 내 삶을 정리시켜 버리는 단단한 무언가가 있음을 알아버려서
그 존재의 뜻에 따라 흐름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그저 맑은 눈과 투명한 귀, 유연한 머리와 자유로운 손과 발, 마음의 균형정도만 지녀도
세상사는 것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지금껏 애써 쌓아온 나의 것을 가진 자의 그릇을 채우는데 소진시키느니
그것보다 나의 삶을 살찌우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이로울 수 있게 사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를
보여주는 수밖에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공동체나 사회질서보다 내 정신과 내 삶의 질서부터 먼저 바로 잡는 것이
나에게도, 나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더 나아가 모두와 모든 것을 위해서 우선되어져야 한다고,
그래서 이러한 사색의 시간으로 사유의 구간이 필요하다고 보여주는 수밖에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게 어떠한 앎인지
자기 자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게 어떠한 음미인지
자기 자신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향하고' 있다는 것이 어떠한 열망인지
자기 자신의 사유의 길을 만든다는 게 무엇을 위하는 덕인지
자기 자신이 비록 지금은 새싹처럼 보여줄 것 없지만 무언가를 위해 비워지고 채워지며 영글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는 게 얼마나 가득찬 충만인지
산자들 틈에 살지만 매일 죽은 자들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황홀한 만남인지
이로 인해 내가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확고한 믿음인지
그저 내 일상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날 찾는 지인들은 분명 날 잘못 알고 있다.
알아서 이리 사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어 이리 사는 것인데
알아내서 이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이렇게밖에 말못하는 것인데
알려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알게 하려고 물어보는 것인데...
알려하지 않으면 알아질터인데...
오래 본다면
깊이 본다면
그들이 내게 원하는 해답이 이미 내 일상속에 담겨있을 듯하여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내 부족한 삶으로 충당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민망한 지경에 처하면 나는 그 때 당신과 같았던 내게 지혜를 알려줬던 그들에게 물으라며 내가 비껴서고 스승을 만나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삶에는, '산다', '살아있다'에는
살아있지만 잊고 싶은 어떤 존재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만
죽어있지만 늘 생각속에 머물게 하고픈 이들도 있다.
우리의 인생이 죽은 자들의 것에서 양식을 얻어
산자들 틈에서 나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 죽기전까지의 경험이 없고 그래서 나는 늘 부족한 지혜에 허덕인다.
내가 나와 함께 머무르는 모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보다 지혜로운 무언가가 있다면
그저 나의 일상이 죽은 자들을 매일 만나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저 나의 일상이 태양을 마중나가 창조의 기운으로 힘찬 하루를 시작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저 나의 일상이 매 순간 내 안의 것을 손가락끝으로 끄집어내어 세상으로 보내는 것뿐이라는 것을...
나의 지인들은 나를 너무 잘못 알고 있다...
안녕하세요, 지담입니다.
15개월, 브런치에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지켜오면서 650여개의 글로 여러 독자분들과 소통을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 제 글이 Daum과 브런치 메인에 노출이 잦다 보니 많은 독자분들께서 메일이나 카톡으로 '글'과 '사유', '독서', '교육'에 대해 다양한 여러가지 질문들을 해주십니다.
이에 대한 보답의 의미와 함께
구독자 2천명을 맞이하기도 했고
2023년도 마무리되고...
여러 의미들을 보태어 독자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낯을 가리는 성격탓에 매회 단 10분만 모시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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