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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06. 2023

새벽독서,
'거목'이 되기 위한 '묘목'의 길

'고립'에 대하여

'혼자가 되어 고독에 몸을 맡기는 것을 허가받은 지금반은 타고나고 반은 터득한 이 재능이 나타났다'고 혼자 중얼거린 괴테(주1)처럼 

나도 그렇다. 


나에게 외부와의 '의도적 단절'을 지시하고 '고립'을 택한 후부터 나는 나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던 나에게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그 무언가를 놓칠까 두려워 매일 밤낮으로 찾고 쫒고 그리게 되었다. 


반쯤은 타고난 것들이 분명 내게도 있을텐데

내 속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그 정체에게

지금 나는 미안해하며 

조금씩 드러나게 나를 열어보는 중이다.    


아직은 어줍잖은 창작활동이지만 '창작가는 항상 자신의 가장 훌륭한 덕목조차도 의식해서는 안된다'릴케(주2)의 조언대로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만들어온, 나를 대변하던 것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켰고 철저히 '글'에 있어서는 기본부터 다지기로 결심했었다. 그렇게 매일 새벽5시 발행은 브런치시작이후 1년5개월 지켜왔다. 이로써 나는 오로지 나 자신과 만날 방법을 터득하여 기회를 획득했고 나를 들여다보며 내 안에 숨을 죽인 채 나의 눈길과 손길을 기다리는 그 희미한 정체를 발견해가고 있는 것이다.   


거창하게 '내 깊은 곳의 영혼, 근원과의 조우'라고 말하기엔 

나 자신부터 코빵귀가 절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체를 하나의 우주로 바라보며 

우주 속을 뒤적이며 나를 찾는 활동에 있어 

어느 정도 낯섦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낀다. 


내부로부터 드러난 창작물이어야 하나의 예술로 승화된다는 진리. 이 진리에 근접해가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 잘해내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나는, 창작물이 세상의 평가를 받는 것에 개의치 않고 그저 내 것을 드러내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의무인 듯 그저 매일매일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친다. 그렇게 어느 순간, 죽을 때까지 이 짓을 해도 좋으리란 생각에 도달해 있는 듯하다. 세상에 나는 유일하기에 내 안에서 나온 것은 무조건 독창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만으로도 존재가치는 충분하니까. 이렇게 나는 내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희미한 정체를 선명하게 인식하는 중이다.

새벽독서중

서서히 '혼자'가 되어 가는 이 길은 외부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더니, 내부의 나를 찾게, 다시 태어나게, 표현하게 하는 많이 낯선 결과들을 선물했다. 이 낯섦이 어렵거나 거북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쾌락임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쾌락을 즐기는데 나는 푹 빠져있다.  

    

분명 나는 글쓰기의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타고난 재능이 일찌감치 발견된 것도 아니었으며, 게다가 나름 살면서 덧입혀놓은 프레임 덕에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사고가 나를 지배했지만, 무언가가 내게서 자꾸 탈출을 시도하는 것을 막을 재간까진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는 찜찜함과 나오는 것들의 적은 양, 언어적으로 서툰 표현때문에 속상한 시간들이 지속될수록, 고립은 나에게 더욱 더 이 작업에 고집부리고 집착하게 만들었다.    

 

고립을 택한 후 고독이 밀려오는 시간들은 지금, 나를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시켰다. 

고립을 택했기에 분리가 가능했고 

분리가 되었기에 

내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게 되었음을 

나는 경험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내게로 오는 예상치 못한 문제, 통증, 갈등, 생각, 사람, 정보라 불려지는 사태와 사건, 또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은 내 인생에서 해야 할 무언가가 있어 내게 온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그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시켜 '나를 관리', 아니, '나를 키우는' 것만 신경써야지 내 인생에 개입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로 내게 온 그것들의 '역할'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선지 

나의 고립과 고독은 

나만의 고유성으로 

나를 안내했다.      


직관적으로 내게로 오는 생각들, 

내 안에서 나오려는 창조물들,

예상치 않게 등장한 문제꺼리들, 

관계에 늘 함께 동반하는 갈등들,

갑자기 날 아프게 하는 통증들,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 듣게 된 정보들, 

그리고 지금 내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내게로 온 모든 것들이

내 인생에 들어오더라도

나와 무관하게 자기들이 해야할 일을

되도록이면 가속도를 내어 해치우고 가길 바라는 맘뿐이다.  

    

하나 더 바래도 된다면 

그것들이 내 인생에 개입한 이유와 그로 인해 내가 치르는 대가에 걸맞게 

그들이 작정한 그 곳으로 나를 얼른 데려가주길 바란다. 

그 자리로 이동하면 나에게 온 그것들의 이유를 알게 되겠지. 

그렇게 날 키우기 위해서였구나, 

그렇게 날 자각시키기 위해서였구나, 

그렇게 나에게 인생을 가르치기 위해서였구나를 알게 되겠지.


외부와의 의도적 단절은

나를 고독한 고립으로 견인했고

고립은 나에게로 온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켜

고유한 나의 정신을 되찾게 해주었으며

이는 내 안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나의 모든 감각과 시간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분수같은 존재.

자기 자신으로 가득차 자기에게만 전념하는(주3)

신성한 무관심의 상태

나에게 오는 모든 사건과 사태들이 나를 그 곳으로 데려가주면 좋겠다. 


예측하지 못한 하루하루가 나를 여기서 저기로 옮기더라도

작은 화분에서 뿌리뽑혀 갑자기 흙이 털리는 이변을 겪더라도 큰 세상으로의 이동에 침묵하는 묘목처럼 나에게로 느닷없이 온 것들이 '거목이 되기 위한 묘목(주4)'의 길이라면 좋겠다. 그렇게 내 죽는 날까지 서 있어야 할 그 자리로 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다.

이렇게 큰 우주를 품은 나를 몰라볼 뻔했다.

이렇게 다양한 색을 지닌 나를 외면할 뻔했다.

이렇게 지독하고 치열한 나를 가만둘 뻔했다.

이렇게 내게로 온 것들을 내가 방해할 뻔했다.

이렇게 근사한 길을 내버려두고 남들 가는 길을 따를 뻔했다.    

 

공부하길 참 잘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궁금하다.

앞으로 '내가 모르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

앞으로 '내게로 오는 것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깊을 것인지

앞으로 '느닷없이 자리가 옮겨지는 낯선 이동'으로 반석에 닿아가는 길은 얼마나 충만할 것인지


공부하길 참 잘했다.              



주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시와 진실, 2007, 동서문화사     

주2,3,4) 라이너마리아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2003,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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