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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an 17. 2024

말보다 침묵, 침묵보다 글,
글보다 눈.빛.

'눈빛'에 대하여

    

[말]

쉿!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다는 소리

딱! 잠깐 멈추라는 소리

멍! 억지로 나를 쉬게 하는 소리

이놈! 흩어진 정신 붙잡으려 날 혼내는 소리

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의 소리

아! 정신이 얻어맞는 소리 

아...오락가락한 정신이 어디 걸려든 소리

쫌! 그만하라는 건지 더 하라는 건지 나조차도 애매한 소리

스읍~ 감정참는 소리     

진짜? 극한 공감의 소리

그만! 더 이상 가지 못하게 제동거는 소리

울컥! 외부의 무엇이 마음에 닿은 소리

어쩜.. 그 다음 말은 하지 말라는 소리

짜잔~ 장난기 발동 또는 자랑할 게 생긴 소리     

어이쿠! 과하거나 모자라거나 핀트가 어긋났다는 소리

아뿔싸! 개념치 말라는 소리

그랬군! 어지러움이 가시는 소리

그렇지! 서로의 수위가 맞아떨어진 소리

그래도...미련이 날 붙잡는 소리

조금만...미련이 날 붙잡았는데도 계속 미련떠는 소리

세상에! 내게 없는 경험을 선물받은 소리   

거의 말이 없는 내가 그래도 뱉는 소리들.

내게서 나오는 짧은 단막소리들이 어떤 의미인지 탐색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렇게 말을 안하고 사는구나에 놀랐고

이런 짧은 소리로도 의미가 전달되는구나 놀랐고 

말부터 배워야 할 내 수준에 놀랐다.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나

해야할 말을 못하는 것은 인정.

말에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특별한 경우외엔 논리따윈 쓸모없다는 것도 인정.

말에 내가 없는 것은 아니나

말에 나를 들이미는 순간 오해도 함께 온다는 것도 인정.

말에 힘이 없는 것은 아니나

힘줘서 말해봤자 목만 아프다는 것도 인정


그래서!

[침묵]

진심을 담기에 침묵이 말보다 나을 때가 있다.


무엇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어떻게라도 해석될 수밖에 없는

아무렇게나 해석이 가능한

어쩔수없이 해석해야만 하는

어딘가에서 해석되어지는...

침묵의 소리.   


언급했다시피

어떤 식으로도 해석될 우려가 있고

어떻게든 해석하려는 모험심으로 팽팽한 세상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긴장과 조급이

내 침묵에 채색될 우려가 다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어설플 때엔 차라리 정신은 열어둔 채 침묵하련다.     


그러나!

[글]

침묵 역시 수많은 오류와 해석을 제공하기에

침묵보다 더 기능적으로 유용하게

진심을 담아내는 것이 

내겐 이다.


이제는 혀보다 손이 더 분주하고 익숙해진 내가 되었다.


말로 하자면 이래저래 부연해야 할 것들이 상당한데

글은 여러 쓰임있는 단어들도 많고 굳이 부연없이도

사람들에게는 기승전결의 소통이 버릇되어 있는지라

일단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중간에 강제로 끊어낼 수가 없다.

말을 하다가 끊기는 경우는 다반사지만

글은 읽는 상대가 눈감지 않는 한 끊기지 않고 끝까지 전달이 가능하다.


나는 소통에 있어 글이 말보다 낫다.

혼자해도 되고

다시 전할 때도 똑같은 단어와 똑같은 문장과 똑같은 흐름이라 똑같이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오늘도 

입은 다물고 

정신은 다열고 

글과 침묵으로 말한다.


그런데!    

[눈빛]

침묵이나 글보다 더 진심을 담기 좋은 그릇이 있다면 나는 눈빛이라 여긴다.

말은 당연하고 침묵도 오해를 업고 오며 글도 거짓을 달고 올 수 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떤 짓도 못하게끔

조물주가 내 머리통 꼭대기에 박아 무조건 겉으로 드러나게 해버린 구슬의 빛같다.


대화할 때 상대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는 내 습성에

어떨 때엔 말과 글없이 눈빛만으로도 한참을 상대와 마주 앉아 있곤 하는데

그 때 눈물의 등장도 잦은 걸 보니 눈빛이 말보다 더 강렬하게 진솔한 것을 움직이는 것은 확실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교수님 특기는 5분안에 사람울리기'라고 할 정도니 

적어도 말이나 침묵, 글보다 눈빛이 나의 것을 전하는 데에 탁월한 것은 분명하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눈으로 표현된다에 반박할 자 누구인가?

우리는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왠지 꺼림직하면 눈부터 쳐다보지 못하니까.

아주 미세한 떨림이라도 눈빛이 흔들리니까.     


원래 물질적으로는 큰 것이 작은 것에 담기는 것이나

생명체의 신비로움은 작은 것에도 큰 것이 담길 수 있으니...

내 안에 더 큰 내가 담겨 있듯

내 작은 눈에 내 전부를,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작은 것에 큰 것을 담으려는 시도엔

어지간한 압축이 아니라면 요술이나 묘기를 부려야할텐데,

마음, 감정, 진실, 진심.. 이 모든 것이 질량이나 크기와 무관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작은 두 눈동자에 커다란 나의 요모조모를 다 담아낼 수 있으니...     


내 손이 재주를 부려 퍼담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온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감정으로 전달되도록 허락될 때만 눈빛으로 가는 길이 열릴텐데, 얼마나 다행인가! 

특별한 재주가 필요없고 내 양심과 진심과 심연의 깊이를 깊게 하는 것으로 가슴이 내 아양을 전부 받아주니...


시간이 지나며 녹슬고 허술해지고 보기 싫어지는 것이 사물일텐데,

어지간해서는 손볼 필요없고 내가 내 눈빛을 보지 못하니 보기싫어질 리 만무하고

몸에 딱 붙어 어디로 갔는지 찾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 할일이라곤 뜨겁고 진솔한 가슴을 가지는 것외엔 그 어떤 요구도 없이 눈빛을 맑고 곱고 깊게 손볼 수 있으니...               


내 눈.. 10여년전 출간한 내책의 뒷표지에는 내 눈이 저렇게.. 이제 나는 이 눈에 깊이를 담고 싶다....

맑은 눈빛이 참으로 좋다.

부드러운 눈빛도 좋다.

그러나 지금 내가 

나의 눈빛에 담고 싶은 것은

깊이다.


심연의 것을

나의 정상까지 끌어올린 후

다시 더 낮은 곳으로 내려와

높이 올랐던 고통과 

낮게 내려온 고독을 

함께 품은 깊은 눈빛....


사람은 누구나 오른다. 

어딘가를 향한다.

나아간다.

높이 높이 자신의 반석위에 서기 위해 정상을 향해 걷는다.


그러다 다다른 그 시점과 지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겸손'과 '사랑'을 위해 출발했던 그 지점보다 더 깊이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스스로 산비탈을 고통스럽게 걸어 정상에 올랐지만 오를 때보다 더 커다란 고통으로 산아래보다 더 낮은 곳으로 다시 내려와야만 한다. 그것이 사람의, 배운 자의 인생이어야 한다.


더없이 깊은 심연에서 더없이 높은 것이 그의 높이까지 올라왔음이 틀림없기(주)에 나 역시 오를 때까지 내 머리를 밟고서라도 오르고서 깊이 더 깊이 내려와야 한다...


그러니

오늘도 

입은 다물고 

정신은 다열고 

글로는 다하지 못한


내 세포 구석구석까지 깊게 배인 

고통의 진심을 

내 시간시간마다 짙게 스며든 내 친구 

고독의 사랑을 

내 멈춘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분절되어 떨군 

고립의 흔적을


조물주의 의도담은 작은 2개의 구슬이 


내가 걸어가는 길을, 

내가 오를 곳을, 

그리고 

더 깊이 내려가야 닿을 심연을 깊이를 모두 담아주길...


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2000,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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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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