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담단상 14
새벽에 날 깨우는 것은
내게서 세상으로 나오려 안달나 있는 글들이다.
어디서들 왔는지 모르지만 마치 나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는 듯
마구마구 내 정신을 두드려대는 통에 항상 알람보다 먼저 눈을 뜬다.
이 놈들!
날 깨워버리고는
자기들은 내 손끝에 멈춰주지 않고
후루룩 세상밖으로 나가버린다.
어린 시절, 남의 집 벨 누르고 도망갔던 장난을
이 놈의 글들이 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내 것은 내 것으로,
내 것 아닌 것은 내 것 아닌걸로
그냥 냅두려 하지만
내 작은 속은
'내껀데..' 아쉬워
계속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지만
도통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괜찮다.
내 안에서 나왔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은
민들레홀씨처럼 떠돌다
자신을 잘 키워줄 주인찾아 씨앗으로 심기겠지.
그렇게 그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겠지
내 손끝에서 훌쩍 달아나버린 글이라도
내가 사는 세상 속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니
아쉬워할 필요없겠지.
내 손끝에서 탄생한 글들 역시
세상 속 누군가로부터 탈출한,
세상 속 누군가가 나처럼 놓쳐버려
내게 심긴 것들이겠지.
아뿔싸.
오늘도 자신의 창조를 위해
내 안에서 숨죽여 기다리다,
내 밖에서 날 깨우려 애쓰다
손끝으로 나와준,
나를 통해 창조된 글들에 감사의 키스를 보낸다..
창조된
세상 모든 것들은
모든 것이 모두의 것이면서
모든 것이 모두의 것이아닌,
정작 내 것은 하나도 없는데
모든 것이 내 것인.
이렇게 나는
내가 해야할 몫은
내게 심겨져 내 손끝으로 드러난 것들에
온정성으로 혼(魂)을 불어넣는
단지 그것뿐임을...
내 것이 아닌데도
세상 모든 것들이
내게 허락되어 있음에,
오늘도 나에게서 머물러준 그것들을 감사히 정성담아
세상으로 돌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