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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r 27. 2024

우사인볼트든 계주선수든
조건은 같다!

"우사인볼트가 400미터 질주하는 것과

4명의 계주가 100미터씩 나눠 400미터를 달리는 것과

어느 쪽이 빠를까요?"


새벽독서모임에서 가장 연장자시며 대기업의 수장을 지내시고 지금 거대한 글로벌 교육플랫폼사업을 진행중이신 분의 질문이었다. 머리 속으로 답은 뻔한데 싶다가도 혹시 우사인볼트가 그 경기를 앞두고 열나게 연습했을수도 있잖아. 싶어 우사인볼트라는 변수가 예측불가군. 하며 또 나만의 엉뚱한 상상에 잠시 퐁당했다.


누구라도 출제자의 의도가 파악되면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질문이지만

내가 내린 정답은 조금 다르다.


여기서 잠깐, 

나는 어떤 질문을 받을 때 뇌의 회로가 정답을 찾는 쪽으로 가지 않고 

오답을 피하는 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여러개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하튼

첫째, 나의 정답은 그때그때 다르기에 의미없는 경기이며 답없는 질문이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이 잘못되었듯이 이런 경기에서 모든 예측가능 변수는 제거 또는 통제되어야만 공정한 경기가 된다. 가령, 우사인볼트의 나이와 컨디션, 4명의 계주의 실력, 각 팀의 연습량과 강도 등 경기에 출전한 선수 5명에 대한 개인예측변수, 날씨와 같은 환경예측변수, 나아가 지금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통제되었을 때 이 경기는 의미있다. 

 

둘째, 나의 정답은 누가 이기든 진 팀은 없다이다.

좀 우매한 답변같지만 나는 우사인볼트이기도 계주선수이기도 해야 해서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자원'을 예로 들어보자. 나라는 사람, 나를 둘러싼 인적자원, 내가 소유한 물적자원, 내가 위치한 사회자원, 내가 쌓아온 지적자원, 그리고 제일 중요한 내 인격이 그대로 응축된 명성자원. 이 모든 자원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치면 어떤 자원에 있어서는 우사인볼트처럼 전력질주해야 하고 나머지 자원들은 서서히 페이스조절을 하며 달려야 할 2번째 계주주자여야 한다. 


'일'을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다.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일의 시작에선 우사인볼트여야 하고 어떤 시기엔 2,3번 계주여야 하고 또 어떤 시기엔 마지막 계주여야 한다. 일과 연관된 '시간'이나 '하루'도 마찬가지. 오늘의 새벽은 우사인볼트여야 하고 정오까지는 1번계주, 정오를 지나면서는 2번계주, 그리고 저녁이 되면 하루의 끝을 향해 전력질주하기 위해 다시 우사인볼트가 되어야 한다. 1주일도, 1년도 그렇게.


여기서 

나는 나를 분리시킨다.


지금 시간, 2024년 3월 25일 오전 7시 52분의 나.

일에서는 우사인볼트여야 하며 시간적으로는 1번에서 2번계주에게 바통처치 직전이며 더 큰 범주에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명성적으로는 3번계주 정도의 속도여야 하며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 사람에게는 우사인볼트처럼, 저 사람에게는 각 계주 주자의 속도로 모두 달라야 한다.


물론, 이 모든 판단이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현명' 즉, 지혜로움이란 직관을 따르는 것을 포함한 것이니 이 판단은 직관에 의지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하튼 나 하나에 여럿의 캐릭터가 존재하며 여럿의 성향과 여럿의 속도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리 많은 변수를 제외하고 결코 변해서는 안되는 변수에 대해 나는 또 감히 이리 주장하려 한다.

첫째, 달리기 전 운동화끈 제대로 매어야 한다. 훈련이 덜 되어 있다면 제 아무리 우사인볼트라도 자빠진다.


둘째, 어쨌듯 무조건 달려야 한다. 걸어야 할 구간은 없다.


셋째, 목표만이 뛰어야 할 방향이다. 3명이 제대로 뛰었는데 4번 계주가 엉뚱한 곳으로 뛰어가면 큰일난다.


넷째, 나로 인해 전체가 손해보면 안되니 내 역할에만 집중한다. 뒤로 넘어가 바통을 받아야 할지, 앞으로 뛰면서 받아야 할지 내 역할만 잘하면 된다. 남신경쓰지 말자, 쟤때문에!! 는 없다. 애초에 '쟤'랑 뛰기로 한 건 나였으니까.


다섯째, 아무것도 안하는 구간은 없다. 자기 구간 다 뛰었다고 혼자 집에 가는 계주는 없다. 결승점 앞에서 두 손들고 뽜이팅을 외쳐주거나 레일안쪽에서 함께 뛰어줘야 한다.


여섯째, 반드시.라는 세단어만 남긴다. '최선'. '열심' 다 소용없다. '감정' 더 소용없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타협없는 각오만이 결승점에 먼저 나를 데려간다.


일곱째, 옆에서 뛰는 선수와 지금은 경쟁하지만 스포츠.라는 전체의식에선 함께 도모해야 할 동반자, 제로섬이 아니라 넌제로섬(NON-ZEROSUM)의 동반자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여덟째, 뛸 때는 뒤를 보지 않는다. 성공은 뒤돌아가지 않는 것이니 넘어져도 얼른 일어나 앞으로 뛴다.


아홉째, 뻔한 결과가 예측되더라도 전력질주한다. 실력차이가 엄청나더라도 혹 가다가 넘어지기도 실격처리되더라도 내가 맡은 바는 무조건 끝까지 뛰는 것외엔 아무 것도 없다.


열번째, 내가 뛰는 '이유'를 결코 어떤 단 한순간도 망각해선 안된다. 그것이 없거나 잃으면 이겨도 허무해진다.


새벽독서모임은 글소재가 없어 쩔쩔매는 나에게 이리 귀한 질문으로 이렇게 나의 사고를 다시 뒤집어 정리시켜줬다. 위대한 정신을 지니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과의 자조모임은 나에게 지나칠 정도의 부유함을 느끼게 한다. 내게로 와준 소중한 분들, 귀한 시간, 더 귀한 정신을 아낌없이 나누며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고 진동하며 파동으로 연결되는 이 순간, 

진정한 에피파니의 전율

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에게 매일 새벽, 아침까지 이어지는 이 소중한 시간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과연, 

이런 삶을 사는 내가 어찌 게으를 수 있을까.

이런 삶을 주신 거대한 존재에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신의, 환경의 방해물들을 제거할 용기를 내게 허락해야만 하겠다. 


[지담북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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