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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y 05. 2024

우유부단한 겁쟁이인데
자의식까지 과도하다면

조지허버트의 '단시'를 다시 읽으며

책 속에서 내가 보일 때 요동없이 얌전하던 나의 감정은 정신없이 날뛰기 시작한다. 방금 전 나의 감정은 저기 감정의 귀퉁이에 고개를 쳐박아 버렸다.

'만약 당신이 겁쟁이에 우유부단하고 자의식이 과도하다면' 이라는 문장에서 '아... 난데..'싶다.


'우유부단'과 

'자의식 과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같은 공간에 놔둔 채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도록 허락한 내 자신이 많이 한심했다. '신은 겁쟁이에게는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는 명제도 알고 '과잉이 결핍보다 더 무섭다'는 진리도 아는데 나는 아직도 머리로만 알지 내 모든 세포들이 변화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내 감정이 저어기 한쪽에서 찌그러져 있으니 나는 서둘러야 했다. 조지허버트의 시가 생각났고 예전에 즐겨 낭독했던 것을 찾아 눈을 감고 들었다(아래 링크 참조)... 17세기 시인이자 찬미가인 조지허버트의 단시(주1).를 처음 접했을 때 난 얼마나 뜨거웠던지... 나를 섬기는 또 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던지 내딛는 걸음에 힘이 들어갔던지.... 그 힘을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사람의 몸은 완전히 균제를 이루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팔은 팔과 그리고 전체는 세계의 전체와. 

각 부분은 가장 멀리 떨어진 것도 동포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머리와 발이 은밀한 친교를 맺고 있고,

그 머리와 발이 달과 조수와 친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리 있는 것도

사람이 이것을 잡아 그 먹이를 보존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람의 눈은 가장 높은 별도 끄집어내린다.

사람의 몸은 작으나 전세계이다. 

우리의 육속에 그 지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풀은 기꺼이 우리의 육체를 치료한다. 

우리를 위하여 바람은 불고, 

대지는 휴식하고, 하늘은 움직이고, 샘은 흐른다.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이나 모두 우리에게 이롭다.

우리의 기쁨으로서, 아니면 우리의 보물로서, 

전세계는 우리의 찬장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오락실이다.


별은 우리를 침실로 유인하고, 

밤은 커튼을 끌어닫고, 해는 그것을 열어젖힌다. 

음악과 빛은 우리의 머리를 시중들고,

만물은 그것이 내려와 존재할 때엔 

우리의 육체에 다정하고 

올라가 원인이 될 때엔 우리의 마음에 다정하다.


사람은 많은 하인의 시중을 받으면서 이 많은 시중을 못 느낀다.

사람이 병들어 창백하고 야위어 터벅터벅 걸어갈 때엔

어느 길이나 그를 도와준다.

아 위대한 사랑이여, 사람은 한 세계이고

또한 자기를 섬기는 또 한 세계를  갖고 있다. 


나는 나를 섬기는 또 다른 세계를 지닌 하나의 세계

라는 사실을 내가 받아들이기에 

나는 아직 인지도 가슴도 영혼도 미약하지만 

내가 나를 겁쟁이에 쫄보로 여기는 한 영원히 나는 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순수하다는 것과 미련하다는 것은 종이 한장 차이다. 순수함은 인간이 개화하는 것이며 우리의 천재성, 위대함, 신성함과 같은 것들은 이 순수함의 꽃에서 탄생하는 다양한 열매일 뿐(주2)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종이 한장 차이로 나의 미련스런 바보같은 면때문에 나의 순수는 어리석음의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나는 똑똑해지고 싶다. 아는 것은 많은데 어리석은 사람말고 아는 것이 삶으로 이어지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잘 믿고 묵묵히 하는 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남보다 더 특별한 재능이라면 이것이 바보가 아니라 현명함으로 향하길 나는 바란다. 가령, 새벽독서 5년, 브런치 매일 새벽5시 발행 1년 11개월, 5년전 처음 사본 주식은 아직 열어보지도 않았고 기타등등 들쑥날쑥할 법도 한 많은 일상들에서 나는 꿈쩍않고 묵묵하다. 


이 묵묵함이 미련스러운 바보짓인지

이 묵묵함이 지혜로움을 위한 미덕이 될지 난 모르겠다.

이 묵묵함이 우유부단해 망설이기에 아무 것도 못하는 어리석음인지

이 묵묵함이 자의식이 과도해서 의심없이 믿고 있는 철부지같은 성향인지 난 모르겠다.

바보천치인지 현명함인지 난 모르겠다.


매사에 이렇다.

한번 하기로 하면 그냥 계속계속계속계속계속 한다.

타협할 지점이 분명 있어도 강박처럼 한다. 

정신병일까 싶기도 하고 인내와 집중이 끝내주는 자질같기도 하고 난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의 행위에 이렇게 극단적인 양면이 함께 존재해도 될까?

두가지 것이 같은 지점에 존재할 수 없는데 미련스런 바보가 현명해질 수는 있는 것일까?

겁쟁이에 쫄보가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일까?

자의식이 과도한데 겸손해질 수 있는 것일까?


조지허버트여! 

터벅터벅 걸어갈 때 어느 길에서나 도와준다는 그 자연을 나는 믿고 가도 되겠지요?

나에게도 나를 아끼며 섬겨주는 또 한세계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우유부단데다 과도한 자의식까지 겸한 어리석은 자인지

인내와 끈기로 신독을 지켜내는 현명한 자인지

나의 미래에 있어

나보다 허버트의 말을 믿으면 안될까?


https://youtu.be/9JQpjp2GsyA?si=XurBmMluOlFBnx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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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월든, 헨리데이빗소로우, 2017,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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