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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y 01. 2024

바늘에 찔릴지 나는 몰랐다.

‘지금’에 대하여

바늘에 찔릴 지 나는 몰랐다.

돌부리에 걸릴 지 나는 몰랐다.

손톱이 부러질 지 나는 몰랐다.

뒤돌아서 버릴 지 나는 몰랐다.

거기로 가버릴 지 나는 몰랐다.

여기로 와버릴 지도 나는 몰랐다.

소나기를 맞을 지 나는 몰랐다.

저 곳에서 멈출 지 나는 몰랐고

그 곳을 쳐다볼 지도 나는 몰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것을 위해 이렇게 서게 될 지 나는 몰랐다.     


앞으로도 모르겠지

언제 아플지

어디서 머무를지

어떻게 버틸지

어떤 것이 내게 들어오고 어떤 것이 내게서 빠져나갈지

누구를 만나고 또 누구와 헤어질 지

무엇을 정리하고 또 무엇을 정리하지 않을 지

어떤 용기가 생기고 어떤 패배감에 좌절할지

무엇이 내 속에서 창조되고 또 그것이 무엇으로 소멸될지

어디서 막막해질 지 어디서 환호성을 지를 지

무엇을 있는 그대로 둔 채 떠날지 무엇을 지니고 다닐 지

무엇이 나를 지탱해줄 지 무엇으로부터 두려움에 떨지

어떤 시간 속에서 너덜거릴 지 어떤 시간 속에서 날개를 펼칠지

어떤 연유로 공포감에 떨지 어떤 연유로 후련할 지

무엇에 내 동공이 흔들릴지 어디서 내 시력이 초점을 맞출 지

누가 날 떠밀지 그리고 누가 날 받쳐줄 지

어디서 넘칠 지 어디서 모자랄 지

내 아무 것도 모르고 내 인생을 사는구나.     


그래서 나는 멈췄다.


바라는 것의 기도도 

사소한 것들의 관심도

능동적인 자세도 

계획하고 판단하려는 습성도

잘난 이들과의 모임도

부탁이나 제안도

형식적인 안부나 전하는 인사치레도 

모르는 것을 알려 하는 부지런함도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려는 잔재주도

맛있는 먹거리를 탐닉하는 재미도 

예쁘고 근사한 자태를 꾸미려는 멋도

징징거리고 투덜대는 과거에 대한 원망도

스스로를 의심하며 재단하는 진지한 감성도


이런 것들을 시간에 매고 다녔다니...

난 참 어렵고도 힘들고 소란스럽게 지금까지 살아왔구나.     


그래서 나는 

찾았거나 찾는 중이거나 찾을 예정이다.


이치가, 섭리가, 원리가 무엇인지

자연이, 우주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내 하고자 하는, 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내게로 오는 모든 감각과 흐름에 따르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오늘'을 사는 것만이 명쾌한 현실

이라는 것을 아는 지금,     


과거에 대한 미련스러운 음미(吟味관두고

미래에 대한 맛깔나는 감미(甘味관두고

현실의 드러나는 의미(意味)와 손잡기로.      


숱한 작은 것들이 내 현실에 침투해서 요리조리 쉴 새없이 나를 훼방 놓겠지만

이제 안다.

내가 머리를 아무리 쓴들 그 어떤 것도 알아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 

아무 것도 안한다.


인생의 지도 한 장 내 손에 쥐었으니

요리조리 현실의 숱한 것들이 일상을 찌르더라도

그저 지도보며 걸으면 그 뿐.

오는 대로 받고 가는 대로 보내는

그렇게 지도에 그려진 길따라 지금을 사는 것이 유일한 나의 일이다.    

  

이 세상의 어떤 사소한 것도 함부로 상상해서는 안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숱한 작은 것들이 합쳐진 것이다. 사람들은 상상속에서만 그런 것들을 간파하고 서두르다 보니 그것이 빠져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의 모든 것은 속도가 느리고 말할 수 없이 상세하다(주).


현실의 모든 것은

속도가 느리고

말할 수 없이 

상세하다.....


주> 릴케, 말테의 수기, 2001,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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