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육체 안엔
자신과 자신의 충돌이 반복하는
마찰의 세계가 팽창한다
그 세계의 유일한 건물
검붉은 벽돌로 지어진
원통 모양의 건물은
경사진 언덕 면에 우뚝 서있다
세계의 전경을 바라보는 심의 옥상엔
잿빛의 나무 평상이 편안히 놓여 있다
노여움에 젖은 내 심정을
나른한 평상 위에 널어본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육체 안 세계는
쨍쨍한 햇빛은 나를 비추고
폭풍우가 나를 덮치는
조화롭게 뒤섞이는 혼란의 세계다
옥상에서 난 도약한다
하늘 높이 날아 오른다
심세계의 천장을 뚫는다
뚫고 나가고 만다
언제든 들어올 수 있도록
비밀의 문을 둔다
구멍이 나더라도 심세계는 팽창한다
인간의 깜냥을 넘어 팽창한다
심세계를 품은 인간,
인간을 품은 우주세계
심의 세계를 품은 존재자인 인간은, 자신을 품은 우주세계에 놓여 있다. 세계 속 존재자 속 세계. 세계 밖 존재자 밖 세계. 팽창하는 세계를 품은 인간, 그 인간을 품은 세계도 팽창한다. 팽창 속 팽창, 팽창 밖 팽창.
인간은 인간이 품은 세계와 인간을 품은 세계를 알고자 노력한다. 인간은 자신의 안과 자신의 밖을 아직 잘 알지 못했다. 나름도 아니고 새 발의 피만큼 알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인간이 가장 거만해지는 시기는 아예 모를 때도, 완전히 잘 알 때도 아닌, 어느 정도 알 때라고 말한다.
팽창과 팽창, 조금밖에 몰라 생기는 거만. 인간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도 혼란스럽고 밖도 혼란스럽고 그 자신도 혼란스러우니 말이다. 결국 인류는 자신이 소멸하기 전까지 혼란을 항상 안고 살아갈 테다. 잠재워도 다시 일어나고, 해결해도 새로운 혼란이 나타나고.
나의 삶엔 끝이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생의 종말이다. 생의 종말은 결국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나의 삶은 의미가 있었는가. 그때 나는 무엇이라 답할까. '반복되는 삶의 혼란(카뮈의 부조리로 볼 수도 있겠다)에서 나는 어떻게 실존하는가?'로 말해도 되겠다. 나날의 행복, 힘주어 쓴 시, 따스한 사랑, 나를 품은 가족, 강렬한 추억. 그때 이르러서야 난 답을 찾을 테다. 확실히 답을 찾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 답은 나만의 답, 내가 답이라고 생각하면 답이 되는 답이기 때문이다. 팽창하는 심세계. 팽창하는 우주세계. 인간, 인간세계, 언제까지 팽창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