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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회색 도시의 십자가

by 어린길잡이
ee7a0414-e93e-4585-a521-875c2428d7bf.png 회색 도시의 십자가




행인들은 도로를 가로지르고

차들은 횡단보도를 가로지른다

가로와 세로의 교차

도시에 가라앉은 더하기표


도로와 횡단보도의 조우

서로가 갈마들며 덧대는 웅장한 십자가

성역에 발을 들였을 때

난 사무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다


사람들이 영혼이 깃든

살아있는 육체라는 사실을

십자가의 목소리로 듣는다

그들이 아닌 너의 무리,

진실을 비로소 깨단했다


차 안에는 생동하는 수십년이 있었다

고통을 묵새겨본 삶의 승리자와

조곤조곤 살아가는 이의 수레가 있었다


가로와 세로가 포개질 때면

하얀 작대기를 그려놓은 검은 십자가를 꺼낸다

넋을 들추는 십자가의 이해,

그것이 회색 도시의 땅에 스며들기를 바라며




우리가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닙니다. 너와 너들의 집합이죠.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유관한 존재입니다.


<반야심경>에 따르면 우리의 존재성은 본질이 아닌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우리를 우리이도록 하는 성질은 없고, 단지 우연히 만난 것들의 연합으로 우리가 구성된다고 합니다.

의자를 분해하면 더 이상 의자로 부르지 못하지만, 못과 나무를 합치면 의자가 되지요.

결국 우리를 구성하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겪어왔던 모든 것들입니다.

오늘 마주한 사람과, 여러분이 읽으신 제 글이 여러분을 구성합니다.


나를 나이도록 하는 것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시는 분들.

내 마음을 울리는 일을 하고 싶으신 분들.

진정한 행복은 본질을 찾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저 내 앞에 있는 것을 꾸준히 반복해서 하다 보면, 무아지경에 이릅니다.

그 무아지경에 이를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앎에서 실천이 비롯되지 않고, 실천에서 앎이 비롯되는 것이죠.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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