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이 낭자한 골목길을
그대는 걸어봤는가
불신이 낳은 쇠칼에
삶을 철철 흘려 보내야 했던
슬픔을 슬픔으로만 방치해야 했던
그 사람이 남겨놓은 나지막한 생의 울림
찔러야만 칼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칼은 죽어야만 한다
사브르의 칼날과 칼끝은
우아한 춤사위를 그리지 않는가
나의 손에 들린 사브르는
왈츠의 춤을 엉성하게 춘다
엇박자
삐걱삐걱
나의 흐름과 사브르의 흐름
치열하게 뒤섞이며 완성한
짤막한 펜싱의 연주
칼은 든 자여
칼은 칼을 든 자를 지배한다
도인의 군주는
그대가 찔러야만 그대를 놔준다
칼을 쥔다는 것은
칼에 복종하는 것이다
도아일체(刀我一體)
손을 떼려고 발악할수록
검망의 뱀은 그대를 휘감으며
그대의 귓가에 속삭인다
선악과, 한 입만 먹어보라
삶을 쥐어짜 얻은
선악과의 과즙은
삶이 농후한 음료를 만들어
칼을 든 자에게 먹인다
칼 너머의 세계를 알려주는 선악과,
새빨간 칼은 달콤하다
칼이 그대를 놓아도
그대는 칼은 놓지 않는다
과연 칼은 무엇일까. 생명체를 찌를 수 있고, 물건을 벨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일까?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약자를 비난하는 논리,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날선 말, 가장 가까운 사람의 비난처럼 무형적인 칼이기도 하다. 그 칼을 든 자는 분명히 누군가를 찌르게 된다. 그리고 그 칼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도아일체, 그 칼을 부정하는 자는 이젠 칼을 부정하는 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을 부정하는 자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