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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무명씨

by 어린길잡이




꾹꾹 글자를 눌러 쓴 오래된 아이의 상장


세월은 누렇게 바랬구나


그도 새하얀 종이이던 시절이 있었겠지


펄럭펄럭 소리도 쳐 보고


소박한 소망도 품어봤을 것이야




제 18회 초등 수학 경시 대회 은상


동네 투수를 책임졌다는 오른손


사십 년 전 사고로 틀어진 오른쪽 무릎


아기피부보단 굳은살이 어울렸다




이름은 흐르는 시간에 닳았다


그림은 결국 무언가를 지우는 것




몇 안되는 낱말로 삶이 간추려지는 것을 비극으로 믿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곤 꿇은 무릎에 눈물을 흘렸다


이 무릎은 틀어지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그의 무릎이 말하는 것 같았다






이름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이름이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 나쁘지만은 않겠다고. 후벼파는 고통을 때로는 의미가 이기기도 하는 법이니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행복을 기도합니다. 가까운 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들어보는 일도 생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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