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시작한 지 어제 같은데, 어느새 남덕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실감한다.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에 꼬불꼬불한 고개에서 버스가 큰 소리로 끼익하며 트림하고, 숨을 헐떡이며 하늘에 닿은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산이 백운산인가?” 산 벗들이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며 우뚝 서 있는 산을 보며 엄살을 떨었다.
오늘의 산행은 중재를 출발점으로 백운산과 영취산을 오르내리고, 남덕유산의 육십령을 도착점으로 하는 20.82킬로미터의 길이다. 산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지난번에 내렸던 곳에서 30여 분을 올라야 했다. 한 달 만에 자연은 놀랄 만큼 물이 올라와 있었다.
오늘도 선두 그룹은 발걸음을 바쁘게 옮겼다. 중재에서 백운산으로 가는 길목의 중고개재는 산세가 평탄하고 야산처럼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중재에서 백운산까지는 3.7킬로미터였다. 지난주 합천 벚꽃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던 다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가벼워졌다. 오늘도 걸음걸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풀잎 님은 첫 구간에서는 고생했지만, 이제는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백두대간 종주 산행기를 읽고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애칭인 풀잎에서 풍겨오는 느낌은 여리지만, 청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책은 정신을 풍성하게 하고 대화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해발 1,278.6미터의 백운산 표석이 눈앞에 나타났다. 전국에 50여 개의 백운산이 있어 이름만으로는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산이다. 이제는 영취산에 올라야 한다. 영취산은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며, 동쪽에는 낙동강, 서쪽에는 금강, 남쪽에는 섬진강이 흐르는 분수령이다. 높이 올랐으니,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앞사람과 떨어지면 길을 벗어나서 고생할 수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발끝에 걸린 산죽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5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발을 재촉하자, 한 무더기의 돌과 돌탑이 보였다. 해발 1,076미터의 영취산을 알리는 표석이 없었다면 산의 정상이라고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돌무더기를 보면서 이곳도 1,500여 년 전 백제와 신라가 자웅을 겨뤘던 아막성터와 같은 산성이 있었던 것은 아닐지 상상했다.
배꼽시계가 밥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앞서간 산 벗들이 점심을 먹고 남겨둔 상추와 고추장을 맛있게 먹으라며 여유롭게 떠났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벗들에게도 젓가락을 쥐여 주며 함께 점심을 먹는 시간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 처음으로 다리를 펴고 앉은 시간이라 더욱 그러했다.
앞선 벗들을 쫓아가려고 서둘렀던 여왕벌 님과 풀잎 님이 다시 돌아와 고글을 찾았다. 나는 그들이 떠난 자리를 둘러보며 여왕벌 님의 고글을 주워 배낭에 챙겨 넣었던 터라 모른 척하며 “점심 먹었던 곳에 다시 갔다 오셔야겠네요”라고 말하며 능청을 떨었다. 그러나 그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웃으면서 “그냥 내 뒤를 쫓아오세요”라며 한낮의 느슨함을 경계했다.
혼자 걷는 산길은 좋았다. 5주간의 5급 승진 리더 교육을 받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반환점을 앞두고 있다. 전국에서 5급으로 승진한 공무원들과 처음 만났을 때는 서먹했지만, 지금은 차를 마시며 근황을 묻고 서로 사근사근해졌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을 생각해 본다. 전반전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고, 부딪히고 쓰러지며 또다시 일어나 달렸다.
산에 오르고 내려가는 것이 어쩌면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관 승진 리더 교육 과정 중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있었는데 내가 살아오면서 슬프고 괴롭고 즐겁고 기뻤던 사건들을 나이대별로 그래프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나는 1절 하얀 모조지 위에 그래프를 그렸다.
내 삶의 그래프는 오르락내리락 크게 요동쳤다. 옆에서 내 그래프를 보고 있던 동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다가 슬그머니 교육장 밖으로 나왔다. 여러 사람도 밖으로 나왔다. 그들도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되돌아보니 내 삶의 7할이 바람이었다.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서일까.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힘들었을 때 삶을 포기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을 무의미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일도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후반전은 울퉁불퉁했던 전반전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여유롭기를 바란다.
북바위에 올라 저 멀리 보이는 저수지를 감상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가슴으로 받아내고 다리에 힘을 주어 오르니 깃대봉이 보였다. 구시봉이라고 불리는 깃대봉은 1,500여 년 전, 신라와 백제가 자웅을 겨루며 기를 꽂았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자국의 기를 꽂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를 상상해 본다.
이제 육십령까지는 2.5킬로미터,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산길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늘도 맑은 공기를 많이 마셨으니, 다음 주에는 더욱 즐겁게 내 삶을 살아보자. (5차, 중재 - 영취산 - 육십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