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치재에서 시작해 새맥이재를 지나 시리봉에 오르고, 복성이재를 거쳐 봉화산에 올라 중재로 하산하는 21.3킬로미터의 산행이다. 아침 9시, 지리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 예정 시간은 7시간이었지만, 선두는 3시간 만에 마치겠다며 산으로 들어섰고, 나는 후미에서 선두를 쫓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새맥이재까지 약 40분 동안의 꾸준한 오르막이 이어졌다. 1994년과 1995년에 일어났던 산불의 흔적은 여전히 뚜렷했다. 인간의 부주의로 인해 타버린 나무들은 재생을 멈춘 듯 보였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은 겨울의 찬 기운을 잊게 해주었다. 후미를 담당하던 미소 님은 최근 수리산행을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아 앞서 나가려 했지만, 나는 주중의 음주로 인해 여전히 힘겨운 상태였다.
솔밭이 이어졌다. 며칠 전 내린 비를 머금은 솔잎에서는 청량한 향기가 풍겼다. 나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의 산을 특히 좋아한다. 이 시기에는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고, 평소엔 보이지 않던 길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무 밑동은 굵고 견고해 보였다. 겨울 동안 나무들은 잎 대신 나이테를 키워내며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세계 빈민 구호 활동가 한비야는 “울퉁불퉁한 삶이 나를 강하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겨울나무처럼 되기를 권한다. 나 역시 역경을 이겨내고 겨울나무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돌무더기를 보았다. 아막성터였다.
천수백 년 전, 신라와 백제는 이곳에서 영토를 두고 격전을 벌였다.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기 위해 병사들은 피를 흘리며 목숨을 걸었다. 시간이 흘러 성벽의 돌들은 무너졌고, 후대 사람들은 평화를 기원하며 돌탑을 쌓았다.
새맥이재에서 봉화산으로 향하는 길은 수목이 우거졌다. 삭정이와 물기를 머금은 나무들은 종아리를 스쳤고,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철쭉나무의 군락지는 꽃을 기다리며 그저 고요했다.
봉화산 정상에 오르기 전, 양지바른 곳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걸음이 느린 나는 점심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했다. 양말을 갈아 신고 젖은 수건을 바꾸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바람따라 님’이 건넨 다래주 한 모금은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까마귀가 우는 소리에 사람들은 재수 없다며 혀를 찼지만, 나는 까마귀를 길조라고 생각했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은 옛 조선의 상징을 삼족오(三足烏)라고 했다. 삼족오는 태양에 사는 발이 세 개인 까마귀라고 한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우리 한민족의 상징이자, 길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한반도의 북쪽 사람들도 남쪽 사람들과 같이 까마귀를 보면서 재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여행했던 일본, 인도, 아일랜드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겼다. 특히 인도의 공원에서 까마귀에게 모이를 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해발 919.8미터의 봉화산 정상에 오르니 함양읍과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하얗게 펼쳐졌다. 백두대간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이곳까지 왔다. 그 시간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산을 찾아 이야기하고, 산은 나를 다스리면서 이곳까지 왔다. 어제 인사에서 늦게나마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어제와 다른 환경에 처한 나는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 왕이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그 기쁨을 기리기 위해 반지 세공사를 불러 반지를 하나 만들게 하며 다음과 같은 글귀 새겨주기를 명령했다. "내가 큰 승리를 거두어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으며, 큰 절망에 빠져 힘들 때 비굴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도록 하라." 그러자 반지 세공사는 근심에 빠졌다.
도대체 반지에 어떤 글귀를 새겨야 할까? 마땅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은 세공사는 지혜의 왕 솔로몬을 찾아가 지혜를 구했다. 이야기를 들은 솔로몬왕은 반지에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라는 글귀를 새기라고 조언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의 말로 반지에 새겨졌다는 문구를 항상 생각하며 나 자신을 기쁨과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 자제하며 용기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김정녕 안산 등산클럽 회장과 함께 산행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술과 담배로 건강을 해쳤지만, 산행을 통해 92킬로그램에서 68킬로그램까지 체중을 줄이고 지금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산악 마라톤 마니아로서 그는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로 “어이, 맨발, 오늘도 알바했지?”라며 유쾌하게 웃음을 주었다.
소나무 숲속에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상쾌함이었다. 봉화산에서 중재로 가는 하산길은 경사가 급했다. 무릎 보호대는 급한 경사에서 내 무릎을 보호해 주었다. 오래 가려면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도 그럴 것이다.
중재로 내려가는 길은 떡갈나무 낙엽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혼자 걷는 산길이 좋다. 지나온 많은 일이 떠오른다. 마을이 보였다. 중재로 내려가는 길은 땅이 얼었다가 녹아 질척했다. 등산화에 진흙이 더덕더덕 붙었다. 싫어하는 것이 붙어있는 것처럼 성가신 것이 없다. 진흙은 털고 또 털어도 다시 붙었다.
중재에서 내려오니 산자락에 소나무가 평온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함양 백전면 중리마을에서 홀로 쑥을 뜯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모진 세파와 눈바람을 맞으면서도 땅을 뚫고 싹을 틔운 쑥이 쓰거나 독한 맛을 내지 않고 상큼한 맛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독한 날씨를 뚫고도 생명을 틔운 쑥처럼 나도 굳세게 살아가야겠다. 봄이 들판에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산행은 중재에서 백운산과 영취산을 넘고 남덕유산을 거쳐 육십령까지 20.82킬로미터 구간이다. (4차, 사치재 - 봉화산 - 중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