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경계로 한 죽령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린 임 대장이 “산꼭대기에 눈이 하얗게 덮였네”라고 소리쳤다. 아이젠을 가져오지 않은 모두가 “설마, 5월인데” 하며 걱정했다. 소백산 꼭대기가 하얗다. 세상살이가 수상하니 날씨도 수상하다. 영상 20도까지 올라간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집에서 나올 때 여름 장갑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는데, 이곳은 초겨울 날씨다. 재킷을 벗고 산 오를 준비를 하던 회원들이 바람이 불자 다시 웃옷을 입었다.
오늘 오를 구간은 죽령에서 시작하여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을 찍고 고치령으로 내려서는 24.84킬로미터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좌석리까지 접속 구간 4킬로미터 이상을 더 걸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정이다.
오전 6시 50분. 죽령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소백산 천문대 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길에 눈이 녹아 얼었고, 나뭇가지에는 눈이 살포시 앉아 있었다. “5월 맞아?” 이구동성이었다. 지난주에는 4월 기온으로는 103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고 침울한데, 날씨마저도 사람들을 움츠리게 했다. 그러나 언덕에 오르자 이내 땀이 이마에 맺혔다.
날씨가 오락가락하고 쌀쌀해져서 지난 4월 13일 군에 입대한 아들이 훈련받기가 힘들 것이다. 아빠인 내가 그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들이 훈련받는 곳이 내 고향이니, 찾아보면 연이 닿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아빠로서 내가 찾은 방법은 신교대 카페에 방문하여 힘든 과정을 이겨내라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후 군 통수권자를 비롯한 최고위 자들이 지하 벙커에서 대책 회의를 했는데 그곳에 모인 사람 중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이 누구냐고 세상은 꼬집었다. 불교인권위 사무국장 범상 스님은 칼럼을 통해 “좌파 스님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정치인을 비롯하여 현 정부의 각료와 핵심 인사들 대부분이 자신과 자녀의 병역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피하는 것은 부모가 개입하지 않으면 20대 초반 청년의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그래서 이해할 만한 이유 없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좌파는 곧 빨갱이라고 논리를 펴는 것은 결코 애국심이나 국가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친일 친미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파렴치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한때 군대에 가는 젊은이들은 어둠의 자식이라는 이야기가 회자하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가 사는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건강하게 원칙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부당하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실의에 젖은 사람들의 눈물은 점점 심화하고 있다. 산을 덮은 눈은 세상살이에 힘들어하며 흘리는 눈물을 덮어주려는 하늘의 애틋한 마음이 아닐까. 산이 하얗다.
그렇게 1시간 이상 올라간 곳에 천문대가 우뚝 서 있었다. “밤에 이곳에 와서 별을 보면 근사할 텐데”라는 바람 소리가 났다.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보며 어린 왕자가 되어 그리운 사람들의 별을 찾아보는 삶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까.
연화봉은 백두대간 구간은 아니지만, 들렀다 오기로 했다. 흙 위에 덮인 눈을 밟았다. 몇 발짝 걸으니 해발 1,394.4미터의 연화봉 표석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고 저 멀리 산들이 겹쳐 있었다. 본격 산길로 들어서서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으로 향했다.
소백산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경계로 1987년 12월 14일 국립공원 18호로 지정된 백두대간 중앙부에 있는 산이다. 그동안 늦봄에 철쭉을 보기 위해 몇 번 오르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긴 구간 산행은 처음이다.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백두대간 줄기를 보면 금강산에서 휴전선을 넘어 설악산과 오대산을 일으키며 태백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꺾다가 처음 높이 일어서는 산이 소백산이다. 산은 북서풍이 심하게 몰아쳐서 겨울 설경으로 유명하고 연화봉과 비로봉 그리고 국망봉을 잇는 주 능선은 부드러워 여성적인 산이라고도 불렸다. 소백산은 지리산과 같이 한국전쟁 전후에 빨치산이 활동했던 곳이다. 한민족의 슬픈 역사가 스며있는 산이다. 최근 남과 북은 냉각기류가 최고조로 증폭되어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시작했던 금강산 관광이 끊어진 이후 북한은 금강산 특구에 있는 우리 측 자산들을 몰수하고 있다. 중국의 장롄구이 교수는 올해 금강산 관광뿐만 아니라 백두산까지 열릴 것이라고 진단했으나, 급격하게 남북 관계가 냉각되어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5월 하순에 피는 철쭉은 수상한 날씨에 눈을 뒤집어쓴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상고대에 탄성을 지르며 나아갔다. 비로봉 가는 길은 바람이 거셌다.
선두 그룹은 이미 한참 앞서 나갔고, 이판사판 님과 꼬깨비 님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는 나와 마라톤 여행을 즐기는 이장신 선생이 있었다. 처음 백두대간 등산클럽에 참여하는, 이 선생은 산악마라톤도 하고 있어 내 발보다는 앞섰지만, 함께 이야기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3시간 만에 10.68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비로봉에 도착했다. 해발 1,439.5미터의 비로봉은 소백산의 최고봉이다. 비로봉에서 국망봉 가는 길은 산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바람이 거셌다. 눈이 쌓였던 곳에는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지만, 눈이 녹은 곳은 풀들이 고개를 숙였다가 부동자세로 서 있어 길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망봉 1,420.8미터라고 쓰인 표석이 바위 옆에 서 있었다.
허기가 몰려왔지만, 앉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햇볕이 쏟아지는 바위 위에서 오이와 바나나를 베어 물고 투정 부리는 다리를 다독였다. 이제 오늘 산행의 절반을 넘었다. 고치령까지는 8.27킬로미터. 그런데 길이 뚝 끊어지고, 눈과 흙이 바지에 더덕더덕 엉겨 붙고 등산화를 물어뜯었다. 더 지체하면 오히려 허기 때문에 힘들 것 같아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자리를 폈다.
아내가 저녁 늦은 시간에 조리한 돼지고기를 꺼냈다. 여러 사람이 싸 온 멸치, 김, 김치, 깻잎이 배낭에서 쏟아져 나왔다. 진수성찬이다. 툭툭 털고 일어났는데, 잔뜩 눈을 먹었던 흙이 느슨해진 내 발을 낚아챘다. 바지와 등산화, 스틱, 장갑은 흙에 범벅이 되었다. 노랑제비꽃이 쉬었다 가라며 서두르는 발길을 잡았다. 눈 속에서도 꽃은 피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종착지인 고치령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좌석리까지는 접속 구간이다. 낯선 사내가 출발하려던 차에서 소리쳤다. “안산에서 온 사람들은 이 차를 타세요.” 4킬로미터 이상 포장도로를 걸어야 버스가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는데, 이게 웬 떡인가. 1톤 화물차 뒤 칸에 매달려 인천공항세관 백두대간 클럽과 10여 분 내려가는 길옆에는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뒷말: 당초 걸어야 할 대간 길은 이화령, 조령산, 하늘재였으나 산불 예방으로 통제가 되어 부득이 구간을 조정했다. (17차, 죽령 - 소백산 - 고치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