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었지

by 김미희랑여데레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은은한 향기가 난다. 둘러보니 은목서 한그루가 있다.

삭막하고 분주한 이 아침에 코를 자극하는 향기 덕분에

잠시 휴식을 느끼며 행복감에 취한다

은행나무들이 아파트 주변에 우뚝우뚝 솟아있다. 아직은 푸르름을 자랑한다. 그 또한 잠깐이지만 눈이 호강한다.

출근시간이다. 나는 답답하여 대기실 밖에 서있다.

8시 40분


버스정류장 대기실 안에는 젊은 아가씨가 과일 야채 등을 봉지에 싸와서 폰을 보며 주섬주섬 먹는다 아마 아침식사인듯하다


세 명의 다른 여인은 그냥 폰을 뒤적이다 버스가 오나 확인한다 워킹맘들인 듯하다 얼마나 급히 나왔을까 식사는 제대로 못했을 거고 애들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그들에게도 은목서의 향을 전하고 싶었다. 잠깐 향기를 맡으며 길게 숨을 내쉬게 하고 싶었다.


우리 애들이 유아원에 다닐 때 어느 날 아침이 생각났다. 그날은 유아원 소풍 가는 날이다. 김밥을 싸야 하는데 한 장으로 싸자니 너무 크고 그래서 머리를 쓴 게 반장 김밥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꼬마김밥! 그 시절엔 나의 독특한 발상이라고 우리 부부는 조그맣게 애들 입에 쏙 들어가도록 싸면서 마주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행복한 미소였다. 그땐 주방에 식탁은 없었고 바닥에 앉아서 김밥을 쌌고 애들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다 준비하고서 애들 깨우고 유아원차에 실어 보낸다. 얼굴에 화장은 하는 둥 마는 둥 출근했던 바쁜 시절이 잠깐 버스를 기다리며 지나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급식이 없었다. 출근하면서 두 아들의 점심상을 준비해 놓고 공책 한 권에 지킬 일 들을 적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로 시작하여

잘 다녀왔니, 친구들과는 잘 놀았니. 밥은 이렇게 저렇게 먹고, 오후에는 저렇게 이렇게 하렴

사랑한다. 엄마가~ 로 끝을 맺는다.

매일 엄마의 말을 대신하는 공책이다. 가끔 빠뜨린 날은 퇴근하는 나에게 엄마 오늘은 공책이 없었다고 투덜댄다. 아마 엄마의 편지가 저희들을 맞이하여 주는 느낌이었던 것 같았다


지금은 폰이 있으니 상상이 되려나 싶다.

그러다가 고학년이 되어 도시락을 싸게 되고 또 거기에 편지도 써넣어 사랑을 표현하곤 했었다.

그 아들들이 의젓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이제는 우리를 보호하느라 안부전화하고 건강을 살펴준다.


오늘도 버스정류장으로 걸어오는데 큰아들의 전화다.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산에 가시더라도 무리하지 마세요

그래 너도 에너지 컨트롤 잘하고 잘 먹고 등등

사랑이 넘실댄다.

감사한 아침이다.


약속장소에 5분 늦게 도착하여 벌칙으로 찻값은 냈지만 행복 가득이다. 밖에 보이는 무등산 자락을 내다보며 정말 가을이 예뻐요 하고 말하는 친구의 표정에 반한다. 더 맛있는 거라도 사주고 싶었다

오늘의 커피는 과테말라 레드핑크게이샤란다.

비록 벌금 커피였지만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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