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과 심리학이 알려주는 시간 컨트롤], 장 폴 조그비
즐거운 시간은 길게, 지루한 시간은 짧게 만들 수 있을까?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나름대로 즐겁게 잘 살았는데 지나고 보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시간을 헛되이 쓴 것 같고, 내 인생은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다. 비디오 게임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으련만, 인생에 2회전은 없다.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것대로 두어라, 'let bygones be bygones'이다.
시간은 유한하며 일방적으로 흐른다. 되돌릴 수도 멈출 수도 없다.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이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재 이 순간뿐이다. 지나간 시간도 미래의 시간도 내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영원히 살 것 같았고, 절대 늙지 않을 것 같았다. 인생은 변화 없이 그대로 일 것 같았고 그래서 시간은 내게 막 끌어다 쓸 수 있는 바닷물과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갔고, 늙어버렸다. 어린 시절의 나를 내 자식들을 보며 추억할 뿐 그 시절의 나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버린 시절의 후회는 이쯤 접어두고, 앞으로 남은 인생이라도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앞으로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시간을 낭비하는 방탕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좋은 기억은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고, 나쁜 기억은 빨리 치워버리고 싶다. 좋은 순간은 느리게 느끼고 싶고, 나쁜 순간은 빨리 흘려버리고 싶다.
사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다. 우주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뿐이다. 세상의 규칙을 만들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 365일 24시간을 발명한 것일 뿐, 개개인의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과 행복감의 차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이 각자의 상황과 감정, 순간의 경험 등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우리는 위 4가지 경우 중 행복한 경험은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느리게 만들고 불행한 경험은 빠르게 지나가 버려 찰나와 같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여유롭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시간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좋은 건 느리게, 나쁜 건 빠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장 폴 조그비의 '뇌과학과 심리학이 알려주는 시간컨트롤'은 어떻게 하면 즐거운 순간을 느리게 흐르게 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기분 나쁘고 지루한 순간을 빨리 지나가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내 감정과 상황, 경험의 유무에 따라 시간은 빠르게 또는 느리게 흘러간다.
내 감정이 분노, 좌절, 우울과 같은 상태라면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그리고 매번 경험하는 수동적 인일들은 자꾸 시계를 들어 보게 만들 만큼 느리게 간다. 반복된 직장생활 속에서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경험을 떠올리면 쉽다.
반면 내 감정이 희열, 궁금함, 흥분한 상태라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내가 어떤 상황에 몰입하고 있거나 집중하고 있다면 시간의 흐름은 화살과 같다. 가령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흥미진진한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때의 느낌을 상상해 보면 된다.
2. 시간은 위험한 상황이거나 경외감에 휩싸였을 때는 느리게 흘러간다.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의 상황이나 몰아치는 파도를 보고 있을 때를 상상해 보자. 사고가 나기 직전의 상황에서는 몸의 모든 감각기관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하고, 순간적인 민첩성과 판단력이 증가한다. 그래서 찰나의 순간에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통해 중요한 판단을 내리면서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고 느낀다.
또 자연경관의 압도적인 위용에 감화되는 순간에는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높은 산 정상에 올라 장대한 산맥의 광경을 감상할 때, 또는 하와이 해변에서 거대한 태평양 바다가 장쾌한 파도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감상할 때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3. 새로운 기억의 순간들을 많이 남겨야 좋은 기억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기억은 모두 남겨지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보관되는 기억들은 특별한 순간의 기억들일 수밖에 없다. 첫사랑, 첫 키스, 첫 소풍, 첫 졸업식 등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그것이 첫 번째 기억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을 회상하는 메커니즘이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을 토대로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에 새롭고 특별한 경험들을 많이 남길 필요가 있다. 익숙한 기억은 도태된다. 새로운 기억은 새롭게 저장된다. 익숙한 길거리를 지날 때라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가령 4월의 어느 봄에 피어난 한송이 들꽃은 익숙한 출근길의 새로운 경험이다.
자, 결론이다. 어떻게 하면 즐거운 일을 오래 기억하고 느리게 경험할 수 있을까? 즐거운 일 속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 여행을 갔을 때를 예로 들면 되도록 여행지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을 누려봐야 한다. 패키지 여행하듯 중요 관광지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현지 시장도 가보고, 그 동네 사람들이 잘 가는 맛집도 가보고, 현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의식도 용기 내서 따라 해봐야 한다.
반대로 지루하고 기분 나쁜 일을 빨리 지나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수동적인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몰입하고 집중하는 일은 빨리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내 인생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반복되는 일들을 내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중요한 일로 만들어서 몰입하고 집중하자. 가령 직장생활에서 반복되는 업무가 있다면 그 업무가 내 인생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미칠지 스스로 상상해 내라. 의외로 상상의 힘은 크고, 그 상상은 곧잘 현실이 된다.
오래된 불교경전에서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우주의 미래가 당신이 한 일에 달려있는 듯이 행동하라. 당신이 무엇을 하든 조그만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향해 웃어보라."
때론 자아도취도 필요하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될 때 내 세상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내가 내 세상을 여유롭게 음미하듯 즐길 때 내 세상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갈 것이다. 내 시간의 주인은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