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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pr 17. 2024

두 딸 아빠의 운수 좋은 날

오늘 아침은 신기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오늘 해야 할 공부 하자.’는 나의 말에 선선히 따라주었다. 공부의 ‘ㄱ’만 꺼내도 하기 싫다며 꽈배기 트위스트를 추던 아이들이 웬일인지 오늘 아침은 얌전히 내 말을 따랐다.


이거 왠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식 결말로 끝나는 것이 아닌지 내심 불안했지만 그래도 말 잘 듣는 아이들을 얌전히 지켜보기로 했다. 큰 딸은 6살, 막내딸은 4살로 2살 터울이라 살짝 공부량은 차이가 있다. 큰 딸이 학습지를 30분 정도 풀어야 한다면, 막내는 10분 정도면 하루 공부를 끝낼 수 있다.


아무래도 막내는 어린지라 한 2,3분 정도 공부를 하더니 하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큰딸은 ‘흥 나는 너 같은 애송이와는 달라.’라는 듯한 표정으로 꾸준하게 공부를 이어갔다.


그래도 꾹 10분 정도 눌러앉아 사이좋게 공부하는 두 딸의 모습이 뿌듯하고 대견했다. 다행히 막내도 자기 할 공부는 끝냈고, 보상으로 유튜브를 보게 해 줬다. 먼저 공부를 끝낸 동생이 옆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자면 샘이 날만도 한데 큰 딸은 오늘따라 차분했다.


20분 정도 지나고 자기 할 분량을 끝마친 큰 딸에게 “아이고, 고생했어요.”라고 칭찬을 해주니, 큰 딸은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는 히딩크에 빙의해서 다른 공부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거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라서 격하게 큰 딸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매달 할당량이 있는 영업사원이 할당량을 채우고도 추가 근무를 하겠다는 열의를 보이는데, 어느 사장이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큰 딸은 이달의 우수 사원상을 받아 마땅했다.


“우리 딸 최고야. 너무 멋지다!”


연신 큰 딸에게 칭찬을 하다 보니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조심스럽게 옆에 앉아서 놀고 있는 막내를 흘겨보니 내심 부러운 눈치였다.(여자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는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생존할 수 있다.) 아빠의 칭찬을 독식하는 언니를보며 막내딸이 시샘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나는 바로 세력 균형을 맞추기로 결심했다.


막내딸을 씻긴다는 명목으로 따로 불러낸 나는 어제 있던 막내딸에 대한 할머니의 칭찬을 들려주었다.


“어제 할머니가 전화 오셨을 때 빨리 끊으려 하니까 우리 딸이 언니와도 통화해야 된다고 기다리라고 했다지? 그 말을 듣고 할머니가 너무 우리 딸이 너무 친절하고 착하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우리 딸 참 잘했어요~”


남을 칭찬할 때 과장은 필수라 했다. 아이에 대한 칭찬이라면 과장은 더없이 필요한 수사법일 것이다. 큰 딸에게 한 칭찬의 수위를 맞추려고 살짝 오버하며 막내를 칭찬했다. 막내의 리액션을 바라고 한 칭찬은 아니었다. 칭찬할만한 착한 일을 칭찬한 것뿐이니까.


그런데 막내딸이 지긋이 나를 바라보더니 진심 어린 눈빛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아빠 사랑해.”


중년에 접어들어 감상적인 것인지 몰라도 눈물이 핑 돌았다. 남자가 울면 주책이니까 울진 않았지만 막내가 말하는 눈빛과 표정, 말투가 선명하게 내 가슴에 박혔다. 부모로서 마음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오랜만에 다시 경험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 다른 우주를 가진 두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또 다른 신세계인 아이라는 세계는 부모가 되는 법을 배워 본 적도 없는 부부를 난감하게 만든다.


부부끼리는 성인이니까 말이라도 통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부모가 한없이 자기를 사랑만 해주는 존재이길 원한다. 하지만 양육이라는 게 항상 아름다운 순간만 존재하지 않기에 부모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아이가 다른 아이의 물건을 훔쳤다면, 아니면 다른 아이를 때렸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것만 능사인가? 훈육이 필요하진 않을까? 훈육이 필요하다면 그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이런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부모 교육을 받지 못한 어른들은 심각한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많은 육아서적들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라는 부분이다. 훈육이 필요하더라도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내는 방식의 훈육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물건을 훔친 아이에게 “너는 도둑놈이야! 경찰이 잡아간다. “라고 윽박지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존감의 상처를 입은 아이는 훔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보다 도둑이 되어 잡혀가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먼저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려면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필수적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생애 처음 접하는 사회관계인 가정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가정이 하나의 기업이라고 볼 때 아이들은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과 같다. 신입사원의 포부와 열정을 복사 심부름 따위로 낭비할 수 없듯,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도 도전할 기회를 주고 성취를 열렬하게 칭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큰딸과 막내딸에게 균형적인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과도하게 칭찬을 남발했던 나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칭찬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아빠 사랑해.”로 보상받았다.


아이들이 아직 잠들지 않았기에 오늘의 결말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 오늘은 ‘운수 좋은 날’ 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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