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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pr 23. 2024

나쁜 중독을 좋은 중독으로 바꾸기

[도파민네이션], 에나렘키

기훈이 형은 왜 그렇게 미친 듯이 뛰었을까?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친해진 기훈이 형이라고 있었다. 기훈이 형은 비쩍 마른 몸에 얼굴도 조막만 하고 창백해서, 둔중한 몸매에 얼굴도 크고 까무잡잡한 나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성격도 외모처럼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어서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쳐야 하는 영업을 꽤 어려워했다.


어느 날 기훈이 형과 나를 포함한 직장동료 4명이 술자리에서 이제는 좀 열심히 살아보자는 결의를 했고, 그날 이후 4명은 손을 맞잡고 '크로스핏'이라는 미친 운동을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크로스핏'은 10년 전 당시만 하더라도 낯선 운동이었다. 에어로빅을 할 것 같은 넓은 장소에 운동복을 입을 20명가량의 사람들 모여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른다. 30분 동안 쉬지 않고 맨몸운동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몸을 탈진하게 만들 만큼 고난도의 동작을 반복한다. 이는 마치 축구선수들이 하는 서킷트레이닝과 같았다.


'크로스핏'을 하고 나면 모두들 영혼이 탈출한 것처럼 진이 빠져서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을 가진 기훈이 형은 크로스핏을 하고 나면 새하얀 외국 달걀처럼 얼굴이 하얘졌다. 그 모습을 보고 괜히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오지랖을 떨며 "기훈이 형 괜찮아요?"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어 기분이 좋아."로 전혀 형 답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크로스핏'을 한 목적이 결혼식을 앞두고 단기간에 살을 빼는 데 있었으므로 6개월 정도가 지나고 운동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기훈이 형은 그 운동을 꽤 꾸준히 했다. 한 2년 정도 이상은 했던 것 같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고 내가 이직을 하자 기훈이 형과 소식이 끊어졌는데, 3년 정도 지났을 때 우연히 기훈이 형 카카오톡 메인 사진을 보게 되었다.


비쩍 마른 몸에 내성적이고 야리야리하던 기훈이 형이 제법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마라톤 완주를 하고 메달을 움켜쥔 체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운동의 필요성을 잘 모르겠다. 왜 멀쩡한 몸을 혹사를 시켜서 괜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처럼 자명한 일인데, 아직도 나는 운동을 하면 몸이 나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천동설을 믿는 멍청한 음모론자와 같다.





게임 중독을 독서 중독으로 음식 중독을 운동 중독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고 나면 순간적인 즐거움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나쁜 중독 말고, 장기적으로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하는 좋은 중독에 빠질 수 있다면 내 삶이 얼마나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인가?


중독이란 '내게 해를 가하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즐거움을 참지 못해 반복적으로 하는 강박적인 행동'을 말한다고 한다. 결국 나쁜 중독이라는 말은 중독의 뜻에 따르면 '역전앞' 같은 중복된 말이고, 좋은 중독이란 말은 중독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중독은 그 자체가 나쁜 말이다.


그럼 습관이란 말은 어떨까? 습관은 좋고 나쁜 의미 없이 중립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궁금한 진짜 질문을 이렇게 정리해 보자.


중독을 극복하고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이 가능할까?


중독은 극복할 수 있다. 우리 몸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중독은 쾌락에서 시작된다. 게임을 하다 보면 기분이 좋고, 술을 먹다 보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게임이 끝난 뒤에도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자꾸 생각이 난다. 그 생각이 나는 시간은 괴롭다. 일상생활이 손에 안 잡히고 빨리 게임을 하고 싶고 술을 먹고 싶다. 그래서 다시 게임을 하고 술을 먹는다.


여전히 기분은 좋다. 하지만 전날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다. 전날 100의 기분 좋음을 느꼈다면 오늘은 60 정도만 기분이 좋다. 오늘 게임과 술자리를 끝내고 나니 다시 게임과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이 전날보다 더 강렬하게 든다. 괴로움도 더 심해졌다. 이제는 도저히 게임에서 손을 떼지 못하겠다. 술을 계속 먹고 싶어서 팩소주에 빨대를 꽂아서 먹게 되었다. 결국 게임과 술을 중단하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일상생활이 전부 게임과 술로 도배가 되었다. 그렇게 게임중독, 술 중독자가 되었다.


이처럼 중독은 처음에 쾌락으로 시작해 이후 고통이 시작되고, 중독적 행위를 그만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면 그만두는 고통을 견디기 위해 중독적 행위를 계속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중독적 쾌락은 고통을 불러온다. 이는 필연적이다.


진화적으로 볼 때 인간이 쾌감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다. 고통을 회피해야 좀 더 생존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쾌감을 쫓아 딸기만 따러 돌아다니다가 맹수에게 잡혀먹기 십상이다. 호랑이가 쳐다보는 오싹한 기분이 들면 바로 도망치는 게 더 중요하다. 조그만 고통이라도 우리가 견디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중독을 끊지 못하는 것도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럼 중독은 극복 불가능한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인가? 그렇지는 않다. 중독이 발생하는 주된 이유는 쉬운 접근성에 있다. 게임 중독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핸드폰만 들면 게임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술 중독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집 앞 편의점에만 가도 다양한 술들을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중독에 빠지기 쉬운 접근성만 차단하면 중독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몸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중독에 빠져도 한 달만 중독을 끊어내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다. 게임을 한 달만 하지 않으면, 술을 한 달만 먹지 않으면 게임, 술 중독이던 이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 몸은 항상성이라는 성질이 있어서 가만히 두면 평균적인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렇다면 중독을 극복하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와 관련해 우리는 인간의 쾌락과 고통 메커니즘이 서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쾌락이 있으면 고통이 따라온다. 그럼 그 반대는 어떤가? 고통이 있으면 쾌락이 따라올까? 그렇다. 놀랍게도 이는 사실이다.


적절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더 건강해진다.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짜릿한 쾌감도 맛볼 수 있다. '러너스 하이'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마라토너들이 극한의 달리기 끝에 만나게 되는 쾌감의 순간을 '러너스 하이'라고 한다. 우리 몸은 고통이 심해지면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엔도르핀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발생시킨다. 엔도르핀은 일종의 마약 같아서 우리 몸을 순간적으로 마약에 취한 것처럼 기분 좋게 만든다.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던 프로젝트를 끝내면 기분이 어떤가? 날아갈 듯 기분이 좋지 않은가? 3년 내내 개고생 하면서 공부했던 고3 수험생들이 수능시험이 끝나고 미친듯한 황홀경에 취하는 것은 우리가 자주 보는 광경이 아닌가? 이처럼 인간은 고통을 통해 쾌락을 맛볼 수 있다. 고통은 쾌락의 반대말이 아니다. 고통은 쾌락을 느끼는 시발점이다.


좋은 습관은 처음에 시작하기 힘들다. 독서는 따분하고 운동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려운 책을 끝끝내 읽고 나면 기분이 좋고, 힘든 운동 후 맥주 한잔의 기쁨은 세상 최고의 기쁨이다. 이런 고통 뒤 느끼는 쾌락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게 되면 좋은 습관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중독을 끝내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중독은 한 달 정도만 참아내면 우리 몸이 알아서 평정심을 찾아주니 충분히 할만한 일이다. 좋은 습관도 한 달 정도만 고통을 참아내면 고통뒤 느껴지는 쾌락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 자연스러워진다. 즉 중독이 주는 순간적인 쾌락보다 장기적인 고통이 크다면, 좋은 습관이 주는 순간적인 고통보다 장기적인 쾌락이 더 크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습관만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좋은 행동 기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야 기훈이 형이 바뀐 이유를 잘 알 것 같다. 비쩍 마른 몸에 술을 좋아하던 그 형이 왜 술을 끊고 달리기에 미치고 운동에 미친 사람이 되었는지를 말이다. 기훈이 형은 운동을 통해 진정한 쾌락을 느꼈을 것이다. 술을 먹고 헤롱거리며 비틀비틀 밤거리를 걷는 것보다 한강을 따라 여유롭게 달리며 시원한 밤공기를 느끼는 것이 훨씬 기분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기훈이 형은 그렇게 어제보다 좋은 오늘을 사는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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