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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pr 19. 2024

뜨끈뜨끈한 국밥같은 지옥여행

[신곡-지옥편], 단테


단테의 신곡은 너무 어려운 책이다. 나는 책을 볼 때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주석은 보지 않는다. 독서에 흐름이라는 게 있는데, 주석을 계속 흘깃거리다 보면 흐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은 주석을 보지 않으면 아예 읽을 수가 없었기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석을 흘깃거리게 되었다. 이러니 독서의 흐름이라는 게 생길 리 없었고 그래서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게 웬걸, 다 읽고 해설을 보고, 다시 훑어보니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 아니던가?


단테의 신곡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편, 연옥 편, 천국편 이렇게 말이다. 각각 단테가 여행을 하는 장소가 제목으로 정해져 있는데, 여행의 첫 시작은 지옥부터 시작한다.


35세의 인생 중반전에 막 뛰어든 단테는 어느 날 숲에서 길을 잃는다. 어두운 밤 숲에서 헤매던 단테는 음욕의 화신 표범, 명예욕의 상징 사자, 탐욕의 상징 늑대를 만나고 두려움에 떨며 도와달라고 소리친다. 이런 단테의 두려움에 응답한 것은 단테가 생애 가장 존경하던 로마시대 최고 시인 베르길리우스였다. 자신이 존경하던 베르길리우스의 도움을 받아 단테는 위기를 모면하고, 이어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게 단테 신곡-지옥편의 시놉시스다. 단테의 지옥여행기인 신곡-지옥편은 지옥의 세밀한 묘사와 더불어 생전 좋게든 나쁘게든 유명했던 사람들의 지옥살이를 묘사하며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단테가 묘사한 지옥은 총 9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하 1층에서 지하 9층으로 들어갈수록 죄질이 나쁘고 형벌이 고약해진다. 이 지옥을 분류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너무 다양한 죄인들이 등장하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어떤 지옥에서 어떤 벌을 받고 있는지도 궁금해서 주석을 찾아보는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처음부터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지하 1층, 영어로 Limbo(림보)라는 공간에 갇혀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별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하나로 인간의 원죄에서 해방되지 못해 영원히 지옥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지하 1층에 거주하시는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그리스시대의 대단한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단테와 동종 직업을 가지고 있던 시인 호메로스도 잡혀있다. 이 사람들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사람도 꽤 있는데, 아니 예수도 못 봤는데 어떻게 회개하고 하느님을 믿는단 말인가?


이 부분에서 조세호에게 '결혼식에 왜 안 갔냐?'는 김흥국의 드립이 생각난 건 우연이었을까?

 

예수를 모르는데 천국을 어떻게 가요!


그리고 단테가 이단자들을 대우하는 방식이 약간 다른 게 재밌다. 살라딘이나 이븐시나 같은 이슬람의 위인들은 그나마 형벌이 덜한 1층에 있도록 하면서, 이슬람의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는 8층의 가혹한 형벌을 받는 곳에 있게 했으니 말이다. 단테는 무함마드가 무참했던 십자군 전쟁의 원흉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그건 기독교 쪽 교황들과 왕들의 욕심이 때문 아니었을까?)


지옥의 마지막 층에는 뭐니 뭐니 해도 지옥의 마왕 루시퍼가 있다. 하느님의 오른팔로 천사장을 맡고 있다가 자신의 능력에 취해 하느님에 대한 역모를 꾀한 천국 최고의 배신자 루시퍼가 지옥마지막 장소인 배신 지옥을 지키고 있다. 루시퍼의 머리는 3개인데, 각 머리마다 인간세상의 죄질이 나쁜 배신자 세 명이 매달려 있다.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는 뭐 1등석에 위치해 있다. 재밌는 사실은 인간사에서 죄질이 나쁜 2등, 3등 모두 로마제국의 시조라 불리는 카이사르(시저)를 배신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다.


브루투스는 거의 양아버지처럼 모시던 카이사르를 공개석상에서 칼로 무참하게 난도질해 죽였으니 죄질이 나쁜 건 맞다. 하지만 카시우스는 카이사르의 정적이었고, 브루투스를 이용해 로마의 공화정을 부활시키려 했던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지옥의 마지막층에서 고통받아야 했을까?


이에 대해 단테가 가장 이상주의적인 사회를 로마 공화정이 아니라 로마 제국으로 보고 있었어서 그랬다고 후대의 사람들은 분석한다. 굳이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비유를 하면 단군 할아버지를 배반한 사람들이니까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이해해야 할까? 여하튼 단테가 정한 인간사 최고 배신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단테의 지옥편을 읽으면서 한 편의 여행기를 보는 것 같았다. 지옥의 참혹한 묘사와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참 불쌍하다고 느껴야 맞을 텐데, 나는 꽤 웃긴 여행담 같았다. 단테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빨리 해보시오. 나 갈길 바쁘오.”라며 억지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도 웃기고, 여행길을 방해하는 마귀들에게 “썩 물렀거라!”를 외치는 길잡이 베르길리우스를 보며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치는 전래동화 같아서 재밌었다.


단테의 신곡 원래 제목이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미디', 즉 단테의 희곡이라는데 나는 그 희곡적 느낌을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이탈리아에는 단테가 워낙에 유명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라서 단테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단테학'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내가 너무 경망스럽게 단테의 '신곡'을 읽은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 EBS의 '세계테마기행'을 즐겨보는 아저씨로서 단테 아저씨가 말아주는 뜨끈한 국밥 같은 지옥 여행기를 보니 속이 든든하고 개운한 느낌이다. 지옥편에 이어 '연옥 편', '천국편'도 끝까지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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