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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n 24. 2024

철인정치가 진짜 가능할까?

[로마인이야기(종말의 시작) 11], 시오노 나나미


철인이 통치하는 국가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볼 수 있는 자, 즉 세상 너머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자의 통치가 가장 바람직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알 수 있는 자를 철인(Philosopher), 번역하면 철학자를 말합니다. 요즘의 철학자는 좁게 말해 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을 말하지만 고대의 철학자는 진리를 추구하며 고행을 사서 하는 사람을 말했습니다.


플라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고대 철학의 학파인 스토아학파는 인간은 모든 쾌락과 감정적 동요를 멀리하고 오직 인간의 이성의 힘을 쫓아 우주의 진리를 온몸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라는 개념을 극단까지 밀고 간 학파라 볼 수 있겠습니다.


플라톤 흉상


그럼 플라톤이 말한 통치자로서 적합한 철인은 어떤 과정 통해 선발될까요?


일단 20세 청년들 중 공정한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합니다. 선발된 인재들은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고 30세까지 수학, 음악, 과학 등의 각종 고등교육을 받게 되죠.


이들 중 다시 시험으로 인재를 선발해 5년간의 철학공부와 15년간의 실무경험을 쌓도록 합니다. 이들이 50세 정도가 되었을 무렵 인재 선발과정을 모두 통과한 소수의 사람들 중 가장 인정을 받는 한 사람이 통치자로 선정됩니다.


거의 평생을 시험, 공부, 군대, 시험, 공부, 실무라는 미친듯한 스케줄을 견뎌낸 사람만이 철인이 될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이런 삶을 견뎌내고 통치자가 되고 싶어 할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들긴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야망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지치지 않을까요?


철인은 금욕적이고 명예를 중시하며 재물을 탐하지 않는 스토아학파에서 말하는 그런 극기(克己)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일을 자청해서 할 사람이 있을까 의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철인으로 평가되는 한 명이 있긴 합니다. 바로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금기였던 한 5 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5 현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황제로서 야만족의 침입을 막아내고 내정에 힘쓴 성군으로 대표됩니다. 또한 스토아 철학에 심취하여 "명상록"이라는 저서를 남겨 철학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로마에 유일한 철인군주이기도 하죠.


5 현제 시대는 모두 양위를 양자입적의 방식으로 이어갔는데, 황제가 될만한 준비가 되어있고 덕목과 성품이 훌륭한 사람에게 황위를 이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이 시대의 황제들이 모두 친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특히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죠.


마르쿠스의 치세는 불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한편 북쪽에서 게르만족의 침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민족의 침입을 겨우 방어했더니 가장 믿었던 부하 카시우스의 배신으로 내란의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그는 그의 치세 대부분을 군단의 사령관으로서 전선에서 보냈는데, 그는 죽음 또한 전선에서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불운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제라 불린 이유는 평생 병약했음에도 근면성실했던 그의 태도 덕분이었죠.

 

로마 황제 중 기마상이 현존하는 유일한 황제


마르쿠스에게는 유일한 아들인 콤모두스가 있었는데, 로마사에 가장 유명한 성군으로 불리는 마르쿠스에 이어 황제가 되는 콤모두스가 로마사에 가장 유명한 폭군으로 남은 것은 특기할만합니다.


마르쿠스는 다른 선대 황제들과 달리 친아들인 콤모두스가 있었기 때문에 양자입적으로 황제자리를 양위할 수 없었습니다. 선대의 예를 따라 양자를 입적하여 황위를 물려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정통성의 부족, 내란의 우려 등이 그 이유였습니다.


마르쿠스에 이어 황제가 된 콤모두스는 아버지와 달리 검투사시합에 열중하고, 통치에는 무관심한 무능한 군주의 전형이었습니다. 그의 초기 치세는 평범했으나, 본인이 가장 믿었던 누나 루킬라의 황제 암살 음모가 밝혀지자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불안증 환자가 되어버렸죠.


콤모두스는 시종이 권력을 장악하여 악정을 펼치는 것을 방치하였고, 암살 음모라는 미명 하에 졸지에 무고한 사람이 반역자 신세가 되어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치세 내내 주위를 의심하고 간신배에 휘둘렸던 콤모두스는 결국 31세의 나이로 애첩과 하인들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하고 맙니다.   


마르쿠스라는 현제의 아들인 콤모두스가 폭군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만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복되는 성군의 치세에 이은 폭군의 출현이라는 사건은 필연적인 것일까요? 만약 이런 역사적인 통계가 맞다면 철인정치는 너무 이상적일 수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철인이라도 혈육에게 대권을 물려주고자 한다면 마르쿠스 황제의 꼴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통치자로서의 책임이 능력에 비례하는 경우는 참 보기 힘듭니다.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성군이 드물고 그저 그런 황제나 폭군이 다반사인 것이 일반적인 것처럼 보이죠. 철인만이 통치를 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고안하면 철인정치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다만 그건 너무 인간의 이성을 전적으로 믿는 그야말로 이상주의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역사에 유일한 철인정치의 사례로 손꼽히는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후계자 문제에서 만큼은 철인답지 못했던 것을 보면 참 위대한 인간이라는 사람도 혈육의 정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다움을 강조하면 철인은 될 수 없습니다. 철인은 인간을 초월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철인정치는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인간이길 초월한 인간이라는 말보다 모순적인 말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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