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신], 우노 다카시
장사를 즐기면서 할 수 있다고?
얼마 전 아이들과 새롭게 오픈한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콧물이 줄줄 흘러서 병원 진료를 갔던 차에 근처에 못 보던 가게가 생겨 호기심에 방문하게 됐습니다. 알록달록한 간판과 눈이 쨍한 내부 인테리어를 보고 아내는 남자인 제게는 없는 육감이 발동했는지 제게 눈치로 퇴각을 명했지만 폐급간부인 저는 장군님의 명령을 인식하지 못했죠.
결과는 장군님께서 미리 예상하신 대로 참혹했습니다. 신규 매장이라 그랬는지 사장님 혼자 운영하시는 가게였고, 사장님은 요리에 익숙하지 않으셨는지 주문한 요리가 한참이나 지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고 저희 부부는 밥을 먹이기도 전에 패닉상태에 빠졌죠.
맛이라도 좋았다면, 맛만 있었다면! 저는 오늘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어 새로 생긴 데 가보니 인테리어나 식당 구조가 좀 별로고 음식이 늦게 나오긴 하는데, 맛은 그런대로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불행하게도 새로 생긴 식당의 음식은 너무 맛이 없었습니다.
튀김은 이마트에서 파는 아무거나 사다가 에어프라이어기에 잘 조리한 맛보다 못했고, 고기는 군대에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던 인스턴트식품보다 맛이 없었습니다. 밥은 질어서 그랬는지 그 위에 뿌려진 후리카케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죠. 사장님께서 아이들이 귀엽다고 서비스로 내주신 새우튀김은 민망한 마음을 부여잡고 공손히 포장을 요청드렸습니다.
긍정대마왕인 아내는 이런 참사를 겪게 만든 저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래도 양은 많았잖아. 배고팠는데 든든하게 배 채웠으면 그만이지.
과연 그럴까요? 배만 채우러 식당에 가는 사람들로 장사가 될까요? 과연 새로 생긴 그 가게는 오래오래 장사를 잘할 수 있을까요? 친절함 빼면 시체 같던 사장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왜 이렇게 아른 거릴까요? 자영업자 공화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 것 같아 괜히 우울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백종원 선생님이 계십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미친 요리실력을 보여주시며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시더니, 골목식당에서 보여준 진심 어린 솔루션을 통해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희망이 되셨죠. 이제는 정말 요식업 대장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백종원 선생님의 기본적인 요리를 만드는 자세나 사업철학은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해본 바 있어서 따로 책을 찾아볼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찾아볼 것을 다짐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 알아볼 책은 일본의 백종원 선생, 일본 요식업 거장 우노 다카시가 쓴 '장사의 신'입니다.
그는 나이가 꽤 들었지만 매우 젊습니다. 왜냐고요? 그의 장사에 대한 열정과 그 열정에 감명받은 수많은 제자들 덕분입니다. 우노 다카시는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의 전설입니다. 수많은 이자카야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그의 가게에서 배운 수백 명의 제자가 그의 가르침을 받고 독립해 새로운 돌풍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책 서두에 우노 다카시의 수제자가 쓴 추천사가 나오는데 꽤나 감동적입니다. 일반 직원으로 시작해 점장으로 승진해 가게 운영을 배우고, 당연한 듯 독립하겠다고 말하는 제자에게 '응 독립은 좋은 거야. 잘해봐.'라고 말하며 스승은 진심으로 응원해 줍니다. 추천사를 쓴 제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모든 공을 스승의 덕으로 칭송하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죠.
우노 다카시는 요식업을 단순한 장사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식당을 손님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쉼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식업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손님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요식업의 요체는 이렇습니다.
1. 손님이 행복한 가게
장사의 목적은 손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비 오는 날 장사가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장이 있는 반면, 다이소에서 작은 수건 3묶음을 사다가 비에 젖은 손님들에게 전해줄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장이 있기도 하죠. 손님이 그 정성에 감동하고 단골이 되어 소문을 퍼트려 잘되는 가게가 되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장사의 근본입니다.
2. 아이디어 노트와 바로 실행하고 실패하기
손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아이디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수시로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바로바로 실행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겁니다. 저자는 어느 날 지나치던 가정집에서 주전자로 화분을 만들어 꽃을 심어놓은 모습을 보고 그날 당장 가게에 주전자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아이디어가 성공적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는 그저 죽은 아이디어에 불과할 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떠올랐다면 해보세요. 해보고 깨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혹시 성공한다면? 대박인 거죠.
3. 장사가 괴롭니? 장사는 즐겁게 하는 거란다.
저자는 장사를 즐겁게 시작했나 봅니다. 글의 곳곳에 '나는 힘들 때마다 장사를 즐겁게 시작했던 초심을 기억한다.'라고 쓰여 있거든요. 모든 사장님들이 장사를 즐겁게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퇴직 이후의 삶을 위해 장사를 어쩔 수 없이 시작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한 마음가짐으로 장사를 시작한 사장님도 계실 수 있죠. 그러나 저자는 기본적으로 장사는 즐겁게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손님을 즐겁게 한다는 건 그 자체로도 행복한 것이고, 만약 손님이 그런 자신에게 감사를 표시한다면 자기 자신도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4. 모방하고 훔쳐라. 창피할 시간은 없다.
장사가 안 되는 집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가게 나름대로의 특색이 없거나 손님에게 대한 진심이 없기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는 게 저자의 분석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는 닥치는 대로 모방하라고 말합니다. 음식이 문제라면 주부잡지에서도 레시피를 훔치고, 인테리어가 문제라면 잘 나가는 가게의 인테리어 소품을 따라 하라고 말합니다. 대형 요식업 프랜차이즈가 주변에 들어서도 겁내지 말고 찾아가 배울 부분은 배우라고 합니다. 장사가 안 되는 집 사장은 창피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일침은 덤입니다.
5. 장사에 미쳐라. 장사에 몰입하라.
저자는 장사에 미친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게 메뉴의 매상을 올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손님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주변 상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상생할 수 있는지 등 모든 생각의 초점을 장사로 맞춥니다. 저자가 장사를 하는 이유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장사가 잘 안 되면 행복할 수 없겠죠? 또 혼자만 잘 먹고 잘살아서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 괴롭겠죠? 그래서 항상 궁리해야 합니다.
몰입하면 방법은 있다고 합니다. 장사하는 사장님 중에 손님의 이름을 다 외우고, 가게를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새로 나온 신메뉴를 서비스로 건네고, 추운 날에는 뜨끈한 어묵을 더운 날에는 시원한 메밀국수를 덤으로 내미는 사장이 있다면 장사가 안될 리 만무하다면서 말이죠.
사실 장사의 신은 우연히 읽은 책입니다. 이 책을 고르면서 목표한 바도 없었고, 책을 읽고 글로 옮겨야지라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재밌게 시간 때우기 용도로 읽은 책이죠. 그런데 모든 우연은 기연을 낳습니다. 마침 제가 읽고 있던 책들이 마케팅 관련 책들이 많은데, 이런 책들에서 배웠던 많은 개념들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죠.
작가는 주변 상인들과의 친교를 맺기 위해 일부러 사야 할 물품의 양을 나누어 산다고 합니다. 가령 종이박스를 100통을 사야 한다면 20통씩 5번에 나누어 사러 가는 셈이죠. 이렇게 사는 횟수를 늘려 주변상인들과의 만날 기회를 늘려가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1페이지 마케팅플랜'이란 책에서 봤던 잘 나가는 영업사원은 고객과 9번 이상 접촉한다는 사실과 그 맥락이 일치했습니다.
또 작은 가게라면 작은 가게만의 단골을 만들 수 있다고 피력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30평의 넓은 식당은 100명의 손님이 들락날락할 수 있지만 5~6평의 작은 집에는 15명도 북적거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1명의 손님이라도 가깝게 인사를 건넬 수 있죠. 이런 장점을 활용해 가게에 진심인 단골 1~2명만 만들어도 장사가 잘된다는 저자의 말은 제품과 서비스는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고, 그 가치를 잘 알아주는 팬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여러 마케팅 책들(보랏빛 소가 온다, 마케팅 모르고 절대 사업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핵심과 일치했습니다.
역시 대가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가가 되는데 잔기술은 필요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저 근본만이 중요했습니다. 마케팅책들의 정수와 같은 개념들이 실제 장사라는 전쟁터에서는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엿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시간은 매우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든 그냥 되는 건 없나 봅니다. 장사의 신인 우노 다카시는 장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넘어 장사를 즐기는 자의 경지에 올랐기에 결국 장사의 신이 되었겠지요. 과연 저도 그런 즐기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괜히 새로 생긴 식당 걱정하다 결국 제 걱정까지 하게 되는 그런 하루입니다. 남 걱정할 시간도 없네요. 이제 즐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작가의 말처럼 실행하지 않는 아이디어는 죽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