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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n 03. 2024

내가 죽어 한 명의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세상에 진정으로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저는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세상이 두쪽 나도 꼭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 있다면 저는 제 아이들을 고를 겁니다. 만약 제가 죽고 아이들이 살 수 있다면 제 목숨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두렵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비의 자세라 생각하면서요.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두 아이 중 한 명에게 내 심장을 주어야 한다면 누구에게 내 심장을 주어야 할까?' 두 아이를 모두 살릴 수 없는 이런 딜레마에 빠졌을 때, 아비의 목숨을 건 사랑의 맹세는 덧없는 맹세가 되고 맙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단편집을 읽었습니다. 역시 톨스토이 할아버지는 달랐습니다. 여느 책들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어 단편임에도 장편 못지않은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었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톨스토이는 사람에 대한 3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1)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건 무엇인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단한 업적을 남긴 철학자라도 위 3가지 질문에 쉽게 답하지는 못할 겁니다. 사람의 마음, 사람의 한계, 삶의 목적이라는 주제는 인류가 평생 고민해도 쉽게 답하지 못하는 어렵고 무거운 질문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톨스토이 할아버지는 당신의 따뜻한 이야기로 3가지 질문에 대해 친절하게 답해주십니다.


(1)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세몬은 구두수선공입니다. 친절하지만 똑 부러지지 않아 매일 아내인 마트료냐에게 구박을 받는 순박한 사람이죠. 추운 겨울 어느 날 세몬은 아내와 자신이 입을 양가죽을 구하기 위해 구두수선 외상값을 받으러 다닙니다. 하지만 외상값은 언제나 받기 어려운 법이죠. 양가죽을 살 돈은커녕 내일 먹을 식료품값도 못 얻어 냅니다. 홧김에 세몬은 마을에서 술이나 한번 걸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죠.


세몬은 집으로 향하는 도중 교회 문 앞에서 벌거숭이 젊은 청년을 발견합니다. 세몬은 그냥 지나가려던 마음을 다잡고 청년을 도와줍니다. 벌거숭이 청년을 집으로 데려온 세몬과 아내 마트료냐는 그 청년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따뜻하게 보살펴줍니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청년에게 구두수선일을 배우고 자신의 집에 머무르도록 배려해 줍니다.


(2)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건 무엇인가?

젊은 청년은 구두장이 일을 묵묵히 잘 해냈습니다. 세몬의 곁에서 일을 빨리 배워서 세몬에게 도움이 되었죠. 어느 날 한 부자가 세몬의 집에 찾아와 1년을 신어도 흠집이 나지 않는 장화를 만들라고 뻣뻣하게 명령합니다. 세몬은 부자의 위세에 겁을 먹고 연신 잘 만들겠다고 머리를 조아리죠.


세몬은 젊은 청년이 일을 잘하니 부자의 장화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세몬의 집에 온 이후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젊은 청년의 일솜씨를 믿은 것이죠. 그런데 젊은 청년은 부자가 남기고 간 좋은 가죽으로 장화를 만들지 않고 슬리퍼를 만들어 버립니다. 세몬은 "나는 이제 죽은 목숨이네!"라고 겁을 먹고 젊은 청년을 나무라죠.


하지만 그때 부자의 하인이 돌아와 부자가 마차에서 급사를 했고, 장화는 필요 없어졌으니 죽은 사람이 신을 수 있는 슬리퍼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세몬은 이게 무슨 일인지 황당해하죠.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몬의 집에 어느 부인이 귀여운 쌍둥이 자매를 데리고 신발을 사러 왔습니다. 잘 웃지도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던 젊은 청년은 그 부인과 쌍둥이 아이들을 보곤 방긋 미소를 지었죠. 세몬이 젊은 청년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제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3가지 진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며 감동받은 얼굴을 세몬에게 보여줍니다.


세몬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젊은 청년은 자신이 사실은 하나님이 보내신 죽을자를 인도하는 천사라 밝히고 자신이 차가운 겨울날 교회 문 앞에 벌거벗은 채로 있었던 이유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천사로 하여금 쌍둥이 자매의 어머니를 하늘로 데려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을 데리러 온 천사를 알아보고 눈물로 사정을 하며 말하죠. "이 아이들은 얼마 전 아비를 잃었습니다. 저는 친척도 없고 저마저 죽는다면 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이 말을 듣고 천사는 어머니를 살려주고 하나님에 사실을 고하지만 하나님은 어머니를 데려오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곤 천사에게 3가지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시죠.


쌍둥이 자매의 어머니를 하늘로 올려 보낸 천사는 두 날개가 사라져 지상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곤 교회의 문 앞에 벌거숭이로 남게 된 것이죠. 세몬이 천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3가지 진실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천사가 대답합니다.


(4) 3가지 진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 천사는 불쌍한 자신을 돌봐준 세몬과 마트료냐에게서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사람을 착한 마음으로 구해주고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사람이 있음을 통해 사랑의 마음이 사람에게 있다는 걸 천사는 알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깨닫습니다. 장화를 만들러 온 부자는 세몬에게 1년이 지나도 새것과 같은 장화를 주문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자신이 죽을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장화가 아닌 죽은 자가 신는 슬리퍼였던 것을 알 길이 없었죠.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허락받지 못했던 겁니다.


그리고 천사는 자신이 하늘로 데려간 어머니의 쌍둥이 자매를 만납니다. 다행히 쌍둥이 아이들은 어느 부인의 손에 길러져 잘 자라 있었지요. 어느 부인은 쌍둥이 자매가 어미를 잃고 버려졌을 때 젖먹이 아이를 기르던 한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고아들이 된 자매가 가여워 젖을 물려주던 것이 인연이 되어 친어머니처럼 자매를 돌봐준 것이지요. 그 와중 자신의 친아이는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이 부인은 쌍둥이 자매를 사랑으로 길러냈습니다. 천사는 그 모습을 보고 깨닫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말이죠.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의 한계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알지 못하는 능력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은 묵직한 감동을 전달해 줍니다. 날개 잃은 천사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톨스토이의 말에 설복되고 말죠.


그러나 톨스토이가 준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잠시 빠져나와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참 탁합니다. 톨스토이의 말이 진실일지언정 세상에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진실되지 못하죠.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증오하며 살아가나요. 삶의 목적이 사랑의 실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며 살아가나요. 톨스토이가 말한 3가지 진실 중 가장 사실적인 것은 사람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희망은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하셨다."라고 소설에서 밝힙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이 필요한 것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는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랑의 마음이 있는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면 우리에게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적어도 사람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동물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조그만 배려를 받을 수 있다면 사랑받고 싶다는 소망은 성취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마음들이 조금씩 채워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여유로워질 것이고 그 여유로움이 또 다른 배려를 낳을 것이기에 사람끼리 증오하는 감정도 사람들끼리 서로를 짓밟는 만행도 조금씩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저는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아이들이 살고 제가 죽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에 분명히 존재함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 중 한 아이만 살려야 한다면 저는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의 사랑으로 구할 수 있는 아이가 한 명이라면 저는 그 한 명을 택해야 합니다.


이때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한 명의 아이를 택하고 죽지만, 나머지 한 명의 아이도 세상에 존재할 사랑이라는 것에 기대어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사랑의 존재를 믿고 싶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에게 기대에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보고 싶습니다. 배려하는 마음을 시작으로 서서히 확산되어 갈 사랑이라는 큰 무지개 장막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에 제 믿음을 바쳐보고 싶습니다. 세상이 아직은 살만하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건 오늘 받은 사랑의 씨앗, 즉 다른 사람의 따뜻한 배려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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