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권장 프로젝트
ep.1 내가 결혼을 결심한 순간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추위를 덜 탄다고 한다. 웃기는 소리! 나는 겨울이 제일 싫다. 더위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는데 추위는 어떻게 못하겠다. 더군다나 수족냉증까지 있다. 이러니 어떻게 추위가 가득한 겨울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려서부터 나는 겨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만의 동면 생활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건 다 솔로일 때 이야기다. 연애를 하게 되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할지라도 연인과의 만남을 위해 집 밖에 나와야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신랑과 결혼하기 전 그날도 매서운 추위에 이불 밖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추위를 핑계로 여러 번 약속을 미뤄왔던 터라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이번마저 약속을 미룬다면 신랑은 화를 내거나 헤어짐을 고할 것 같았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신랑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내가 싫어하는 추위 때문에 신랑과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신랑은 역시나 좋았지만 추위는 어쩔 수 없었다. 뭐 하고 싶냐는 신랑의 말에 나는 두말하지 않고 외쳤다. 모텔 가자!! 신랑은 당황했지만 간곡한 나의 외침에 우리는 바로 모텔로 향했다. 우리가 간 모텔은 무려 전기장판이 존재하는 모텔이었기에 나는 모텔에 들어서자마자 겉옷을 집어던지고 전기장판이 틀어져있는 침대 속으로 다이빙해서 들어갔다. 신랑은 나를 따라 침대에 누웠고 그때 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 손발은 수족냉증에 지배당해 엄청 차갑다. 어느 정도로 차냐고 묻는다면 예전 내 직장 동료가 내가 손이 하도 시리다며 징징대니 얼마나 차기에 그러냐며 내 손을 잡아보고는 깜짝 놀라며 시체도 이거보다는 덜 차가울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tmi 지만 그 이후 그 동료는 내가 손이 시리다고 하면 핫팩을 주거나 따뜻한 음료를 줬다. 참 다정한 동료였다.)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는 나는 밖에서 나갔다 들어오면 항상 아빠 몸에 내 손과 발을 가져다 댔다. 그럼 아빠는 앗 차거! 저리 치워! 하며 나를 노려보셨는데 그 반응이 재미있어 아빠만 보이면 내 손과 발을 아빠에게 가져다 댔다.(아빠 미안ㅋ) 그 반응이 갑자기 신랑에게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사전 고지 없이 내 손과 발을 신랑의 맨살에 가져다 대었다.
신랑은 내 손과 발이 몸에 닿자마자 “앗 차거” 하더니 측은한 눈빛과 함께 내 손과 발을 자기 몸의 더 따뜻한 쪽으로 가져다 대었다. 헐 이건 내가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어지는 말 “겨울만 되면 이렇게 추워서 어떻게.. 앞으로 차가워지면 무조건 내 몸에 가져다 대.” 이건 그 위대하다던 부모님의 사랑을 이긴(?) 찐 사랑이다. (이 말만 들으면 내 신랑이 엄청 스위트한 것 같지만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우리 아빠조차 나에게 짜증을 냈는데(장난스러운 짜증이긴 했지만) 어떻게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거지? 그때 난 느꼈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믿고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추후 신랑이 나에게 자기랑 왜 결혼을 결심했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신랑은 웃으며 난 뜨거운 거보다 차가운 게 좋아서 그런 건데라며 별거 아닌 듯이 이야기했지만 나는 결혼할 사람은 이렇게 선택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절대 이해하지 못할 내가 진짜 싫어하는 것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 그것도 사랑을 담아서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
날씨가 다시 추워진 요즘 나는 여전히 신랑 몸에 내 손과 발을 가져다 대지만 아직까지도 신랑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치우라고 한 적이 없다. 예전과 같은 측은한 눈빛과 다정한 말은 없지만 여전히 신랑은 내 손과 발을 자기 몸 가장 따뜻한 곳으로 옮겨간다.
나 진짜 결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