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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Apr 06. 2023

EP11. 패셔니스타였던 그녀는..

- 운동복만 사는 여자

 옷을 잘 입지는 못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패션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다. 내 눈에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샀어야 했고 입고자 하는 옷은 반드시 입어야 했다. 성인인 지금은 별문제 없이 갖고 싶은 옷을 사지만 청소년 시절은 그렇지 못했다. 옷을 사기 위해 부모님 몰래 알바를 하기도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는 급식비를 삥땅 치기도 했다. 엄마. 미안해.     


 그래서 내 옷장을 보면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옷들은 물론이요, 일관성 없는 다양한 스타일의 옷들이 가득했다. 무지개 보러 딴 곳 갈 필요가 없어요. 우리 집 제 옷장만 보면 되거든요. 거기다 사이즈는 왜 이리 자주 변하는지 허리사이즈 25인치부터 30인치까지 다 존재한다. 옷가게보다 다양한 사이즈가 존재할걸요? 그거면 다행이게요? 옷은 잘 버리지도 않아서 10년이 넘은 옷들도 존재한답니다. 복고부터 미래 패션까지 여기가 바로 대한민국 패션의 산 증거입니다.      


 날이 추우면 추워서 날이 더우면 더우니까 기분이 안 좋으면 기분 전환으로 기분이 좋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옷을 샀다. 왜냐하면 맨날 입을 옷이 없었으니까. (니 옷장에 옷들은 무엇이란 말이냐?) 여자라면 알 것이다. 아침 출근길 옷장을 보면 입을 옷이 하나도 없는 그 느낌. 왜 옷은 사도 사도 없고 사도 사도 부족한 걸까? 진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이렇게 다양한 옷이 존재하는 내 옷장에도 한 가지 없는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운동복이었다. 운동을 가끔씩 하긴 했으나 그 기간이 길지도 않았고 운동복을 사기도 전에 운동을 그만두었으니 운동복이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내 눈에는 운동복은 전혀 매력을 끌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예쁜 운동복은 몸매가 좋은 사람들이 입었을 때나 예쁘지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내 옷장에는 운동복이 들어올 공간도 들어 올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끔 운동복을 사기도 했다. 근데 왜 운동복이 없냐고요? 내가 산 운동복은 언제나 제 기능을 하지 않고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 안에 잠옷으로 변해버렸거든요. 여러분 운동복만큼 편한 잠옷이 없어요. 땀 흡수 잘 되죠 편하죠 가끔 입고 집 앞 슈퍼도 갈 수 있죠. 이만한 잠옷이 없습니다.     


 나와 다르게 우리 신랑의 옷은 운동복으로 가득했다. 주말마다 조기축구에 다니기도 했고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기에 옷을 사면 무조건 운동복! 이런 마인드가 있었다. 그래서 신랑의 최애 브랜드는 아디다스. 평소에 내가 쇼핑가 자고 하면 같이 가주기는 하지만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사는데 아디다스 매장에만 가면 눈이 반짝거리고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매장에서 쇼핑을 하는 나를 보는 모습이랄까? 나는 반대로 아디다스 매장만 가면 심드렁했는데 서로 이러한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꾸준하게 쇼핑을 가는 우리 부부는 정말 사랑하는 사이인가 봅니다.     


 그러던 내가 클라이밍을 시작한 것. 하지만 시작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암장은 다른 곳처럼 예쁜 옷을 입고 운동을 하지 않는다. 내가 잠옷으로 입는 옷을 입고 가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도 않고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 한동안은 잠옷으로 입는 옷을 입고 운동을 했다. 운동이 편하면 그만이지 예쁜 게 무슨 상관이야 라는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이다. 아 역시 아줌마는 대단하다.      


 거기다 나는 평소에 땀을 잘 흘리 지를 않는다. 한 여름에도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체질이기에 운동할 때도 땀이 잘 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다 보니 운동복도 많이 필요 없었다. 빠는 것까지 생각해서 두 벌 정도 그 정도면 뭐 충분하죠. 그리고 여태껏 운동을 오래 한 적도 없고 이 운동도 그럴 것이라 당연히 나도 생각했었기에 운동복을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내가 클라이밍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주 5회 운동을 가니 땀이 안 나던 몸에서도 슬슬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단 두 벌의 운동복으로는 버틸 수 없는 건 당연지사. 난생처음 운동을 위한 운동복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은 무난한 옷들로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운동은 예쁜 것보다 실용성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벌 한 벌 내 옷장에 운동복들이 늘기 시작했다.     

 

 몰랐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운동복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운동복이 존재하는지. 내가 몰랐던 운동복의 세계는 나를 홀리기 충분했다. 다양한 소재와 예쁜 디자인 거기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컬러까지. 여기에 반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니지... 퇴사 후 돈도 없거니와 밖에 나갈 일이 없었기에 한동안 나는 쇼핑을 하지 않고도 만족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아니었나 보다. 이 새로운 세상을 접하니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      


어라? 근데 이건 왜 이렇게 이뻐? 어머 뭐 신상이 나왔다고?     


 그렇게 하나둘씩 운동복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 년 만에 내 옷장은 운동복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약속도 없는 사람이 매일 운동을 가니 운동복만 사는 건 당연지사. 거기다 매일매일 입기에 꺼내기 쉽게 앞쪽으로 놓았더니 영락없이 내 옷장은 운동만 하는 사람처럼 운동복이 가득 차게 되었다. 과거의 내가 이 옷장을 보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거기다 가장 큰 변화는 나도 신랑을 따라 아디다스의 빠순이가 되었다는 것. 아디다스 운동복이 예쁘기도 예쁜데 어찌나 운동할 때 편하던지 왜 신랑이 그렇게 좋아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신랑과 쇼핑을 가면 제일 먼저 가는 건 아디다스 매장. 둘이 거기서 하루 종일 있으라고 해도 있을 수 있다. 서로의 취향의 옷을 골라주는 것은 기본이요 가끔 서로 미쳐 돌아있으면 말려주는 역할도 한다. 취향이 같으니 쇼핑도 편한 것을 이전에는 왜 몰랐을까요?     


 여전히 나는 옷이 좋다. 하지만 이제 주로 사는 옷은 운동복. 다른 옷은 사도 잘 입지 않으니 잘 사게 되지 않는다. 주 5일 입을 수도 있고 이쁘기도 한 운동복을 한 벌 더 사고말지 이 마인드가 생겼달까? 그래서 아디다스가 언제 세일한다고? 저 이번에도 오픈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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