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프러포즈 그때의 이야기
보통은 프러포즈는 남자가 여자한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법은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나는 내가 먼저 신랑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물론 이벤트 가득한 프러포즈는 아니었다.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는 29살. 평소와 같이 신랑과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오늘 저녁 메뉴를 고르는 듯 아무렇지 않게 신랑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난 30살에 결혼하는 게 목표야. 운 좋게도 내가 만난 남자 중에 제일 괜찮은 네가 지금 내 옆에 있어. 나랑 결혼할래?” 그렇게 내가 먼저 신랑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 신랑의 대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좋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프러포즈에 대한 별 다른 생각도 로망도 없었다. 그러니 저런 식으로 했겠지..ㅋㅋ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아니었다. 결혼을 알리고 시간 지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내 프러포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프러포즈를 안 받았다고?
내가 먼저 했다니까?
그건 프러포즈가 아니지.(왜 아닐까?) 제대로 프러포즈해달라고 해.
처음엔 그들의 말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 내가 잘못된 건가? 프러포즈는 꼭 받아야 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프러포즈해줘!!라고 말하기에도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이미 결혼은 준비되어가고 있는데 이때 받는 프러포즈가 뭔 의미인가? 나의 마음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그날은 우리의 기념일이었다. 지금은 그날이 무슨 기념일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이거 봐 프러포즈해줘도 날짜도 기억 못 한다니까?ㅋㅋ) 그때는 그날이 중요했었을 테니 우리 둘은 기념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 신랑과는 큰 트러블이 없었지만 이상과 현실의 줄다리기 중인 결혼 준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와중이라 나는 그 여행이 너무 좋았었다. 물론 신랑이 준비한 깜짝 프러포즈에 그 여행의 기억이 미화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숙소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신랑은 갑자기 차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면서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때 신랑이 얼마나 치밀하게 이벤트를 준비했냐면 진짜 핸드폰을 안 가지고 올라왔었다.) 그리고 몇 분후 올라온 신랑은 나에게 한 다발의 커다란 꽃다발을 전해줬다. 그리고 수줍게 내민 편지 하나. 입에서는 이거 뭐야? 언제 준비했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나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편지에는 “방에 보물이 숨겨있어! 여길 찾아봐.” 그때까지도 이게 무슨 이벤트 인지도 모른 체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보물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보물은 액세서리와 함께 편지가 있었다. “여태껏 나와 사귀어줘서 고마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음 편지에 있어.” 의 말과 함께 마지막 선물의 위치가 쓰여있었다. 이 이벤트 꽤 흥미진진한데? 나는 열심히 보물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찾은 첫 번째 보물에 비해 두 번째 보물은 찾기 쉽지가 않았다. 10분쯤 보물을 찾았을까? 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꽁꽁 숨은 보물에 급격히 분노가 치밀었다! 도대체 뭐라고 이리 숨겨놔!! “안 찾아!!” 결국 나의 분노는 폭발했다. 나의 외침에 신랑은 당황했다. 결국 두 번째 보물은 신랑이 나에게 가져다줬다. 애초부터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편해? 마음도 참 쉽게 바뀌는 나다.
두 번째 보물은 2개의 편지였다. 첫 번째 편지를 펼치자 “내가 먼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네가 먼저 해버리게 해서 미안, Would you marry me?” 의 내용이 쓰여있었다. 신랑은 결혼 이야기를 쉽게 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어려운 곳에 숨겨 놨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화를 낸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당연히 yes를 외치며 2번째 편지를 펼쳤다.
결혼 기념 쿠폰
xxx과 결혼 기념으로 주는 명품백 구매 쿠폰
유효기간은 없으며 쿠폰 분실 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xxx는 j가 원할 시 언제든 쿠폰을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편지를 보자 나는 눈물이 났다.(그렇다 결혼하자는 말보다 명품백 쿠폰이 좋은 나는 속물이다.ㅋ) 결혼 준비를 하며 신랑은 통장을 나에게 넘겼다. 자신은 돈 관리를 못하니 조금이라도 잘하는 내가 관리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며 자신의 통장을 나에게 넘긴 것이다. 그래서 프러포즈 선물을 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던 신랑은 이런 귀엽고 깜찍한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었다. 성공적인 프러포즈라고는 할 수 없지만 행복한 프러포즈였음은 틀림없다.
아직도 우리 집 내 책상 서랍 깊은 곳에 그 명품 쿠폰이 있다. 여전히 신랑 통장을 내가 관리하기에 우리 신랑은 빈털터리지만 가끔 내가 쿠폰을 꺼내 흔들면 지금 사러 갈까? 나는 준비됐어! 라며 귀여운 허세와 함께 안 쓰면 불태워 버린다?라는 장난스러운 협박을 한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쿠폰은 여전히 내 책상 서랍 속에 있다.
오랜만에 신랑의 귀여운 허세를 구경하고 싶다. 쿠폰이 어디 있더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