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화되는 나의 클라이밍 실력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운동한 지 얼마 안 됐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꽤 오래 그리고 꽤 길게 한 운동인 클라이밍. 그 기간 동안 클라이밍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재미없다고 느껴본 적도 하기 싫다고 느껴본 적도 없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나는 하루 종일 운동가는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물론 예전에도 운동을 가기 싫은 적은 많았다. 하지만 운동을 하러 가기가 싫은 것뿐 운동을 하러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암장을 날아다녔다. 클라이밍은 언제나 나에게 활기와 생기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거긴 나의 주 무대였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르다.
사실 몇 달 전 몸이 안 좋아서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 큰 수술은 아니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은 격한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진짜 오랜만에 일주일 동안 클라이밍을 가지 않았다. 운동을 가지 않으니 얼마나 찌뿌둥하고 시간이 안 가던지.. 달력에 x자를 치며 운동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역시 나는 클라이밍에 미친 자다.) 다행히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나는 일주일 후 운동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운동이 하나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오랜 기간 운동을 쉬고 운동을 가면 운동이 되지 않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코로나에 걸려 자가 격리 5일을 하고 운동을 갔을 때 운동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금방 회복을 했다. 운동 강도를 높이고 꾸준히 운동을 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운동이 다시 예전만큼 된 것.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지만.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지.
매일 운동을 가도 실력이 늘지 않았으며 그전만큼 운동이 되질 않았다. 이런 제기랄..
우선 운동 강도를 높일 수가 없었다. 큰 수술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몸에 칼을 댔기에 내 멋대로 운동 강도를 높일 수가 없었다. 좀 더 난도가 있는 벽에 붙어야 실력이 늘 수 있는데 나는 주로 내가 하던 난이도보다 낮은 문제를 풀거나 간신히 내가 풀던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운동을 하고 있으나 운동이 안 되는 느낌? 이 좌절감이란..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존재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몸의 근육을 전혀 쓰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내 몸인데 내 말을 하나도 듣지 않는 느낌?! 물론 수술을 하기 전에도 나는 내 몸을 잘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몸치이기 때문이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몸치인 것도 모르고 살았다. 알 리가 있나. 운동은 길게 해야 3개월뿐이었고 그 이외에는 몸을 쓰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꾸준히 운동하면서 몸치에서 모치 정도로 업그레이드시켜놨는데 수술 이후 나는 몸치에서 심각한 몸치로 다운그레이드되었다.
이 동작에선 복근에 힘을 줘야 하는 것을 머리로 깨닫는다. 그리고 몸에게 명령한다. 배에 힘을 줘! 그럼 예전에는 몸이 말을 알아듣고 100%는 아니어도 50% 정도는 힘을 줬는데 이제는 몸에서 말한다. 배에 힘을 어떻게 줘? 그럼 뇌는 반응한다 응? 그걸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나는 홀드에 매달려서 몸과 뇌의 싸움을 듣고 있다가 맥없이 떨어지고 만다. 도대체 이게 말입니까? 방귀입니까?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아하하하. 이번생의 저의 클라이밍은 망한 게 분명합니다.
처음 한 달은 운동이 안 돼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다. 그래 나 수술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지금 회복 중이라 그런 거야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 그 기간을 버텨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고 나니 더 이상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통하지 않았으며 나 자신이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의사가 수술을 잘못해서 내 뇌와 몸의 도킹 부분을 훼손 한 건 아닌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운동이 되지 않으니 더 이상 암장에 가도 즐겁지 않았다. 운동이 즐거운 건 완등의 짜릿함을 느끼려고 가는데 아무리 똑같은 문제를 수십 수백 번 풀어도 늘지 않아 완등의 이응자 근처에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이 안 되니 점점 벽에 붙는 횟수도 줄어들고 의기소침해졌다.
이런 나를 보고 암장 사람들은 말한다. 운동은 쭉 느는 것이 아닌 계단식으로 늘어간다고 말이다. 너는 지금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정체기를 겪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서 정체기를 이겨 내야 한다고 말이다. 근데 저기요. 선생님들 전 정체기가 아니라니까요. 저는 퇴화기라니까요.. 하지만 쪽팔리니 이 말은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이 내가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체기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운동이 안 된 지 어언 두 달, 운동이 안 되니 글이 써지지도 않는다. 클라이밍에 대한 이 글은 내가 클라이밍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듬뿍 담아 써왔기에 사랑과 열정이 빠져나가니 글을 쓰는 능력도 같이 빠져나가버렸다.
아. 신은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제 잃어버린 클라이밍에 대한 열정과 사랑 다시 채워주실 분 어디 안 계실까요? 아님 제 퇴화기를 극복하게 도와주실 분 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