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플레인에 대하여
어렸을 적부터 나는 남자들이 하는 놀이나 운동 등에 큰 관심이 없었다. 가장 오래 한 운동 역시 요가였기에 남자들이 무슨 운동하세요?라고 묻는 질문에 요가요라고 하면 별 말없이 지나갔었다. 그래서 맨스플레인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진짜 저런 놈들이 있어? 세상에 별에 별 할 일 없는 이상한 놈들이 많네라고 생각만 했을 뿐 나와는 별 연관 없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즐겨하는 운동이 클라이밍으로 바뀌니 맨스플레인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었고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에게 수백 수천 가지의 팁을 듣는데 아주 미쳐버릴 지경이다. 오늘은 내가 당했던 이 맨스플레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운동을 함에 있어 나는 항상 내가 최약체임을 인정한다. 항상 말하지만 나는 주변에서 인정하는 쓰레기 몸 중에 하나인데 운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육이 붙은 속도가 더디며, 근육이 붙더라도 유지가 쉽지 않다. 일례로 나는 아주 작고 소중한 복근을 소지하고 있는데 한 3일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이 작고 소중한 복근은 다시 사라져 버린다. 이런 하찮은 몸의 소유자여..
거기다가 극심한 몸치여서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몸이 머리가 이해한 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런 다양한 핸디캡을 가지고 있기에 웬만해서 누군가 나에게 운동에 대해 조언을 하면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 나의 기본 마인드가 그래 뭘 해도 저 사람이 나보다는 낫겠지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맨스플레인이 문제냐고요?
누가 봐도 운동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남. 자. 들이 클라이밍의 클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남자란 이유로 나를 가르치려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멍청한 몸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 년 반이 넘게 한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혼자 하는 것도 아닌 엄연히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는데 이런 내가 그런 사람보다 가지고 있는 지식이 적을까? 설마.. 제가 멍청이이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닙니다..ㅎ
그런데 나에게 설명하는 그들은 꼭 내가 자신들보다 갖고 있는 지식이 적은 듯 대한다. 당연히 내가 너보다 알고 있는 게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뱉는 말투와 행동은 당연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불편한 티를 내도 그들은 그 행동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여 나를 더 화나게 한다.
나는 평일에는 웬만하면 운동을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운동을 가면 주로 2~3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진짜 멋지다!! 정말 대단한데?!라고 말하고 대화가 종료된다. 하지만 몇몇 남자들은 그렇게 하면 손상된 근육이 회복이 안 된다는 둥 너무 과격하게 오래 운동을 하는 거라는 둥 하며 나에게 설교를 시작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또 시작이군! 이란 생각과 함께 (진짜 한 오백번 들어서 이제 귀에 딱지가 질 정도다.) 그들의 이야기를 반박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난 가만히 듣고 있는 성격은 아니다.)
이럼 눈치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맨스플레인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가 없기에 (나의 편견일지 모르나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자들은 눈치가 없다.) 나의 표정을 무시한 체 자신이 알고 있는 하찮은 지식들을 나에게 자랑하기 시작한다. 그럼 나는 그렇게 착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기에 그렇게 자신들의 하찮은 지식들을 뽐내는 그들에게 한마디 한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데. 몸이 왜 그따위예요?”
그럼 거의 대부분의 그들은 입을 다문다. 물론 이유 같지 않은 핑계를 대며 계속 구시렁 되는 몇몇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초보란 어떤 일이나 기술의 습득 따위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나 수준이다. 근데 이게 딱 여기서 여기까지 초보 여기서 여기까지 중급 이런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나는 누가 나에게 클라이밍에 대해 물어보면 아직도 초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내가 초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 암장의 영향이 큰데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오다 보니 실력이 늘어도 계속 젤 못하기에 초보라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초보라고 말하는 나는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친구들과 한 두 번 해본 경험이 있는 그들은 갑자기 나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한 사람이 된 듯 빙의하여 나에게 클라이밍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래. 말실수 한 내 잘못이다. 하고 넘어갈 때도 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들이 말이 길어지면 꼭 한마디를 하고 넘어가게 된다.
“아 진짜요? 전 1년 반 돼도 초보인데 몇 번 안 하시고 그렇게 잘하면 왜 국가대표 안 하세요.?”
내가 이런 말을 웃으면서 내뱉지 않기에 대부분은 비꼬는 것임을 알고 조용하지만 또 눈치 없는 몇몇은 칭찬인 줄 알고 떠들어 댄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무시가 답이다.)
이 일화들은 아주 극 일부의 이야기. 나는 운동을 하는 동안 더 수많은 맨스플레인을 경험하였다. 가벼운 맨스플레인 정도는 이제 웃어넘길 수 정도로 말이다.
(일부) 남자들이여, 우리 조금만 여자들을 대우해 주면 안 될까요? 왜 앞에 있는 여자가 당신보다 경험이 없고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세상엔 당신보다 운동을 더 좋아하고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나는 맨스플레인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아. 그래서 요즘 내가 낯선 사람들을 안 만나나?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