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암장의 독특한 문화 딱지 떼기
내가 다니는 암장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볼더링 암장을 제외하고는 다른 암장을 가본 경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암장도 우리 암장과 같은 문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왜 때문인지 내가 지금부터 말할 문화는 우리 암장에만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경험도 없으면 확신하는 나란 여자) 그래서 오늘은 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암장은 한 달반 혹은 두 달 주기로 새로운 문제가 나온다. 그 문제는 누가 내느냐 하면 바로 센터장님이 직접 내신다. 아 대단하신 센터장님이시여.. 가끔 문제를 내려고 벽을 노려보는 센터장님을 보면 그게 머리로 그려진다는 거 자체에 놀라게 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언제나 초보인 나는 항상 놀라는 일의 연속이다.
모든 문제는 회원들의 실력에 맞혀 나온다. 우리 암장의 회원 수는 다른 암장에 비해 적기 때문에 각 문제마다 푸는 사람은 1~2명 정도이다. 사람들의 실력에 맞춰 그 사람이 가장 약한 혹은 못하는 동작을 연습할 수 있는 문제가 주로 나온다. 그렇기에 장점은 약점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실력이 금방 늘 수 있다는 점이고 (진짜? 근데 넌 왜 그 모양이니?) 단점은 그렇기에 문제가 어려워 완등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완등과 멀어졌다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슬픈 이야기. (완등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한지 너무 오래돼서 다 잊어먹었네.. 쳇.)
이렇게 문제를 암장에서 센터장님이 직접 내시기에 우리 암장 만에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바로 자신에게 맞춰 나온 문제는 자신이 제거하는 것. 각각의 홀드에 붙은 문제 번호 스티커를 제거하는 것! 이것을 우리 암장에서는 딱지 떼기라고 부른다. 근데 이게 뭔 문화냐고? 음.. 이걸 벽에 매달려서 문제를 푸는 것처럼 때야 하기 때문이다. 아하하. 역시 이곳은 뭐든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게 매력이라니까?)
나는 내가 처음 딱지 떼기를 경험한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내 난이도에 해당하는 문제를 다 완등한 이후였기에 (그때는 완등도 했구나..ㅠ) 다른 회원들은 나에게 완등 기념으로 그 문제를 제거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라 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문제를 직접 제거하는 쾌감을 한번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OK를 외쳤다. 나의 OK의 외침 뒤에 그들의 웃음을 보지 못한 건 나의 크나큰 실수. 아무튼 나는 문제를 제거하기 위에 번호 딱지에 손을 대는 순간! 다른 회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J 씨 뭐 하는 거야!! 그거 바닥에서 때는 거 아니야!!”
응? 딱지를 이렇게 때는 게 아니라니요? 저만 모르는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요? 그들의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건 뭐니? 나를 제외한 암장의 회원들이 다 벽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걸 왜 다들 매달려서 제거하는 것인가요? 바닥에서 때면 이렇게나 쉬운 것을..? 왜 이 사람 들은 쉬운 일도 어렵게 하는 것인가요? 바닥에서 때면 이렇게나 간편하게 제거되는 것을 뭐 때문에 저런단 말인가? 나는 혼돈에 가득 휩싸이게 되었다.
“이렇게 해야 운동도 되고 더 좋지!”
그렇다. 우리 암장은 다들 클라이밍에 미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딱지 제거도 그냥 하지 않고 운동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문제를 풀면서 딱지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암장에 오래된 룰이자 문화라고 했다. 아하하. 나 같은 조무래기 신입이 뭐 힘이 있나요. 하라고 하면 해야지요. 그렇게 나는 첫 딱지 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저의 첫 딱지 떼기 소감은 어땠냐고요? 이것이야 말로 극강의 지구력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한 손으로 홀드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그 문제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제거한다. 이게 말이 쉽지 행동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아니 평소에는 그렇게 쉽게 떨어지던 스티커가 왜 제거하려고 하면 떨어지지 않는 걸까요? (평소 운동하면서 번호 스티커를 발로 손으로 스쳐 지나가며 떨어트려 센터장님에게 종종 혼나곤 한다.)
한 손으로 부들부들 간신히 홀드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딱지를 제거하려고 손을 떼면 나의 몸은 봄바람에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벚꽃 잎 마냥 벽에서 살랑살랑 떨어지는 걸 경험했다. 아 살랑살랑 취소 쿵! 쿵!이다. 진짜 나는 하나의 스티커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고 벽에서 1초에 한 번씩 추락하는 경험을 했다.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있다는데 나 이러면 날개가 생기려나?
그날의 경험으로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실 나는 그전까지 완등을 했기에 그 문제는 껌이라고 너무 쉬운 문제라고 등한시했었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문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쉬운 문제라고 하더라고 어렵게 가고자 하면 어렵게 가는 법은 존재한다라는 걸 말이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이제 시간이 지나서 나도 여러 번의 딱지 떼기를 경험했다. 예전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딱지 떼기는 어렵고 힘들다. 누군가 극강의 지구력 훈련을 추천해 달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딱지 떼기를 추천해 줄 것이다. 그만큼 딱지 떼기는 적응이 되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그리고 예전과 다르게 딱지 떼기를 대하는 나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그냥 완등한 문제를 보내는 가벼운 마음으로 딱지를 제거했다나면 요즘은 번호 하나하나 제거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빌고 있다. 다음번에는 제발 더 쉬운 문제가 나오길 말이다. (센터장님께 직접 말하면 되지만 쫄보라서 직접 말하지 못하고 맨날 홀드에 빈다.) 물론 나의 바람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는 것은 안 비밀이지만 말이다.
이제 곧 암장의 딱지 떼기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문제가 나올 때가 다 되었다는 사실! 그때가 오면 나도 우리 암장의 새로운 신입들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말해야지! 본인이 푼 문제는 본인이 때셔야 해요. 그렇다. 나도 어느새 우리 암장에 물들어 악마가 되었다. (악마는 아니지 난 그들의 운동을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니까..ㅋㅋㅋ 핑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