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J Jan 09. 2024

EP.25 혼자인 듯 혼자 아닌 혼자 하는 운동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혼자 운동을 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시간에 가서 남들이 올 때쯤 집에 오곤 했다. 그랬던 가장 큰 이유는 못난 동작, 엉성한 자세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암장에 신입 회원이 들어오는 일은 매우 희귀하다. 나보다 먼저 암장에 등록한 회원은 3개월 전.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암장에서 운동을 배우다가 그곳이 사라지며 우리 암장으로 온 케이스였기에 그들과 나의 차이는 3개월 이상이었다.(그리고 그들은 나처럼 몸치가 아니라는 사실!!) 그런 사람들과 나 사이에 크나큰 실력차이가 있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그때에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의 마인드라면 그들도 분명 나와 같은 초보시절이 있었을 거야 신경 쓰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1도 신경도 쓰지 않고 운동했을 텐데 말이다. 이런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된 건 아무래도 자신감 덕분 아닐까?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마음과 운동에 대한 태도는 다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여유와 함께 묻어 나오는 거 같다. 그렇다고 내가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처음 홀드를 잡았을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지.. 암.. 그렇고 말고..)     


 그렇게 한참을 혼자 운동을 했다. 물론 S와 운동을 같이 가긴 했지만 나는 내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S가 홀드를 잡으면 그 이후에 홀드를 잡았다. (S가 본인의 문제를 풀고 있어 나를 봐줄 수 없을 때..)      


 물론 나는 언제나 남들보다 먼저 홀드를 잡아도 그들보다 늦게까지 문제를 풀기에 먼저 문제를 끝낸 S가 내 무브를 보고 코치해 주는 일이 많았다. 또한, 가끔 만나는 다른 암장 식구들도 내가 문제를 못 풀고 헤매고 있을 때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를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 그 동작의 여러 가지 해법을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혼자 운동하고 싶다고!! 누가 보면 부끄러워서 더 못하겠다고!! 물론 이런 말들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다. 왜냐면 그들의 조언은 실제로 내 운동에 도움이 되었으며, 그들의 선의를 무시할 만큼 나는 악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저 말을 했다고 악독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가 운동을 봐주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않는다. 가끔 혼자 운동을 해야 하는 날이면 신기하게도 동작이 더 정확하게 나오지 않고 완등에 대한 의지조차 줄어든다. 과거에 부끄러운 나는 어디 가고 관심종자가 나타난 거니?      


 자세에 더 자신이 생겼냐고? 이제 부끄럽지 않냐고? 절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 동작에 자신이 없고 여전히 부끄럽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그게 나의 발전에 강력한 영양분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여러 동작을 해보면서 자기에게 맞는 편한 동작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초보이기에 그런 시도조차 못한다. 또한, 어떤 동작이 나에게 더 쉬운지 어떤 동작이 더 편한지를 해봐도 잘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이 나의 동작을 보고 내려주는 판단을 믿는다.      

 

 센터장님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 무브를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전부터 남들의 무브를 열심히 봤는데 사실 초보였을 때는 봐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와하고 감탄만 했을 뿐.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저 사람이 저 동작할 때 어디 힘을 쓰는구나 저 자세를 할 때는 저런 자세를 해야 조금은 편하구나 하고 말이다.(눈으로는 아나 몸으로는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미천한 몸의 소유자다) 초보인 나조차도 이제 보는 눈이 생겼는데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잘 알고 잘 보일까? 그렇기에 그들의 판단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큰 또 하나의 이유. 아무래도 클라이밍은 높은 곳을 오르는 운동이기에 부상의 위험이 있다는 것. 물론 우리 암장이 다른 암장보다 낮다고는 하나 그래도 제일 높은 홀드에서 떨어지면 위험한 것은 당연지사. 그렇기에 내 운동을 뒤에서 봐주고 나를 받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완등에 대한 의지가 남들보다 강하기에 아무리 힘이 없어도 무조건 홀드를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한다. ‘아등바등’이란 단어는 나의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1순위 단어가 아닐까? (의지만 있고 실력은 없는 나란 여자.)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자주 떨어진다. 그럼 부상의 위험이 더 많다는 소리. 살기 위해 다치지 않고 운동하기 위해 반드시 나는 빌레이를 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예전과는 다르게 사람들과 함께 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더 재미있어졌다. 똑같은 번호를 잡는 건데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요즘 나에게는 신나는 일이다. (이 운동 질리기는 하는 거니?)      


 벽에 붙어있는 순간은 오로지 혼자이다. 그 누구도 대신 문제를 풀어 줄 수 없으며 오로지 문제와 나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뒤를 받쳐주는 사람을 믿고 더 자신감 있게 동작을 할 수 있을뿐더러 그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더 쉽게 찾을 수도 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더니 클라이밍도 똑같은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운동을 하면서 인생을 배워나간다.


역시 클라이밍은 최고의 운동이라니까?       


작가의 이전글 EP.24 꼭 잡고 싶어, 놓치고 싶지 않아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