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증명

삶을 증명하려 했던 엄마의 이야기

by 용작가

파킨슨병은 진단받고 나온 엄마는 화가 난 듯 앞만 보고 걸었다. 총총히 걷는 엄마를 뒤따르며 엄마가 언제까지 저렇게 걸을 수 있을지 가늠했다.

파킨슨이라니.


아득한 느낌이 들 때면 초기인 데다 약을 복용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되새기며 억지로 긍정 회로를 돌렸다.


바람이 불었던 어느 봄날, 엄마의 삶이 바뀌었다.

주차장으로 향가는 길에 병원 외벽에 붙어 있던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파킨슨 환자를 위한 운동, 함께 배워봅시다.

나는 엄마에게 운동을 배우면 어떻겠는지 물었다.

미쳤구나. 너는 의사 말을 믿는 거냐?

엄마의 목소리는 뾰족했다.


관리를 잘하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니까.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순 돌팔이 의사야.


그날 이후, 엄마는 자신의 건강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


병원 약은 먹지 않았다. 진단이 잘못되었으므로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엄마의 증명은 병을 악화시켰다. 떨림이 심해졌고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병세가 악화될수록 외모를 치장했다. 떨리는 손으로 비뚤비뚤 갈매기 눈썹을 그렸으며 외출을 하지 않는데도 화려한 옷을 입었다.


지나치게 운동에 집착했으며 걷다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수술을 받았고 엄마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세상에, 휠체어라니.

엄마는 걷지 못하는 인생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다시 넘어졌다. 이번엔 오른팔이 골절되었다. 혼자 식사하기도 어렵게 됐다.

엄마가 존재를 증명할수록 나는 골치가 아팠다. 휠체어를 밀고 병원을 전전하니 점차 화가 났다. 병원에 다녀올 때면 피붙이들에게 전화했다.


왜 내가 해야 돼? 사랑을 많이 받은 딸들이 해야 되는 거 아냐?

아니, 나도 뭐 사랑을 많이 받은 편은 아니라.


엄마가 자신을 증명하려 할수록 엄마의 삶은 부정당했다. 나는 오래전 일까지 떠올려 엄마를 미워했고 차곡차곡 분노가 쌓여갔다.


제발 가만히 있으면 있어.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까.

죽어야 끝이 나지.

엄마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한소리 할 줄 알았는데……. 엄마도 희망을 잃어가는 중인가.


돌팔이 의사라고 했지만 엄마는 병원에 갈 때마다 신약이 언제 나오겠느냐고 물었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다 마침내 엄마는 절망했다. 모든 것을 놓았을 때 엄마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옆집에서 떡을 가져왔다. 개업 떡이야.


시장에 갔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과거에 발목 잡힌 엄마는 결국은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의 삶은 정지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한참 후에야 그때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증명은 단지 증명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는 것을.


그때 그 마음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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