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향
천리향, 일명 서향나무. 이름처럼 '상서로운 향기'를 지녔다는 꽃집 아줌마의 말씀에 덜컥 집에 들인 것이 재작년 가을이다. 데려와 보니 폭풍 성장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싱그러운 푸른 잎사귀에 눈이 즐거운 줄만 알았다. 그렇게 베란다 창가에서 묵묵히 지내길 만 일 년, 지난겨울에 드디어 꽃봉오리와 만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 더디게 더디게 조그마한 꽃을 하나씩 피웠다.
개인적으로 장미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꽃향기가 좋아봤자 거기서 거기겠지 생각했던 나는, 천리향의 향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다르게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꽃이 지고 한창인데 아직도 코끝에서 천리향 향기가 맴돈다. 100개의 냄새를 갖다 대 주어도 '바로 너야' 콕 찍어서 맞출 것 같다. '시원 달짝 새콤'한 향기에 취해 볕 드는 베란다에서 한참을 머무르곤 했다.
카랑코에나 제라늄 같은 아이들은 겨울이 다 가도록 꽃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향기가 진한 꽃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인가 보다. 꽃은 올 때처럼 지는 순간도 똑똑히 봐 두어야 한다. 그것이 꽃을 즐긴 사람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제자리에서 소리 없이 하나 둘 지는 꽃을 보며 내 속도 까맣게 타들어갔다. 꽃을 피울 때는 그렇게 애를 태우더니갈 때는 몇 배속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 정말 가는 길은 빈손, 일말의 향기도 남기지 않았다.
천리향의 향기로 글을 써야지 생각했지만 글을 쓴 계기는 여기서부터다. 꽃이 지는 자리는 주변에 표시를 내기 마련이어서 저 꽃들이 다 떨어지면 주변을 치워주려고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며칠째 바짝 마른 꽃들이 그대로 달려 있어서 살짝 건드려 보았더니 기다렸다는 듯 우수수 떨어지는 게 아닌가. 나는 얼른 손으로 받쳤다. 한때는 상서로운 향기를 천리까지 뿜었다던 너, 너를 어쩌면 좋니. 한참을 그렇게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