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엄마가 끓인 점심이 제일 맛있다니까”
(풀이: 역시 엄마 요리가 제일 맛있다니까)
집에서 채소로만 요리를 해도 다행히 아이가 엄마 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 아들이 엄마 요리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 몇가지를 골라보면 김밥, 카레, 샌드위치,샐러드, 가자미 미역국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김밥과 샌드위치는 아이와 같이 만들 수도 있어서 아이가 더 좋아하고 잘 먹는다.
아이가 놀고 있을 동안 재료준비를 한다. 밥솥에 밥을 앉히고, 밥이 다 지어질 동안 재료 준비를 시작한다. 그날 그날 냉장고 사정이나 장본 것 들 안에서 만들기 때문에 속재료는 조금씩 바뀌지만 김밥은 늘 맛있다. 김밥이 맛있다는 김밥 맛집은 대부분 계란 지단이 내 엄지손가락만큼 두껍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계란 알러지가 있어서 계란은 속재료로 탈락이다. 채식 지향 엄마이기 때문에 햄은 사지 않는다. 대신 어묵은 꼭 넣는다. 맛살은 반으로 쪼개어놓고, 사각어묵을 1cm 폭으로 길게 썰어 간장과 올리고당에 살짝 졸인다. 이건 우엉 조림이 없을때 해본 방법인데 우엉조림의 빈자리를 꽉채워준 맛이었다. 초록색 재료는 오이가 있으면 오이를, 시금치가 있으면 시금치를, 냉장고에 부추가 남았을 땐 부추를 넣기도 한다. 오이는 씨 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길게 자른다. 시금치는 데쳐서 시금치나물무침을 하듯이 하는데 김밥에 들어갈 시금치에는 마늘과 파는 생략한다. 부추는 어른만 먹는다면 생부추도 좋겠지만 아이와 먹을 것이니 썰어서 살짝 볶거나 그리고 당근. 당근은 가늘게 채를 썰어 올리브유을 조금만 넣고 약한 불에 볶아놓는다. 김밥 단무지는 물에 한번 씻어서 물기를 빼놓고, 김밥 단무지가 없을땐 채썬 무를 식초 설탕 소금에 살짝 절여서 물기를 꾹 짠 뒤 넣기도 한다. 이 정도면 기본 김밥은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옵션으로 추가할 수있는 재료는 새송이버섯과 파프리카 그리고 깻잎이다. 새송이버섯을 길게길게 채썰어서 살짝 볶는다. 파프리카는 채썰어 둔다. 깻잎은 잘 씻어서 물기를 빼놓는다. 이 재료들 중 4가지만 있어도 괜찮은 김밥이 된다.
이제 밥이 다 익었다. 우리집 전기밥솥의 내솥은 스테인리스라서 볼에 옮기지 않고 밥솥 내솥에 바로 소금,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잘 섞는다. 설거지 거리 하나를 줄였다. 참기름은 넉넉히 들어가야 맛있다. 내가 생각했을때 김밥의 맛을 좌우하는것은 햄도 아니고, 맛살도 아니고, 단무지도 아니다. 밥의 간이다. 밥이 너무 싱거워도 너무 짜도 김밥이 맛이 없어진다. 다른 재료들의 간도 있으니 아주 살짝 아쉬운 정도의 간이 좋다. 이런 비밀(?)을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는지, 김밥 재료에 햄을 빼면 조금 부풀려서, 큰일 나는 줄 아는 것 같다. 햄이 빠진 김밥은 가공육의 합성 첨가물로 인한 인공적인 향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맛이 깔끔하고 다른 재료의 맛이 잘 느껴진다. 그러니까, 김밥에 햄을 빼도 괜찮다.
재료 준비가 다 되고, 김밥을 말 준비를 시작하면 아이가 어느 새 옆에 와서는 자기도 하겠다고 기웃거린다. 사실 아직 6살 남자아이가 마는 김밥은 다소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경향이 있지만 몇 해나 이렇게 엄마 옆에 와서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하겠나 싶어, 김밥 마는 주도권을 아이에게 내어 준다. 김발에 김을 한장 올리고, 비닐장갑 대신 숟가락과 맨손으로 밥을 잘 펴 발라놓은 뒤, "네가 넣고 싶은거 넣어"라고 말하면, 의외로 아이는 모든 재료를 다 넣는다. 제일 먼저 깻잎 두장을 나란히 깔고, 단무지, 맛살을 시작으로,볶은 당근, 오이나 시금치도 팍팍 넣는다. 자기 입맛에 맞는 간장에 짭쪼롬하게 볶은 어묵은 욕심을 내 많이 넣으려고 한다. 김밥이 터지지 않도록 김 끝부분에 물을 바르는 것도 어린이의 몫이다. 물까지 바르고 나면, 김발 사용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들의 손과, 내 손이 함께 김과 김발을 잡는다. 재료들이 쏟아져 내리지 않고, 단단하게 말리도록 엄마 손의 도움을 받아 고사리 손이 마지막 돌돌 마는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고 완성된 잘 말아진 김밥을 자르기 전에 솔로 참기름를 발라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하면 또 신이나서 참기름을 쓱쓱 바른다. 그리고는 자기건 자르지 말란다. 통째로 들고 먹겠다고. 김밥 한줄을 들고 금새 다 먹은 아이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썰어놓은 김밥까지 몇개나 집어 먹는다.
대여섯살쯤의 아이들이라면 아마도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만 또는 엄마 아빠만의 영역으로 느껴지는 공간과 도구들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 위험하다고 못하게 말리지 않는 이상 요리하기를 마다할 친구들은 없으리라 본다. 우리 아이도 4살때부터 가끔 알러지가 없는 재료들로 빵이나 쿠키 만들기를 했더니 종종 "엄마, 우리 오늘 빵 만들까?, 쿠키만들까?"하고 나에게 얘기한다. 아이에겐 요리가 재밌있는 놀이인 셈이다. 놀이를 통해 아이는 재료를 탐색하게 된다. 밀가루를 만져보기도 하고, 밀가루가 반죽이 되어 찰흙놀이처럼 되는 것도 신기하다. 김밥 재료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에도 기웃거리며 재료들을 하나 두개 집어 먹기도 하면서 재료의 맛을 파악한다.
엄마의 젖을 떼어갈 시기에 이유식을 하는 이유는 이유식으로 모자란 영양을 채운다기보다는 아이에게 혹시 있을지 모를 알러지를 파악하기 위함도 있고, 아이 스스로가 음식의 재료와 친해지게 하기 위함도 있다. 모든것을 잘게 썰어넣고 이미 조리가 되어 작은 플라스틱통에 담겨진 이유식으로는 아이는 채소와 친해질 기회를 잃게 된다. 엄마가 이유식을 만들다가 손질되지 않은 재료를 보여주기도하고, 데쳐놓은 재료를 손에 쥐어지기도 하면서 아이가 채소와 친해질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각은 어른들의 미각에 비해 쓴 맛을 좀 더 잘 느낀다고 한다. 어릴 때는 맛이 없던 나물 반찬이 나이드니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아마 이 혀가 느끼는 쓴맛의 정도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쓴맛이 어른보다 잘 느껴지는 아이들은, 아무리 잘게 썰어서 숨겨놔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또는 먹기 싫어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그러니까 접근 방법이 달라져야한다. 첫 인상이 싫었던 사람도 친해지고 나니 너무 좋은 사람일 때가 있는 것처럼, 채소를 여기저기 숨기지 말고, 처음부터 채소 고유의 모양과 색깔과 맛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줘야한다. 그래야 채소와 친해질 수 있다. 브로콜리, 애호박, 파프리카 같은 채소들이 가진 달큰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재료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야한다. 아이에게 채소와 친해질 기회도 주지 않고, 우리 아이는 채소를 안먹고 고기만 먹어요. 라고 하지 말자.
우리 아이는 어릴 때 애호박을 정말 잘 먹었다. 애호박을 그냥 반달 모양으로 편을 썰어 노릇노릇하게만 구워주면 애호박 집어 먹기에 바빴다. 지금은 애호박만큼 좋아하는 채소가 브로콜리인데 물에 소금만 조금 넣어 데쳐놓으면 수북하게 쌓아놓은 브로콜리 한 접시를 혼자 다 먹는다. 엄마 아빠가 손도 못 대게 한다. 브로콜리를 입에 대고 츕츕 하면서 데친 브로콜리의 달큰한 수분을 즐기기도 한다. 브로콜리와 샤인머스캣이 나란히 있으면 브로콜리부터 다 먹는 아이다. 파프리카는 이 아이에겐 그냥 과일이다. 썰어놓으면 과일처럼 집어 먹는다. 우리 아이의 미각이 쓴맛에 둔한 걸까? 아니다. 우리 아이도 곤드레나 취나물 같은 나물은 안 좋아한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채소를 잘 먹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유제품과 계란 알러지가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계란이나 치즈 같은 것이 들어간 반찬이나 이유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채소 위주의 식단만으로 유아식을 해야 했던 것도 아이가 채소와 친하게 된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집은 아침이 샐러드였다. 아침마다 식탁 위에는 양상추, 브로콜리, 사과,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등이 들어간 샐러드가 있엇다. 엄마 아빠가 매일 먹는 샐러드이니, 아이도 먹고 싶지 않았을까? (엄마 아빠가 매일 손에 들고 놓지 않는 핸드폰을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일부러 먹어보라고 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스스로 샐러드에 있는 발사믹 드레싱이 묻은 브로콜리나 사과를 집어 먹어보니 맛이 있었던 것이다. 맛이 있으니 샐러드는 다 내꺼라며 자기 앞에 두고는 엄마아빠는 못먹게 하는 사진들도 내 핸드폰 사진첩에 있다. 일단 엄마 아빠부터 채소를 자주, 많이 먹자. 그래야 아이들도 채소를 자주 보게 되고, 엄마 아빠가 맨날 먹는 음식이 궁금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