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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Jul 12. 2024

스프레이와 에프킬라

얼마 전 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오마나, 이 청춘 남녀가 누구야! 25년 전 나와 신랑이었다. 신랑 신부가 아닌 남친 여친 사이! 낯설 만큼 앳되고 싱그러운 청춘을 한참 마주 바라보았다. 잊고 있었던 그 시절로 순식간에 달음질 쳤다.

설레던 나날들이 캡쳐 화면처럼 쑥쑥 떠오른다.


설레고 좋았었다. 가뜩이나 평소 맥박이 빠른 나는 그를 만나러 가기 전부터 맥박이 얼마나 더 빨랐을까?

 아마 맥박이 춤을 추었겠지!

그래, 참 좋았지. 우리의 그 시절! 달달한 추억에 잠기다가 ‘푸하하!’ 빵 웃음이 터졌다.   



또렷이 그 날 아침이 펼쳐진다. 25년 전 여름 어느 토요일 이른 아침. 아침부터 내 맥박도 춤추고 내 머리칼도 춤을 추었다. 주말 데이트를 준비하는 나의 손과 발이 분주했다. 옷장에서 옷을 초이스하고 그날의 아이섀도우와 립스틱 컬러를 정하고(그 당시 유행 화장은 왜그리 진하고 과장되었던지 물론 나는 유행을 충실히 따르는 그 시대의 젊은이였으니 그날의 화장이 상상이 된다!!).

가장 중요한 헤어스타일만 완성하면 데이트 준비 완료!


그러나 순조롭게 흘러가던 나의 데이트 준비 과정 마무리에서 상상치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그 덕분에 25년이 흐른 지금도 그 날의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장면과 내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있음이요.

 앞으로도 나의 웃음 기억 저장소 베스트 섹션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가자!

우리 집 거실 벽에는 아빠가 직접 만드신 거울 밑 이중 선반이 있었고 그 선반에는 당시 헤어스타일을 완성 시켜 주는 ‘가는 빗, 롤러 빗, 드라이기, 스프레이, 헤어무스’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친정집에는 지금도 그 선반이 있다. 비록 베란다 구석에 먼지로 포장되어 있지만.


자, 집중! 다시 그날, 그 장면으로!

옷도 오케이, 화장도 오케이, 이제 헤어의 자존심만 ‘팍팍’ 세워주면 퍼펙트!

앞서 말했지만 그 시절 메이크업과 헤어는 좀 과장됨이 추세였고

 나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는 바이다.


나는 헤어의 자존심의 상징이자, 자신감의 표상인 ‘거친 바람에도 꼿꼿함’을 유지하도록, ‘앞머리를 롤빗으로 드라이 한 후 강력 스프레이를 화끈하게 두 번 분사하기’를 감행했다.


강력스프레이를 집어 들고 ‘치이이익’ ‘치이이익’ 정확하게 두 번 연거푸 분사를 마쳤다.

1초 2초 3초가 지났을 때,

아~~~~악!! 이게 뭐야!!

인위적이지만 복숭아 향이 머물러야 하는 공중에

 익숙하고 매캐하고 코와 눈을 강타하는 자극적인 냄새가 순간 나를 덮쳤다.  

정신을 차리고 매운 눈을 찡그리며 내 손을 보니,

아뿔사! 내 손에는 헤어스프레이 통이 아닌 에프킬라 통이 들려 있었다.

벽 선반을 보니, 보라색 스프레이 통이 나를 놀리듯 떡 하니 놓여있었다.

그 이후 상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날, 하루 종일 내 주변에 모기는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당하고 어쩌구니 없는 실수.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실수를 하면서 살아간다.

실수는 강도가 센 감정들로 방부 처리가 되기에 우리의 기억 저장소에서 유통기한이 길다. 

그러나 그 감정 방부제는 동일 하지 않다.

어떤 실수는 부끄러움으로, 어떤 실수는 화남으로, 어떤 실수는 미안함으로, 어떤 실수는 억울함으로, 어떤 실수는 후회로 그 색이 다양하다.


그 날의 스프레이(에프킬라) 실수는

내게 ‘설’이라는 좋은 방부제로 처리되어 보관되고 있다.


그나저나, 신랑(구남친)은 그날 나에게 어떤 향을 맡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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