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사의 무례한 질문에 대처하는 방법

08 | 눼눼. ’흥이다!‘

by 아우구스티노



우리 팀 구성은 팀장님, 그리고 차장님, 그리고 과장님 두 분, 그리고 대리님 2분, 그리고 주임 1분, 그리고 나였다. 과장님 두 분 중의 한 명이 해외 MBA를 떠난다고 하려 퇴사가 결정되어 있었는데, 내가 그 자리로 오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내 위 사수인 손주임님이 신입사원을 뽑아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고 하고, 그걸 팀에서 받아들이게 되어 내가 뽑힌 것 같다.

떠날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과장님과는 보름정도 오버랩이 되었는데, 다소 아니 좀 많이 잘난 척이 있는 분이었다. 이 분이 어느 날 나에게 메신저로 커피 한잔 하자고 말을 건네주셨다.

‘응? 뭐지? 직장생활 꿀팁이라도 주시려나?‘


쫄래쫄래 따라갔더니, 다른 대리님도 한 분 더 나와있었다. 그렇게 세 명이서 지하 과일주스 파는 곳에서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몇 마디 나누다가 이런 질문을 한다.


"한결 씨는 부모님이 뭐 하세요?"

'뭐야. 뜬금없이 부모님이 뭐 하냐니. 이런 걸 왜 물어봐'

"아, 네. 지금 퇴직하신 지 상당히 오래되셨습니다. 저랑 나이차가 좀 많이 나십니다. “

"뭐, 여기 윗분들이랑 아는 사람은 없고?"

'네, 전혀 없습니다.'

"뭐야. 어떻게 온 거야? 엄청 스펙이 좋지도 않던데."

'와 질문이 참 무례하구만. 이렇게 대놓고 얘기하네, 뭐야 이 사람.'

그러나 당황하지 않는다. 팩트로 대답하자.

- 여기 어떻게 왔어? 버스 타고 왔죠. 이런 식으로. -


"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사팀에서 며칠 대기하다가 갑자기 팀장님이 가자 하셨습니다."

나와 다르게 우리 팀 멤버들의 구성이 팀장님을 제외하면 다들 학력이 매우 좋았다. 그래도 그렇지. 빽을 운운하는.. 부모님이 뭐 하냐는.. 하더라도 자기들끼리 할 것이지.


"영어를 잘해요?"

'아, 또 영어.. 아 스트레스.'

"아닙니다. 진짜 잘 못합니다."

옆에서 대리님이 거든다.

"이상하긴 하네. 어떻게 왔지. 키 커서 왔나?"

"XX고 출신에 강남 살고, 뭐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

그들끼리 떠든다.

'아, 대화가 저질이네. 뭘 그리 그런 걸로 따져 들어.'

"암튼 뭐 왔으니까 잘해야지. 여긴 신입사원을 왜 안 뽑는지 알지? 영어도 잘하고, 숫자도 잘 알아야 하지만 사업부 사람들이랑 네트워크가 좋아야 해."


이럴 때는 네네 해주는 게 답이다. 다소 좀 큰 목소리로. 그래야 마무리가 된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얼굴에 티가 많이 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조심하려 했는데, 여지없이 얼굴에 싫은 티가 드러났을 것이다. '흥이다.'


나중에 생각해봐도 잘 모를 정도로, 내가 왜 이 팀에 왔는지 미스터리다. 동기가 300명 된다고 하지만, 사실 그 해에 들어온 사람을 다 동기라 하는 것이고, 말이 동기지 각자 다 다른 시점에 입사들을 해서 우리는 XX기 XX차수로 뒤에 차수가 붙는다. 그 차수 기준으로 같은 시점에 들어온 진정한 동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차수는 50명 정도 되었고, 우리 차수에 문과생이 5명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공대와 일부 자연계 출신들만 뽑는 회사였다. 그 문과생 5명 중에 2명은 여자였는데 다들 재무부문으로 갔고, 남은 3명의 남자 중에 학력은 비슷한데 굳이 다른 걸 뽑자면 내가 키가 더 컸다는 점 정도.


이 회사는 대기업 중에 학력보다는 실력(사실은 몸과 영혼을 갈아 넣는)을 보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래도 학력을 보는 부서가 있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재수가 없었지만, 이 부서에 근무하려면 그래도 학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암튼 나는 빽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이 팀에 왔지만, 뭐가 그렇게 좋은 팀인지 몰랐고 나 역시 꿀릴 것 없는 당당한 사람이니까 별거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영어. 그놈의 영어가 내가 생각해도 부족하니까 그것만 좀 채우자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때 무례한 질문들 때문에 나는 상대방에게 무례한 질문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학교가 어딘지, 어디 동네 출신인지, 빽이 있을 것 같은지를 물어보지 않는다. 사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다만 건너 건너 알게 된 것은 그래도 엄청 잘 기억하는 편이라, 사람마다의 스펙은 충분히 알고는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알고 있는 것조차, 그래서 알게 모르게 은근히 평가하는 것조차 내가 속물 같은 사람임을 여실히 느끼곤 있지만, 그래도 그때 그 선배들처럼 괜히 기분 나쁠 수 있는 것은 대놓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때 그 경험이 나를 조금은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질문들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매우 불편한 질문이 된다. 그 불편함은 주니어 시니어의 세대의 차이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성향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 요즘은 '여자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조차 허락되지 않는데, 과거에는 도대체 어떻게 부모님 뭐 하시냐 를 쉽게 물어보곤 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이때 당시 입사원서에 부모님 직업과 학력을 쓰는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서로 간의 친밀도가 많이 쌓인다 해도 불편한 부분은 불편한 부분이다. 서로에 대해서 알면 아무래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더 커지는 면은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너무 깊게 알고자 하는 것 같으면 그때부터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지게 된다. 스스로 꺼내놓기 전에는 함부로 질문을 하지 말자.


특히 실수하기 쉬운 질문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이 될 때 나타난다. 여럿 모여있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식 얘기를 꺼낸다. 애 키우는데 너무 힘들다. 언제 키우냐. 괜찮다 금방 큰다. 크면 큰 대로 또 걱정이 생긴다. 뭐 이런 얘기들이 오갈 때, 누가 봐도 40 후반에 결혼한 사람처럼 보이는 분에게

"부장님은 애가 몇 학년인가요?

"아, 저는 아직 애가 없습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죄송한 것 같아서 할 수가 없다. 그분은 이런 질문을 얼마나 들었을까. 그리고 애가 없는 것이 전혀 죄도 아닌데, 물어본 사람이 죄송해하는 것 같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불편한 기분이 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으레 그 나이에 그 상황이면 당연할 것이라고 여겼던 얘기들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얘기일 수 있기 때문에, 당연이라는 말은 그냥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심지어 누군가의 불편한 사생활을 어떤 연유로든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때, 그 사생활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라는 곳은 쓸데없이 말이 많은 곳이니까 불편한 얘기들이 돌아다니며 불편한 상황들이 만들어지곤 한다. 바빠서, 너무 바빠서 다른 말들에는 신경 쓸 여유도 없으면 무슨 얘기들이 돌아다니는 지도 사실 잘 모른다. 부득이 내 귀에 무슨 얘기가 들어와도 내가 또 너무 바쁘면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어서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회사가 매일 바쁘기만 한 곳은 아니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일을 확실히 적게 하는 사람도 있는 곳이니까 말들은 여전히 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니까, 서로의 사생활은 모르는 것이 낫다. 어떻게 알게 된다고 해도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낫다.'


가장 좋아했던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에 대해 무슨 얘기를 들어도
모르는 척해줄게.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 줘라.
모르는 척해주겠다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겸손해야 된다‘ 부터 알려준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