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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Oct 17. 2024

두번째 스탭이 계약하였습니다

같이 살기까지?

그래도 나 자신이 많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었거든. 희철이도 그럴거야.

"히쳘? 아, 샬롯 생일파티 때, 고등학생이었던 기억이 나."


"응. 벌써 걔도 20대 중반이래."


"그런데 민박집에서 돈을 안받고 일한다고?"


"숙박 제공해주고 주급을 아주 약간 주던지 해야지. 이모가 원하는 건 유럽 여행도 하면서, 실제로 일도 해보고 무엇보다 내가 돌봐줬으면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당신과 대화도 나누며 영어도 늘었으면 하시네."


"뭐 그게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  관광 취업이라고도 불리며 국가들 간에 양해 각서(MOU)를 맺어 젊은이들로 하여금 방문국에서 일반적으로 1년간 자유롭게 거주, 취업, 여행 혹은 공부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 주는 프로그램) 아니겠어?"


루이와 미주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떠났다가 그 곳에서 처음 만났었다. 미주는 골드코스트의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었고, 서핑을 즐기던 루이는 그 카페의 단골 손님이었다. 미주가 퇴근하면 루이는 미주를 데리고 서핑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두 사람이 가까워졌던 것이다. 두 사람에게 호주에서의 워킹 홀리데이는 일과 영어, 사랑을 모두 다 잡았던 황금같은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내가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고 샬롯도 어리니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오면 너무 좋겠는데. 당신이랑 샬롯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아."


미주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방이 2개였다. 희철에게 방 하나를 내어준다면 세 식구는 한 방에서 지내야만 할 테였다.


"왜 방이 2개야? 3개지."


"뭐?"


"거실 있잖아. 기억 안나?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할 때, 나 거실에서 살았잖아."


"큭큭. 맞아. 제일 싸다고 거실 한쪽에 침대 하나 있는거 구해서 살았었지. 나는 썬룸(한국의 베란다)에서 지냈지. 다들 입 돌아간다고 걱정했지만 여럿이 쓰는 것보다 썬룸이라도 혼자 쓰는게 좋았거든."


"호주였다면 이 아파트에서 7명은 살았을거야. 4명이 지낸다니 나쁘지 않지. 희쳘은 분명 휴일에는 여행을 떠날 거고. 비쥬는 그때 민박집에 있겠지. 집에서 주로 활동하는 시간대도 크게 겹치지는 않을거야."


"그렇지만 너무 불편하지 않겠어?"


"딱히 방법이 없잖아. 다행히 민박집이 월세 낼 정도로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초기에 투자한 비용이 있으니 직원용 숙소를 따로 구할 수도 없잖아. 오히려 여기에 와서 함께 지내준다면 고마워해야지. 그리고 샬롯에게도 좋을 것 같아. 돌잔치하러 한국에 다녀왔다고 하지만 너무 어릴 때라서 샬롯은 한국에 대한 기억이나 정서가 너무 부족해. 지난번 장모님과 이모님이 오셨을 때, 나는 너무 좋았었거든. 샬롯에게도 자기 뿌리의 절반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해. 히쳘과 함께 지낸다면 분명히 정체성에도 도움이 될거야."


루이의 말이 맞았다. 경제적인 상황에서도 이게 최선이었고, 희철의 입장에서도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일만 하다가 가기에는 아쉬울 테였다. 루이와 함께 부딪히다보면 조금이라도 영어가 늘 수밖에 없었으니까.


"좋아. 그러면 그렇게 하자."


"분명 샬롯도 좋아할거야. 방은 어떻게 나누지?"




"얘, 희철이가 가겠대! 본인도 내심 수능을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나봐."


"정말요?"


그렇게 이틀 동안, 서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미주와 기숙은 다시 통화를 했다.


"응. 거기 가서 마음 정리도 좀 하겠다고 해. 갔다오면 학교에 복학하기로 했다. 


이왕 가는거 너처럼 호주로 가고 싶어하긴 한데... 거기에 아는 사람이 없잖냐. 막상 가서 일자리를 못구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봐. 차라리 누나네 민박집에서 일하면 그런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기숙의 말은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말 그대로 비자만 주는 것이지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머물 곳 하나, 일할 곳 하나 없는 낯선 땅으로 캐리어 달랑 들고가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부딪혀야하는 게 워킹 홀리데이였다. 인터넷으로 봤을 땐 괜찮아보였지만, 막상 가보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밥솥이나 후라이팬을 제공하기도 하고. 청소가 엉망이라 비위생적인 곳도 많았다. 시설이 깨끗하더라도 누가 쉐어메이트가 되는지에 따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주단위로 집세를 내야하다보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밤에 잠이 안올 정도로 쪼들렸다. 12명이라는 한국 워홀러들이 복작복작 살던 쉐어하우스에서 일을 구한 사람은 보통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유명한 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한 덕에 어지간한 음료를 만들 줄 알지 못했다면 미주의 호주 생활도 어떻게 흘러갔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트레이닝 없이 바로 음료를 만들어줄 직원이 필요했던 카페에서 바로 미주를 채용해주었었다. 또한 몇 년 동안 외국 항공사 면접을 준비하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사장의 강하고 빠른 호주 억양에도 지시 사항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미주가 호주에 도착한지 3주가 지난 시점으로 이미 집세로만 100만원 가까이 지출한 후였다.


"숙소는?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건 괜찮대? 루서방이 저녁에 퇴근하면 저녁은 차려준다고 했어. 물론, 프랑스식이긴 하지만 아침은 민박집에서 한식 먹으면 되니까 먹을만할거야."


"그래주면 고맙지. 희철이도 기껏 외국에 나갔는데 한국 손님들 상대하며 한국말만 하는 것보다 더 낫겠대. 프랑스어는 몰라도 어쨌든 계속 수능본다고 영어공부를 했는데 루서방이랑 대화하면서 써볼 수도 있고."


"그럼, 이제 내가 희철이랑 이야기를 해볼게. 여권이랑 비자 준비도 해야하고,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래. 내가 돈은 지원할 생각이니 하루라도 빨리 가면 좋겠다. 아주 다 큰 녀석이 방 안에 콕 틀어박혀 있는 꼴 보는 내 속이 말이 아니다. 지도 가서 다양한 사람들 만나보고 경험해보면 생각이 바뀌겠지. 그래도 뭐 일하는 틈틈이 유럽 여행도 가고, 손님들 없는 시간에는 토익 공부도 하겠다고 하더라."


"사실 일하면서 여행하고 거기다 무언가 공부한다는게 쉽지는 않아, 이모. 계획한 일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옆에서 나도 잘 챙겨줄게."


"얘, 너는 호주에서 일도 하고 영어도 쓰고 더군다나 결혼까지 했잖냐. 그 만큼은 바라지도 않는다."


"아휴. 나도 내가 원하는 건 결국 못 해봤어. 대신 전혀 예상치 못한 결혼으로 마무리했지."


워킹 홀리데이가 이론적으로는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언어도 배운다고는 하지만 이 중, 하나만 얻어도 성공일 정도로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호주의 시급이 높다고 하지만, 그만큼 집세 비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잔고의 압박은 느껴지지, 몸은 피곤하지, 공용 주방이라 요리가 편하지 않지... 그러다보니 워홀러들은 값싼 과자나 라면,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곤 했는데 그래서일까 아프기도 참 자주 아팠었다. 


미주도 처음에는 호주에서 생활비를 벌며 영어 실력을 높이고, 틈틈히 호주에서 열리는 오픈데이에 참석해 취업에 성공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카페에서 일하며 면접 준비를 해 참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호주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한국 식당에서 일하는 워홀러들도 있었고, 기껏 호텔에 일을 구해도 사람은 구경도 못하고 밤새 연회장 테이블과 의자에 천만 씌우다 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한국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본 그 시간이 미주에게는 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었다.


"그래도 나 자신이 많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었거든. 생각하지 못한 걸 얻어가기도 하니까. 희철이도 분명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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