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쥬네 민박집은 가족기업?
"밤은 위험해요."
진규가 혼자 돌아가려는 재경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 그래요! 이렇게 해요! 오빠, 저, 사장님이 민박집으로 가고요. 수환씨가 재경씨를 데려다주고 와요. 남자가 한명씩 있는게 좋을 것 같아요."
재경은 소라의 제안에 난감해하며 거절했다.
"아니에요. 오늘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피곤하실텐데... 다들 걱정되시면 택시타고 돌아갈게요. 그리고 도착하면 언니한테 바로 연락도 할게요."
"그럼 택시를 같이 타고 가요."
"그렇죠. 여자분 혼자 너무 위험해요."
사실 혼자서 아프리카며 중동을 누비는 재경은 혼자서도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경이 보기에 진규와 소라가 이대로 자신을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그러면 수환씨와 택시타고 호텔로 돌아갈게요."
마지못해 대답했지만 재경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환을 바라보았다.
"공항 근처 호텔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40분은 걸릴거예요.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습니다. 덕분에 파리 구경하니 재밌죠. 하하."
곧 택시가 도착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재경의 승무원 지정 호텔로 떠났다. 택시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후, 미주는 진규, 소라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언니, 여기 사진!]
다음 날, 카타르로 무사히 돌아가 하루 푹 쉬고 일어난 재경이 미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미주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찍었던 사진 몇 장을 보내준 것이었다. 미주는 잠시 빨래 개는 것을 멈추고 사진을 확인했다. 미주의 손길이 닿은 민박집의 구석구석을 찍은 사진도 있었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차를 따르는 미주의 모습도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진은 야경투어를 진행하는 자신의 사진이었다. 주로,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기 바빴던터라 반갑기 그지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뒤로 하고 열심히 루브르 박물관 건물의 변천사에 대해 설명하는 자신의 모습이 꽤나 열정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잘 나온 사진을 그냥 두기 아까웠던 미주는 비쥬네 민박집 SNS에 올렸다.
[투숙객들의 깜짝 팟럭 파티!
비쥬네 민박집의 시그니처 야경투어.
모두들 알차게 놀다 가셨습니다.
#파리호스텔 #파리숙소 #파리한인민박 #비쥬네하우스]
'우웅-'
SNS에 포스팅을 하나 올리고 다시 침대 시트를 개려고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2달 전, 한국으로 돌아간 기숙이었다. 미주는 커다란 침대 시트를 요령껏 개면서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이모. 무슨 일이야?"
"얘는 무슨 일이긴. 우리가 꼭 일이 있어야 전화하니? 너 잘 지내나 전화해봤지. 손님은 좀 있고?"
"응. 다행히 손님이 많은 건 아니지만 끊이지 않고 있어서 월세랑 전기세 걱정은 없이 지내고 있어."
"그렇구나. 다행이네."
기숙은 안부를 묻다가 진짜 전화를 건 이유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저기, 미주야. 희철이 말이다. 혹시 지난 번에 나랑 언니가 갔던 것처럼 파리에서 몇 달 좀 지내게 하면 안되겠니?"
"몇 달이면... 여름방학에 놀러온다는 거예요? 그 때, 민박집에 자리가 별로 없어요. 성수기라서 벌써 예약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걸요. 가을이나 되어야 자리가 있을텐데 그 때는 희철이도 학교 가야죠."
"에휴. 희철이 학교 안다녀."
"네?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거 아니었어요?"
"학교가 마음에 안든다고 다시 수능본다고 하고 있어. 그럼 지금 6수할 나이지 않냐. 군대 안간 여자애들은 졸업해서 취업까지 할 나이인데 아직도 수능보겠다고 저러고 있으니 어쩌면 좋니."
미주는 수화기 너머로 기숙의 뜨거운 한숨이 전달되는 듯했다. 희철은 삼수 끝에 한 대학에 입학했고 1학년 과정을 마친 후, 군에 입대했다. 기숙의 말로는 1학년을 다니는 동안에도 수능 공부를 해서 수능을 봤다고 한다. 희철은 군대에서도 수능 공부를 놓지 않았고, 작년에 제대하자마자 한 번 더 수능을 봤다고 했다. 수능 점수는 기존에 다니던 대학 입학 점수보다 더 낮게 나왔다. 기숙과 그녀의 남편은 이제 그만하고 다니던 학교로 복학해 졸업을 하자고 권했지만 희철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희철은 복학 대신, 다시 수능 공부하는 것을 택했다. 20대 중반이 된 아들이 수능에 매달려있으니 기숙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그럼, 공부를 해야지 여기에 오면 어떻게 해요. 한번 유럽 여행오려면 이것저것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려서 많이 흐트러질 거예요."
"더 흐트러질 것도 없어. 보면 공부는 안하고 맨날 게임만 하고 늦잠만 잔다. 지도 똑같은 공부를 고등학교 3년, 졸업하고 5년 했으면 질려서 더 못하겠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내년에도 또 수능본다고 할거다. 내가 그때 파리 가서 보니까 대학생들도 오고 하더라. 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가 깨달아야지, 맨날 방에 쳐박혀서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다 된다고 생각하니 답답해 죽겠어."
파리에서 새로운 풍경을 실컷 보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친정 언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기숙. 한국에 도착하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이었다. 기숙의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은 이미 익숙해서 무감각해져버린 장손 며느리로서 끝이 없는 일거리나 가난이 아니었다. 희철이보다 몇 살 어린 대학생들은 대학도 재밌게 다니고, 아르바이트해서 유럽 배낭 여행도 다녀오고, 군대에 다녀와 취업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던데... 왜 자신의 아들은 좀 더 좋은 대학에 가겠다며 그 귀한 세월을 방 안에서만 보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작은 회사에는 취업 못하겠다며 공무원 시험 보겠다고 하는 거 아니야?'
기숙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며 서른이 훌쩍 넘도록 집에 있는 육촌 조카를 떠올렸다. 사촌 시누 부부가 슈퍼 일을 하며 대학까지 공부시켰건만 취업이 잘 안되는 학과라며 졸업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 조카였다. 조카를 위해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무거운 물건을 나르며 일하는 사촌 시누 부부를 보며 내심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숙 부부의 가까운 미래가 될 터였다.
도매 시장과 작은 의류 공장을 오가며 옷감 배달일을 하는 기숙의 남편도 이제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다행히 힘을 쓰기보다는 오토바이 운전을 하는 일이라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었지만 위험한 일을 언제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희철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만 한다면야 소일거리를 하며 두 부부가 먹고 살면 되겠지만 자식 교육을 마치지 못했으니 남편도 배달일을 놓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희철이 본인이 오겠다고 해야죠. 당장 여름에 오려면 준비를 서둘러야할텐데. 우리 민박집만 해도 자리가 이제 별로 없어요. 한번 이야기해보세요. 온다고 하면 며칠 정도는 침대 하나 빼줄테니까요."
"아휴. 며칠 가지고는 정신 차리기는 글렀고, 마음 같아서는 한 몇 개월 거기서 일도 좀 돕고 손님들하고 얘기도 하면서 견문 좀 넓히게 하고 싶은데. 그 뭐냐. 젊은 애들은 유학말고 워크홀리데인가? 왜 가서 일하면서 말도 배운다는데. 옆집 딸이 재작년에 일본에 1년 저렴하게 갔다왔거든. 그러더니 금방 취업이 되더라고."
"순순히 수능을 포기한다고 할까요? 프랑스에도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있긴 한데... 여기는 영어권 국가도 아니잖아요. 한번 희철이랑 이야기해보고 연락 주세요."
미주는 일단 전화를 끊고 다시 예약 현황을 살펴보았다. 이따금 비는 날도 있긴 했지만 벌써 예약이 많이 되어 도미토리 룸의 침대 하나라도 연속해서 쭉 사용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이 비좁은 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다가는 견문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만 받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에휴."
예약 현황을 확인한 미주는 다시 수북히 쌓여있는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 수건 더미로 돌아왔다. 빨래 개기에 집중해보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사장님, 누가 파리에 온대요?"
소라가 빨랫감을 가지고 나오며 그런 미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마 빨래를 돌리려고 했는데, 미주의 통화에 방해가 될까봐 끝날 때까지 안에서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런 소라의 뒤를 진규가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 이불 등을 들고 따라나왔다.
"네. 이모가 사촌 동생을 파리에 몇 개월 보내고 싶다고 하시는데... 관광이야 며칠이면 끝날테고 말도 안통하니 오래 있기 어렵지 싶네요."
"파리에만 몇 개월을요?"
소라는 진규가 연구실로 출근할 때면 이따금 미주를 따라 장을 보는데 따라나서곤 하며 미주와 부쩍 친해졌다. 미주는 소라에게 한국 재료를 대신할만한 채소를 알려주거나 어디에 가면 좋은 물건이 있는지 등 파리 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었고, 소라는 미주가 급할 때 손님들의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대신 해주기도 하며 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의지하는 관계가 되었다.
"사촌 동생이 대학에 복학을 안하고 수능을 보겠다고 하나봐요. 아마도 이모 생각에는 민박집에 머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서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 저도 재수했었거든요. 정말 사촌 동생 마음이 힘들텐데 응원을 해주시는게 좋지 싶어요. 재수는 참 마음이 힘들거든요."
재수부터 시작해서 박사과정까지 꽤 오랫동안 공부를 한 진규가 말했다. 그는 또래 친구들이 한창 대학 생활을 즐길 때, 홀로 수능을 공부했고, 또 다시 나중에 친구들이 사회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할 때, 홀로 세월이 멈춘 것처럼 연구실에서 공부만 했던 오랜 기억이 있었다.
"저어, 그게. 재수가 아니라 이번에 수능을 보면 다섯번 째 보는 거예요. 나이로는 6수할 나이구요. 군대를 중간에 갔다와서요. 이모 말로는 공부는 안하고 게임만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말이 쉽지 똑같은 공부를 고등학교 3년, 졸업하고 5년을 하는건데 손에 안잡히겠죠."
"공부가 손에 안잡힌다니... 큰일이네요."
"아이구, 자기는 공부한다고 하면 열심히만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정도 공부하면 지칠만 해. 석사 학위 받고 박사 학위 받고 하는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년 세상과 단절된 채 똑같은 공부를 해야하는 거니까."
7년의 공시생활 끝에 공무원이 되어 몇 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다가 진규를 따라 청원휴직을 내고 파리에 온 소라는 희철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기 시작한 소라는 거실에 앉아 미주에게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럴 때는 사실 환경을 바꿔주는 게 도움이 되긴 해요. 저도 처음 5년 동안, 공무원 시험만 준비했을 때는 불안하고 초조해서 공부가 잘 안되었었거든요. 합격 점수와는 불과 몇 점 차이니 늘 아깝게 떨어졌다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5년이 넘자 생각이 바꼈어요. 그 1점에 수천명이 몰려있으니 아까워할 것도 없다고 말이죠.
그냥 차라리 돈을 버는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친척의 소개로 작은 제조업체에 취업해서 일을 했었어요. 만삭의 임산부였던 전 경리분이 인수인계를 해주셨는데, 어찌나 무섭게 가르치시던지 3개월 동안 아주 눈물을 쏙 뺐어요. 제가 일을 제대로 못 익혀서 결국 제왕절개 날짜 받은 이틀 전까지 출근하셔서 급여계산을 하고 책상을 정리하셨어요. 더군다나 경리는 동네 북이었죠. 뭐만 잘못되면 저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하시다보니 완전 쌈닭이 되어버렸어요.
그렇지만 사실 작은 회사 경리일이라는 게 업무 강도가 아주 센건 아니거든요. 혼자 세 달 정도 일하니까 일이 익숙해지더라구요. 특근이나 잔업도 해당사항이 없으니 칼퇴하니 시간도 여유로웠어요.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거나 다른 사람 SNS에 들어가며 시간 보내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럴 바에야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나 따자 싶었어요. 사회복지사는 취업도 잘되고 나중에 결혼한다면 재취업도 비교적 용이하거든요.
그렇게 일하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고, 이왕 이렇게 된거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보자해서 사회복지로 한 번 더 도전해본 거예요. 그리고 바로 합격했죠. 사회복지쪽 경쟁률이 낮기도 하고, 3개월 만에 경리일이며 무역일이며 영업일까지 다 배워서 해냈는데 못할게 뭐있냐 자신감도 있었고. 또 떨어지면 회사를 계속 다니면 되니까 불안하지도 않더라구요."
소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어느새 빨래를 다 갠 미주는 믹스커피를 세 잔 탔다. 그리고 세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아 소라의 이야기를 이어 들었다. 미주는 씁쓸하면서도 달짜지근해 중독성 강한 믹스커피처럼 소라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껄 그랬어요. 그때는 마음이 급해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고, 또 복지 쪽 일이 워낙 힘들다고 하니까 겁이 나서 엄두를 못냈거든요. 그런데 막상 실제로 무서운 사수를 만나서 눈물 쏙빠지게 혼쭐나며 일 배우고, 영업팀 부장님의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서류 보며 이런저런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공무원 생활을 하던 중, 제가 진행하는 봉사 프로그램에 남편이 일반인 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인연이 되어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결혼할 때, 남편은 학생이었고 저도 일한지 얼마 안되서 돈은 없었지만 꼬박꼬박 월급은 나오잖아요. 그렇게 작은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했고, 지금은 휴직하고 포닥을 위해 파리에 온거에요.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아니었으면 휴직은 엄두도 못냈을테니 여러모로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때 계속 일반 행정직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으면 합격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합격을 못했을수도 있고 설사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느꼈을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생각하면 안하길 잘했어요. 여기서 남편이 포닥 생활을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저도 복직할거고, 그렇게 둘이 큰 돈은 못 벌어도 각자의 일을 하며 안정적으로 사는게 계획이에요."
소라는 믹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비우며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쏟아냈다. 같은 시청 공무원들끼리는 쉬는 시간에 나누곤 했었던 이야기이지만 가족이나 동료가 아닌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처음이었다.
"제가 말이 너무 많았죠? 사촌 동생 이야기를 들으니까 제 옛날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만. 하하."
"아니에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20대의 시절을 꿈을 쫓다가 잃어버렸었거든요. 굉장히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사촌 동생분도 어쩌면 전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수험생이라는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생각이 매몰되기 쉽거든요. 넓은 세상,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놓치게 되고 말아요. 괜찮으시다면 이모 부탁대로 이 곳에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휴, 여기가 영어권 국가도 아니고, 관광도 일주일이면 다 할텐데요. 더군다나 성수기에는 예약이 거의 빈 자리가 없어서 있을 곳도 마땅치 않고요."
성수기는 이미 예약이 많이 차있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만 나있는 자리도 빼곡하게 예약이 채워지는 중이라 희철이가 지낼 침대하나 마련해주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 더 잘된거 아닌가요? 다른 한인 민박에는 대학생들이 스탭으로 와서 2-3달씩 일한다고 하더라구요. 정식 취업 비자로 오는 건 아니라서 월급을 받는 건 아니지만 숙식을 제공받는거고요. 유럽에서 머물며 휴일에는 여행다니고요."
"스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