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와본 곳을 새롭게 즐기는 방법
"안 피곤하겠어? 1시간 반 정도 걸으면서 다녀야할텐데."
미주는 재경이 걱정되어 말리는 방향으로 이야기해보았다. 재경은 내일 오전 비행기로 다시 카타르에 돌아가야했다. 그것도 손님으로 가는게 아니라 7시간 내내 서서 음식을 나눠주고 불편함없게 챙겨주는 중노동을 하며 가는 길 말이다.
"얘기했잖아. 나 갈 때는 7명만 맡으면 된다고. 아마 갤리 쪽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을걸? 파리 비행에서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나도 야경투어 따라갈래."
"맨날 보는 에펠탑이나 센 강 야경을 뭐하러 본다는거야?"
미주는 재경이 피곤할까봐 다시 한 번 말려보지만, 이번에는 진규와 소라 부부가 재경을 거들고 나섰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가면 재밌죠. "
"맞아요. 이렇게 셋이 가면 오빠는 수환씨랑 계속 연구 얘기, 논문 얘기만 할지도 모르겠어요. 여자분이 같이 가시는게 좋겠어요."
미주는 갑자기 재경의 합류를 쌍수들고 환영하는 진규와 소라 부부를 보며 뭔가 자신만 모르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진규와 수환이 주로 대화를 나누게 될테니 소라가 또래 여성인 재경과 함께 가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래요! 우리 다섯이 갑시다!"
"고마워, 언니!"
"잘 생각하셨어요, 사장님."
"런던과 비슷한 풍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파리라서 그런지 더 낭만적인 것 같아요."
수환은 센 강 한 편에 서서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파리의 야경을 핸드폰으로 담으며 말했다. 재경을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은 너무 자주 본 풍경이라 사진 찍을 생각도 없었다. 그저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 수환의 옆에서 풍경을 바라보거나 멋진 배경 속에 수환의 얼굴을 담아 잘 찍어주며 저녁 산보를 하듯 따라 걸을 뿐이었다. 오늘 야경투어 참가자들은 투어에 목적이 없고, 그저 수다를 떨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뜻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미주가 설명할 때는 입을 다물고 경청해주는 것이 고맙다고나 할까?
"맞아요. 사실 많이 보면 비슷한 느낌이에요. 카타르 항공은 정말 유럽 비행이 많아서, 처음에는 유럽 비행 나오면 정말 쉬지도 않고 돌아다녔는데요. 한 4년 넘어가니까 그 도시가 그 도시 같고 점점 시큰둥해지더라구요."
고요하면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센 강을 바라보던 재경이 수환의 말에 동감하며 말했다.
"그래서 휴가를 써서 일부러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아예 아프리카로 가기도 하고 그래요. 하지만 파리는 언제 와도 좋은 도시예요. 아무래도 대도시다보니 할 것도 많고, 질리지 않더라구요."
"와, 정말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좋긴 한가봐요. 전세계를 지하철타고 다니듯 다닐 수 있다니 말이에요. 공무원들은 상상도 못할 라이프 스타일이네요. 저도 오빠가 포닥 나온거 아니었으면 신혼 여행이나 한 번 멀리 가볼까. 이렇게 외국에서 살면서 여행다닐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하다 휴직을 하고 진규와 함께 파리에 온 소라는 자유로운 재경이 부러운 모양이었다.
"아휴. 인생은 길게 봐야죠. 중동에서 여자 혼자 얼마나 오래 일하겠어요? 대부분 20대에 잠깐 일할 직업으로 여기는 동료들이 많아요. 저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크답니다."
"그래도 젊을 때, 많은 걸 보고 경험한다는 점이 참 부럽네요. 저는 20대를 공무원 시험본다고 집과 동네 도서관만 왔다갔다 하며 보냈어서 아쉬움이 참 많이 남아요."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정작 돌아보면 내가 이루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만이 머릿속을 맴돌아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30대인 것 같았다. 미주 역시 내가 가진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놓친 것에 미련을 느꼈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시간을 지나며 깨닫게 것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놓치게 마련이라는 당연한 진리였다.
"어휴, 이제 사십줄 넘어가는 사람 앞에서 못하는 소리들이 없네요! 둘다 아직 젊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나이에요. 재경이는 좋은 남자를 만나든 이직을 하든 충분히 할 수 있고! 소라씨는 파리에 있는 동안 틈틈히 여행 다니면 되죠!"
"하하. 사장님 말씀이 맞네요."
그렇게 다섯 사람은 두셋씩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다같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어느덧 에펠탑 앞까지 왔다.
"와, 에펠탑이네요!"
"내일 낮에도 다시 와보세요. 낮에 보면 또 느낌이 다르답니다."
수환은 다시 핸드폰을 들어 에펠탑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에펠탑의 야경을 눈으로 담으며 여유있게 즐겼다.
"여기서 우리 다같이 사진 찍어요."
그때, 소라가 단체 사진을 제안했다.
"맞아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섯명이서 찍어봐요."
진규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각도를 맞추며 저마다 에펠탑의 야경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을 한데로 모았다.
"다 들어갈까요?"
"들어갑니다. 사장님, 무릎을 조금만 굽혀주세요. 네, 네. 좋습니다!"
손바닥만한 핸드폰 화면 안으로 에펠탑과 다섯 사람의 얼굴이 옹기종기 모두 담겼다.
'3, 2, 1, 찰칵!'
타이머에 맞춰 사진이 찍혔고, 한 명도 눈을 감지 않고 흔들림없는 사진이 나왔다.
"이건 제가 사장님께 보내드릴게요!"
"그래요, 진규씨."
그렇게 에펠탑을 마지막으로 비쥬네 민박집의 야경투어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제 우리는 민박집으로 가고, 재경이는 바로 호텔로 가면 되겠다."
"응. 언니. 지하철 타고 가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혼자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가려는 재경이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세 사람이 크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 밤에 혼자 가신다구요?"
"소매치기라도 만나면 어쩌시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