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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Oct 18. 2024

두 번째 스탭이 도착했습니다

산타클로스의 등장!

"누나!"


"어, 희철아, 여기야!"


미주는 두 번째 스탭을 맞이하러 샤를 드 골 공항을 다시 찾았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기자와 기숙을 배웅한지 2달 만이었다.


"누나 얼굴 정말 좋아졌네. 살 쪘어?"


"너도 애 낳아봐라."


14살이라는 나이차이. 그리고 샬롯의 돌잔치 이후로는 처음 만났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무척 편안했다. 남동생인 미후가 워낙 이기적인 성격인 탓에 기자의 핸드폰을 새로 구입하는 일이나 모바일 결제를 세팅하는 등의 일을 희철이 종종 도와주었고, 이 때문에 미주는 희철과 연락할 일이 많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미후보다는 사촌동생인 희철이 말도 통하고 더 편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이게 다 먹을거야?"


"어휴. 말도 마. 무게 초과될까봐 출발하는 날 아침에 계속 무게 쟀다가 물건 뺐다가 다시 무게 쟀다가 물건 넣었다가 난리도 아니었어."


"중국에서 환승까지 해서 온다고 피곤할텐데 얼른 가자."


"피곤하긴 했는데 내가 중국은 처음이었잖아. 비록 공항에만 있었지만 중국 음식도 먹어보고 재미있었어. 비행기에는 한국 영화도 없고 자막도 없어서 그냥 영어로 영화도 보고 그랬어. 이제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보기로 했으니까 비행기에서부터 영어로 영화를 본거지. 그리고 중국이지만 영어로 길도 물어보고 주문도 하고 재밌었어. 막상 말하려니 잘 안나오긴 했지만 수능 영어만 8년 공부했는데, 곧 늘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기더라고."


비행기값을 아끼기 위해 중국 항공사를 이용해 경유해서 온 희철. 몸이 조금 고되긴 했지만 가격도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유럽 항공사에 비해 수하물을 23kg나 더 부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는데, 기자와 기숙이 바리바리 싸준 음식들 때문이었다.  




택시를 타고 미주네 아파트로 들어온 희철은 짐을 먼저 풀었다. 몇 개월 동안 지낼 희철의 짐은 배낭 하나와 23kg 짜리 캐리어의 절반이었고, 나머지 절반과 23kg 무게를 꽉꽉 채운 박스 하나는 음식이었다.


파리로의 출발 전, 1주일은 희철뿐만 아니라 기자와 기숙에게도 바쁜 시간이었다. 희철이 비자를 준비하고, 항공권을 알아보고, 유럽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동안, 기자 또한 덩달아 바쁘게 움직였다. 재래시장과 마트, 방앗간을 넘나들며 지난 파리 방문에는 미처 가져가지 못했던 재료를 구매하느라 바빴다. 기자는 외국에서는 구하기 힘들다는 밀떡을 잔뜩 사서 얼려놓고, 희철이 출발하기 직전 열무김치를 갖 담갔고, 급한 날은 비빔국수라도 해서 내라고 양념장을 만들어 숙성시키고 냉동실에 꽁꽁 얼렸다.


기숙은 해외에서 몇 개월 동안 제대로 못 먹을 아들 걱정에 무게가 가벼운 큐브형 국, 누룽지나 인스턴트 잡채 등을 최대한 사서 넣어주었다. 희철은 알아서 먹게싸고 했지만 부족한 주머니 사정에 제대로 외식 한번 하기 힘들꺼라는 생각에 기숙이 남는 자리 하나 없이 빈틈없이 쑤셔넣은덕에 캐리어 속 짐은 지퍼를 열자마자 '펑'하며 부풀어 올랐다.


"이건 뭐야? 떡?"


"응. 엄마가 아들보내는데 떡이라도 맞춰야한다며 영양떡 한 상자 넣어줬어."


캐리어의 가장 위에는 각각 흑미, 백미, 호박으로 만든 찹쌀떡에 먹음직스러운 콩과 밤이 얹어진 영양떡이 가지런히 담긴 떡 한 상자가 있었다.


"냉동실에 얼려놨다가 먹기 한 시간 전에 하나씩 실온에 녹혔다가 먹으래."


"아휴. 뭘 떡까지 해주셨다니."


미주는 떡을 맛 별로 하나씩 식탁에 꺼내 올려두고는 상자채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희철이 출발하는 전날, 기자는 아예 먹을 거리를 싸들고 와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함께 짐을 쌌다고 하니... 기자와 기숙의 등쌀에 희철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걱정까지 드는 미주였다.


"박스에 든 음식들은 민박집으로 가져가야겠다. 일단, 짐 푸르고 쉬었다가 저녁에 같이 짐들고 민박집으로 가자. 조금 일찍가서 냉장고에 음식 집어넣고, 야경투어 가면 될 것 같아."


"응. 일단 좀 씻고 싶어."


"그래. 그럼 캐리어랑 배낭 가지고 방으로 가자."


미주는 미리 준비해 둔 작은 방으로 희철을 안내했다. 희철이 오기로 결정하고 미주와 루이는 방 배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추가 가구도 구입해야하니 주말마다 이리저리 짐을 옮기고 가구를 배치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두 사람이 결정한 방 배정은 이랬다. 안방은 미주와 샬롯이 기존 더블베드를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안방에 샬롯의 옷을 갖다 놓았다. 샬롯이 사용하던 작은 방은 희철이 사용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거실 한 쪽에 철제 싱글 침대를 갖다두고 커텐을 쳐서 루이가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부엌 식탁 맞은 편에 샬롯의 공부 책상을 두었다. 미주가 민박집을 시작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고, 부엌 살림이나 장식품들이 민박집으로 옮겨가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와, 방 좋은데? 우리집 내 방보다 더 좋아!"


"그래? 샬롯이 쓰던 방이야. 침대는 샬롯이 쓰던 거지만 여기 행거랑 책상, 의자는 따로 샀어."


"누나는 호주에서 베란다에서 잤었다며. 거기에 비하면 완전 궁궐이지."


"그렇게 생각해주니 다행이네. 욕실은 하나 뿐이라 넷이 같이 써야해. 그렇지만 사용하는 시간이 겹치지 않아서 불편하지는 않을거야. 민박집은 엄청 일찍 출근해야하거든."


"집에서도 그러는데 뭘"


"그러면 씻고 나와. 점심 먹고 나면 근로계약서도 쓰자."


"근로계약서? 나 진짜 취업한 것 같아."


"아르바이트도 취업이라면 취업이지 뭐. 얼른 씻고 와. 점심으로 비빔국수 해줄게."


"좋아! 비행기에서 먹은 음식들이 느끼했어서 매운 음식 먹고 싶어."


"매운 국수랑 떡을 먹으면 궁합도 딱이다! 천천히 씻고 짐도 풀고 있어. 만들려면 좀 시간 걸리니까."


큰 냄비에는 물만 부어 끓이고, 작은 냄비에 물을 받아 계란을 넣어 끓이기 시작한 미주는 곧장 박스 안에서 소면 한 봉지와 열무김치, 양념장을 꺼냈다. 열무김치는 한국에서 파리로 오는 동안 잘 익어 딱 먹기 좋았다. 적당한 반찬통을 찾아 열무김치를 담고는 양념장도 풀었다. 꽁꽁 얼었던 양념장은 꼭 슬러시처럼 적당히 녹아있었다. 깨끗이 씻어두었던 유리 파스타소스 병에 양념장을 담자 꼭 맞게 들어갔다. 마지막은 소면이었다. 얼마나 에어캡으로 둘둘 말아 박스에 담았는지 소면은 크게 부서지지 않고 잘 왔다. 소면 두 봉지는 총 20인분이니 열무김치가 더 시기 전에 민박집 손님들에게 두어번 해주면 딱 알맞게 사용할 것 같았다. 


재료를 다 정리하자 큰 냄비에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미주는 소면을 3인분만큼 움켜쥐어 냄비에 촤르르 펼쳐 넣었다. 곧 아랫부분이 부드러워진 소면을 젓가락으로 휙휙 젓자 면이 모두 끓는 물 안에 들어갔다. 3분 30초 후, 바로 소면을 소쿠리에 건져내고 찬물로 비비듯 씻어냈다. 그리고 커다란 스테인레스 볼에 면을 넣고 열무김치와 양념을 넣어 비볐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한 바퀴 돌려 파스타용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는 곧장 계란이 끓고 있는 냄비의 불을 끄고, 게란을 찬물에 식혀 껍질을 깠다. 계란을 절반으로 잘라 국수 위에 얹어내니 완성이었다. 식탁 위에 국수 두 그릇을 놓고, 말랑말랑해진 영양떡을 가져와 비닐을 벗기고 한 입 크기로 잘라 접시에 올렸다. 매운 국수를 먹은 후, 입가심이 될 후식이었다.


"아, 맛있는 냄새 난다."


"얼른 와서 앉아."


미주는 식탁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장시간 비행 후라 배가 고팠을 희철의 접시에는 2인 분이, 미주의 접시에는 1인분의 국수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접시가 비워지는 속도는 희철이 훨씬 빨랐다. 


'후루룩.'


미주는 아직 국수를 절반 정도 밖에 먹지 못했을 때, 희철은 어느 새 접시를 다 비우고는 영양떡을 한 입씩 집어넣고 있었다.


"정말 맛있다. 딱 엄마나 이모가 만들어준 국수 맛이야."


"뭐, 거의 엄마가 만들어준거나 다름없지. 나야 있는 재료를 합치기만 했으니까."


"큭큭. 이 양념장도 직접 담근 매실액, 국산 들깨로 방앗간에서 직접 간 들깨가루, 역시 국산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로 만든 거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어. 그래서인지 정말 맛있긴 해."


음식을 할 때 재료 하나 허투로 넣지 않는 기자는 이번 양념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비빔국수를 다 만들고도 남을 만큼 양념장을 많이 만들어 보냈는데, 남은 양념장으로는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라는 의도였다. 별다른 나물반찬없어도 양념장과 참기름만 맛있으면 되는게 비빔밥이었으니까.


"아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얘기다. 저 열무 김치는 마치 내가 담근 것 같아. 어찌나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는지."


- 얘, 김장 김치는 다 먹었니?

- 아직 한 포기 남았어요.

- 아휴, 이제 날 더워지면 김장 김치를 어디에 쓴다니? 김치냉장고도 없으니 그건 얼른 찌개를 끓여서라도 써라. 이제 열무김치나 오이소박이를 먹어야지. 그래, 열무김치를 보내야겠다. 오이야 전세계 어디서 구할 수 있는거니까 오이소박이는 시간되면 네가 직접 담그고.

열무김치는 금방 푹 쉬니까 받으면 받자 마자 먹어야한다. 반찬으로 먹으면 빨리 안없어지니까. 그래! 열무비빔국수를 아예 만들어서 아침으로 주면 되겠다. 맑게 계란국 끓여서 내면 손도 안가고 좋지. 내가 양념장도 아예 만들어서 보낼게.

- 여기도 고추장이랑 간장 구할 수 있어요. 양념장이야 제가 만들면 되요.

- 무슨 소리냐. 지난 겨울에 직접 담근 매실액 하고 그래! 아예 방앗간 가서 국산 들깨랑 고추로 들깨가루랑 고추가루 만들어서 내가 양념장도 만들어보내마. 작년 김장할 때 산 고추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래, 그걸로 열무김치 담그면 되겠다. 다 고춧가루 안내고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길 얼마나 다행이니. 그 고추가 말이다...


"아, 정말 말만 들어도 기가 다 빨리는 것 같아."


희철은 설거지를 하며 미주의 이야기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기자의 성격은 희철도 잘 알고 있었다. 기자가 기숙의 집에 올 때마다 별의별 가루를 만들어오곤 하는데, 괜히 방에서 공부하던 희철까지 불려나가 강제로 몸에 좋지만 맛없는 가루라거나 시중에서는 절대 사먹을 수 없다는 직접 방앗간에 가서 만들어온 음식을 먹어야만 했었다. 먹으면서 쉴새없이 알려주는 음식에 대한 정보는 덤이었다.


"후우."


희철의 말에 나지막히 한순을 내쉰 미주는 영양떡을 입에 하나 넣었다. 떡을 오물오물 씹으며 늘 품었던 의문을 떠올렸다.


'왜 엄마는 음식에 집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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