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차이를 극복한 친구?
설거지를 마친 희철은 이제 자신의 개인 짐을 정리하기 위해 샬롯의 방으로 들어갔고, 미주는 팔을 걷어붙여 희철이 가져온 음식 재료들을 마저 정리했다. 혹시라도 샐까봐 둘둘 말려있던 랩과 에어캡을 한데 모아 버리고, 작은 카트에 민박집으로 가져갈 재료를 한데 모으고, 집에 보관할 재료는 냉장고와 팬트리 등 적당한 곳을 찾아 넣고 나니 생각보다 빨리 정리가 끝났다.
마지막 남은 영양떡을 하나씩 입에 넣어 오물오물 거리며 접시 설거지까지 마친 미주는 이제 곧 집에 도착할 샬롯이 먹을 간식을 식탁에 미리 챙겨 올려두었다. 기자가 일주일동안 고심해서 쌌다는 상자에는 샬롯이 좋아하는 한국 과자가 종류별로 들어있었는데, 한꺼번에 주지 않고 조금씩 나눠 줄 생각이었다. 작은 접시에 소포장된 과자 2종류와 영양떡 한 개를 올려놓으며 미주는 계속해서 해결되지 않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기자는 먹을 것에 집착했다. 사실, 기자는 요리만으로 따지면 훌륭한 어머니어자 아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미주가 독립하기 전까지, 기자가 가장 정성을 쏟은 것은 콩물이었다. 기자는 탈모 유전이 있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딸의 여성호르몬을 위해 기자는 흑임자와 검은콩을 따로 보관해두고, 매일 저녁 미리 불려두었다가 아침마다 믹서기에 갈아 주었다.
문제는 비릿한 콩냄새와 믹서기에 거칠게 갈려진 콩의 식감 때문에 마시기가 무척이나 곤란했었지만, 가족들은 콩물 한 잔을 다 마시기 전까지는 식탁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불평을 해보았자 밖에서는 사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는 타박만 떨어질 뿐이었다.
-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줬더니, 은헤도 모르는 것!
기자가 먹는 것에 온갖 정성을 들여 자신을 키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주는 기자가 이 소리를 할 때마다 말문이 턱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은 수십, 수백가지가 있지만 목에 딱 걸려 더이상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기자의 음식은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해야할 것이지만, 동시에 미주의 목을 옥죄어오는 쇠사슬처럼 느껴졌다. 미주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저 식탁에 놓은 샬롯의 간식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마망(Maman, 엄마)! 삼촌왔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샬롯이 집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온 삼촌이 몇 개월 동안 함께 산다는 말에 무척 설레었던 샬롯은 얼마나 열심히 뛰어왔는지 볼이 발그레해져있었다.
"아휴, 숨찬 것 좀 봐! 삼촌 지금 샬롯 방에서 쉬고 있어."
미주는 시차 적응도 안되었을 희철이 잠깐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희철은 샬롯이 집에 온 소리를 드듣자마자 방문을 열고 나와 샬롯에게 인사를 건넸다.
"봉주르(Bonjour), 샬롯?"
거의 유일하다시피 알고 있는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네자 샬롯이 방긋 웃었다. 처음 만나는 아니 자신의 돌잔치 이후 처음 만나는 삼촌이지만 샬롯은 지구 건너편에서 온 삼촌이 무척 반가웠다. 얼마 전에는 두 분의 할머니가 오셔서 매일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고, 함께 시내와 공원에 놀러다니고,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선물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누군가 온다는 것은 무척 신나는 일이라고 학습했기 때문이었다.
"Um, I, prepared presents for you!"
희철은 샬롯을 만나면 말해야할 문장을 내뱉었다. 몇 번을 연습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만든 문장이니 문법이 틀리진 않았겠지 생각하며 샬롯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발음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선물을 사왔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미 발그레해진 샬롯의 얼굴이 더 상기되었다.
"올랄라(Oh là là), 샬롯! 한번 가서 확인해볼래?"
그 모습을 본 미주가 샬롯을 데리고 함께 희철이 짐을 푼 방으로 갔다.
"Come on, Charlotte!"
원래 자신의 방이었지만 새로운 가구가 들어와있고 희철이 짐을 풀어서인지 샬롯은 익숙한 공간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샬롯은 곧 희철이 건네는 선물에 금방 마음을 빼앗겼다.
"나 이거 엄마 핸드폰에서 봤어요!"
희철이 사온 선물은 국내 유명 메신저 캐릭터 굿즈였다. 가방에 걸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 키링, 교통카드와 동전을 넣고 들고다닐 실리콘 지갑 외에도 각종 학용품들을 꺼내주었다.
"세상에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어떤 캐릭터를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산다고. 다 자잘한거라서 돈 많이 안 들었어."
미주는 아직 학생인 희철이 행여나 돈을 많이 썼을까봐 걱정이 되어 한 마디 했지만, 희철은 미주의 걱정을 일축하고 샬롯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Do you like it? 아니, 아니. Do you like these presents?"
"Yes! 고마워요(Merci)!"
"다행이다. 캐릭터를 알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나봐."
샤롯은 희철에게 가방에 키링을 달아달라고 하거나, 선물받은 펜으로 그림을 그려 선물이라며 주기도 하는 등 한참 가지고 놀더니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삼촌이랑 나가고 싶어?"
"네. 동네 소개시켜줄거예요."
"동네 소개?"
미주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시차적응도 안되어 피곤할 희철에게 조카와 놀아달라고 대뜸설거지를 마친 희철은 이제 자신의 개인 짐을 정리하기 위해 샬롯의 방으로 들어갔고, 미주는 팔을 걷어붙여 희철이 가져온 음식 재료들을 마저 정리했다. 혹시라도 샐까봐 둘둘 말려있던 랩과 에어캡을 한데 모아 버리고, 작은 카트에 민박집으로 가져갈 재료를 한데 모으고, 집에 보관할 재료는 냉장고와 팬트리 등 적당한 곳을 찾아 넣고 나니 생각보다 빨리 정리가 끝났다.
마지막 남은 영양떡을 하나씩 입에 넣어 오물오물 거리며 접시 설거지까지 마친 미주는 이제 곧 집에 도착할 샬롯이 먹을 간식을 식탁에 미리 챙겨 올려두었다. 기자가 일주일동안 고심해서 쌌다는 상자에는 샬롯이 좋아하는 한국 과자가 종류별로 들어있었는데, 한꺼번에 주지 않고 조금씩 나눠 줄 생각이었다. 작은 접시에 소포장된 과자 2종류와 영양떡 한 개를 올려놓으며 미주는 계속해서 해결되지 않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기자는 먹을 것에 집착했다. 사실, 기자는 요리만으로 따지면 훌륭한 어머니어자 아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미주가 독립하기 전까지, 기자가 가장 정성을 쏟은 것은 콩물이었다. 기자는 탈모 유전이 있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딸의 여성호르몬을 위해 기자는 흑임자와 검은콩을 따로 보관해두고, 매일 저녁 미리 불려두었다가 아침마다 믹서기에 갈아 주었다.
문제는 비릿한 콩냄새와 믹서기에 거칠게 갈려진 콩의 식감 때문에 마시기가 무척이나 곤란했었지만, 가족들은 콩물 한 잔을 다 마시기 전까지는 식탁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불평을 해보았자 밖에서는 사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는 타박만 떨어질 뿐이었다.
-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줬더니, 은헤도 모르는 것!
기자가 먹는 것에 온갖 정성을 들여 자신을 키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주는 기자가 이 소리를 할 때마다 말문이 턱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은 수십, 수백가지가 있지만 목에 딱 걸려 더이상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기자의 음식은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해야할 것이지만, 동시에 미주의 목을 옥죄어오는 쇠사슬처럼 느껴졌다. 미주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저 식탁에 놓은 샬롯의 간식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마망(Maman, 엄마)! 삼촌왔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샬롯이 집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온 삼촌이 몇 개월 동안 함께 산다는 말에 무척 설레었던 샬롯은 얼마나 열심히 뛰어왔는지 볼이 발그레해져있었다.
"아휴, 숨찬 것 좀 봐! 삼촌 지금 샬롯 방에서 쉬고 있어."
미주는 시차 적응도 안되었을 희철이 잠깐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희철은 샬롯이 집에 온 소리를 드듣자마자 방문을 열고 나와 샬롯에게 인사를 건넸다.
"봉주르(Bonjour), 샬롯?"
거의 유일하다시피 알고 있는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네자 샬롯이 방긋 웃었다. 처음 만나는 아니 자신의 돌잔치 이후 처음 만나는 삼촌이지만 샬롯은 지구 건너편에서 온 삼촌이 무척 반가웠다. 얼마 전에는 두 분의 할머니가 오셔서 매일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고, 함께 시내와 공원에 놀러다니고,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선물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누군가 온다는 것은 무척 신나는 일이라고 학습했기 때문이었다.
"Um, I, prepared presents for you!"
희철은 샬롯을 만나면 말해야할 문장을 내뱉었다. 몇 번을 연습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만든 문장이니 문법이 틀리진 않았겠지 생각하며 샬롯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발음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선물을 사왔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미 발그레해진 샬롯의 얼굴이 더 상기되었다.
"올랄라(Oh là là), 샬롯! 한번 가서 확인해볼래?"
그 모습을 본 미주가 샬롯을 데리고 함께 희철이 짐을 푼 방으로 갔다.
"Come on, Charlotte!"
원래 자신의 방이었지만 새로운 가구가 들어와있고 희철이 짐을 풀어서인지 샬롯은 익숙한 공간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샬롯은 곧 희철이 건네는 선물에 금방 마음을 빼앗겼다.
"나 이거 엄마 핸드폰에서 봤어요!"
희철이 사온 선물은 국내 유명 메신저 캐릭터 굿즈였다. 가방에 걸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 키링, 교통카드와 동전을 넣고 들고다닐 실리콘 지갑 외에도 각종 학용품들을 꺼내주었다.
"세상에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어떤 캐릭터를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산다고. 다 자잘한거라서 돈 많이 안 들었어."
미주는 아직 학생인 희철이 행여나 돈을 많이 썼을까봐 걱정이 되어 한 마디 했지만, 희철은 미주의 걱정을 일축하고 샬롯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Do you like it? 아니, 아니. Do you like these presents?"
"Yes! 고마워요(Merci)!"
"다행이다. 캐릭터를 알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나봐."
샤롯은 희철에게 가방에 키링을 달아달라고 하거나, 선물받은 펜으로 그림을 그려 선물이라며 주기도 하는 등 한참 가지고 놀더니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삼촌이랑 나가고 싶어?"
"네. 동네 소개시켜줄거예요."
"동네 소개?"
"네! 오늘 자드(Jade)가 공원에 있을까?"
샬롯은 동네를 다니며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삼촌을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다. 평소 들리던 가게에도 가자고 할 것 같고, 우연히 친구를 만나지 않을까 괜히 공원을 서성일 것이 뻔했다. 기대감이 넘치는 샬롯의 얼굴을 보며 미주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시차적응도 안되어 피곤할 희철에게 조카와 놀아달라고 대뜸 부탁하는 것 같아서였다.
"동네 구경 좋다. 샬롯이랑 나갔다가 민박집 갈 시간 전에 맞춰 올게."
희철은 핸드폰을 들고 나갈 채비를 하며 오히려 샬롯의 제안을 반겼다. 동네 구경을 하고 싶기도 했고,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동네에 익숙한 샬롯과 함께 다닌다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먼 나라에서 살고 있는 샬롯이 유일한 조카였고, 이렇게 어린 아이와 둘이 있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처음 보는 것과 다름없는 자신을 잘 따르는 샬롯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피곤할텐데......"
"아니야.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찌그려져 왔더니 맑은 공기를 마시며 좀 움직여보는게 좋겠어. 샬롯이랑 제법 대화도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 둘이 말이 잘 통한다니 다행이다. 동네 구경 한번 하고 와. 너도 어차피 익숙해져야지."
미주는 두 손을 꼭 잡고 현관을 나서는 두사람을 바라보며 어쩌면 샬롯이 희철의 적응을 도와줄 친구가 되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샬롯이 한국어는 못하지만 영어는 할 줄 아니, 서로 대화도 통하고 말이다.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쓰는 샬롯이지만 미주와 루이는 주로 영어로 대화하기 때문에 영어도 제법 할 줄 알았다.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미주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언어 지연이 있었던터라 이제는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영어를 제법 똑부러지게 말하는 샬롯의 모습에 감사하고 있었다. 영어 회화는 나보다 조금 수준이 나은 사람과 대화할 때 가장 많이 늘었다. 오히려 상대가 너무 잘하면 잘 알아듣지 못하고 위축만 되기도 했기 때문에, 샬롯과 희철 두 사람의 조합이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의 말대로 샬롯은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이해할 필요도 있었고. 미주는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개며 두 사람이 돌아오기 전까지 부지런히 밀린 집안일을 하나씩 하기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