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내일은 아무 실수도 하지 않은 새날
아! 아주머니, 내일은 아직 아무 실수도 하지 않은 새날이라고 생각하니 즐겁지 않으세요?”
“내가 보증하는데 말이다. 틀림없이 넌 내일도 실수를 저지를 거다. 너처럼 실수를 자주 하는 아이는 처음 본다.”
앤이 풀이 죽어 말했다.
“맞아요.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게도 장점이 하나 있는데, 알고 계세요? 전 똑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거든요.”
“저런, 저런……. 끊임없이 새로운 실수를 저지르니 장점이 있어도 그게 그거지.”
“어머, 아주머니, 정말 모르세요? 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에는 틀림없이 한계가 있을 거예요. 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여요.”
-빨강머리앤 중
작은 시골 마을인 에이본리에 큰 사건이 생겼는데 바로 새로운 목사 부부가 부임한 것이다. 젊은 목사 부부는 시골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앤은 우아하고 교양있는 앨런 사모에게 무척이나 잘 보이고 싶었다.
새로 부임한 목사님은 에이본리의 각 가정을 방문하는, 한국으로 치면 목회 심방이 있었고, 앤은 앨런 부인에게 대접할 레이어 케이크를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황금색으로 케이크 시트를 굽고, 빨간 잼을 발라 층을 쌓았다. 앤이 정성껏 만든 케이크를 맛본 앨런 부인의 표정이 이상했다. 바닐라 향료 대신 진통제를 넣었기 때문이다. 앤은 잘 보이고 싶은 앨런 부인 앞에서 실수해서, 그리고 에이본리에 자신의 실수가 소문날까 두려워 그만 자신의 방으로 도망가고 만다.
앨런 부인은 절망에 가득 차 우는 앤에게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재미있는 실수일 뿐’이라며 위로해준다. 그리고 즐겁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 돌아간다. 앤은 한번 실수를 저지르면 깨달음을 얻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니 그 한계에 다다르면 실수도 끝날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실수에 대해 과하게 책망하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앤의 사고는 멋있었다.
나는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해내는 것에 집착하며 살았다. 나는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 가정에서 나는 ‘영웅’이라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업을 가져 우리 가족이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것을 외부에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저렇게 딸이 똑똑한데 저 집안에 문제가 있을 리 없지’라고 보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영웅’이라는 역할은 나를 절박하고 처절하게 만들 뿐이었다. 내 생각을 경직되게 만들었고, 스스로 만들어놓은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채찍질했다. 생각은 경직되었고, 흑백 논리적인 생각에 사로잡혔고, 유연성과 포용력이 부족했다. 열심히 한다고 하여 노력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과도하게 내가 설정한 목표를 고집하며 내 능력이나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게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 낭비만 할 때도 많았다.
초록 지붕 집을 둘러보고 우리는 기념품 가게에서 앤의 얼굴이 그려진 산딸기 주스를 두 병 구매해, 초록 지붕 집 앞 잔디에 낮아 마셨다. 눈앞에는 ‘유령의 숲’이 보인다. 산딸기 주스는 정확히는 라즈베리 향이 나는 탄산음료였는데, 사실 별다른 맛은 없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초록 지붕 집 앞 잔디에 앉거나 서성이며 산딸기 음료를 하나씩 마셔본다. 저마다 앤이 만들어냈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떠올리며 말이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이러했다. 앤은 다이애나에게 산딸기 주스(Raspberry Cordial)를 주었는데 다이애나가 주스를 마시고 기분이 좋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진다. 알고 보니 앤이 딸기 주스로 준 병은 포도주였고, 다이애나는 잔뜩 술에 취해버렸다. 앤이 일부러 다이애나에게 술을 먹였다고 생각한 베리 부인은 화가 단단히 나서 두 사람이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할 정도였다.
앤은 크고 작은 실수와 말썽을 일으킨다. 순식간에 일어나버린 사건·사고를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웃음도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은 어찌어찌 잘 해결이 되어간다. 이렇게 실수를 통해 성장해가는 앤의 모습은 나에게 '실수해도 괜찮아. 누구나 일을 그르칠 때가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실수해도 주위로부터 이해받을 수도 있고 또 이를 만회할 기회가 많다.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실수의 크기도 대부분은 인생에 직격타를 줄 만큼 크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점점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을 느끼는 것 같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도 한 번의 선택이나 실수가 게임에서 탈락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래서 앤의 실수를 보며 마음껏 웃고 위로를 받는다. 실수 후 “오늘 중요한 교훈을 새로 배웠어요. 오늘 실수 덕분에 이제는 너무 낭만만 좇는 버릇을 고치게 되었어요.”라고 반성하는 앤에게 아래와 같이 말해주었던 매슈처럼. '아직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누구나 실수를 해.'라고 스스로 말해주며.
너의 낭만을 다 버리진 마라, 앤. 낭만이 조금 있는 건 좋은 거란다. 물론 너무 많으면 곤란하지. 하지만 조금은 남겨두렴. 조금은 말이다.
Q. 지금 생각하면 귀여웠던 실수가 있나요?
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