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바닷가 길이라니, 근사해요
바다는 정말 경이롭지 않아요? 언젠가 메리스빌에 살 때였는데 토머스 아저씨가 화물차를 빌려와서 우리를 전부 태우고 16km 정도 떨어진 바닷가로 놀러 갔어요. 그날도 내내 아이들을 쫓아다녀야 했지만, 그래도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즐거웠어요. 그런데 여기 바닷가가 메리스빌의 바닷가보다 더 멋있어요. - 빨강머리앤 중
<빨강머리앤>의 소설 초반 큰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매슈와 마릴라는 농장일을 도와줄 ‘남자’아이를 원했다는 사실이었다. 중간에 스펜서 부인의 실수로 여자아이인 앤이 온 것이다. 충격을 받은 앤은 명대사를 남긴다. “저는 지금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어요!”
앤이 초록지붕집에 온 다음 날, 마릴라는 앤을 데리고 마차를 타고 스펜서 부인이 사는 흰 모래 마을로 향했다.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듣고, 앤을 돌려보낼 요량이었다.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내 지느냐, 초록색 지붕집에 남느냐가 결정되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앞둔 앤은 무척이나 긴장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 풍경을 보는 순간, 앤은 걱정과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현재의 드라이브를 즐기기로 한다. 앤에게 있어서는 다시 오지 못할 수 있는 순간이니 말이다.
나 또한 앤이 마릴라와 함께 흰 모래마을로 갔던 그 해안가를 따라 달렸다. 물론, 마릴라와 앤은 마차를 타고 갔고, 우리는 자동차를 탔지만 말이다. 해안가를 달리며 붉은 절벽들을 보았다. 앤이 현실의 고단함과 절망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흙에는 철이 많아 붉은색을 띤다. 풍부한 토양 덕에 감자가 이 지역의 특산물이다. 매슈 역시 감자 농사를 지었다. 붉은 절벽과 반짝이는 바다, 그리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보통의 모래사장과는 다른 붉은 색 때문인지 모래사장도 강렬하게 들어왔다. 잠시 비치에 내려 아이와 함께 맨발로 해수욕장을 걷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닷물을 느꼈다.
"우리 바다 보러 가자!"
교회 주일학교 교사 모임이 끝나고 한 오빠가 외쳤다.
"바다요?"
나는 집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웅성웅성하더니 이내 교회 봉고차 안에 인원 맞게 교사들이 앉았고 휩쓸려 같이 바다로 갔다.
'도대체 그 먼바다를 이 저녁에 어떻게 간다는 거야?'
하지만 나의 걱정도 잠시, 몇십 분 달리고 나니 바다에 도착했다. ‘서울에도 이렇게 가까운 바다가 있다고?’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여학생 둘이 서로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A: 나 기분이 너무 울적하고 생각할 게 많아서 바다에 갔어.
B : 너 인천 갔구나.
A : 어떻게 알았어?
B : 여기서 갈 바다가 인천밖에 더 있냐? 그래서 생각은 잘 정리하고 왔어?
'생각하러 바다로 간다고?' 무려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었지만…. 나는 A가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인천을 간 다음 그곳에서 다시 택시나 마을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갔다고 생각했다. 인천까지 지하철이 연결되어있고,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인천 바닷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훌쩍 다녀왔던 그 월미도가 인천이라는 것도 20대 후반에야 알았다.
지독하게도 내가 살던 사대문 안 외에는 몰랐던 아이였다. 나의 엄마는 서울을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평생 살았다고 한다. 진작 알았으면 지방이나 신도시의 저렴하고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걸…. 지방에 가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단다. 그 영향인지 나 또한 집에서 지하철로 20분 걸리는 대학에 붙었을 때도 내가 공부를 못하니 변두리 대학을 간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서울 촌년'이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런 나의 좁은 시야를 넓게 해준 계기는 여행이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터키였다. 이스탄불은 이슬람 문화와 유럽의 건축 양식이 한대 어우러진 묘한 도시였다. 그 이국적인 풍경에 푹 빠졌다. 이십 대 초반에 접한 새로운 문화와 풍경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꽉 틀어박혀 있던 좁은 나의 시야와 생각의 폭을 조금씩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은 나를 다른 여행으로 이끌었고, 그 여행은 나를 또 다른 여행으로 이끌었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아름다운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제 처지를 그만 잊어버리고만 앤처럼 나는 여행지에서 며칠이나마 나의 현실을 잊어보았다. 여행지에서는 나는 나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고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현실에서 느꼈던 중압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지구의 중력을 느끼며 살던 사람이 잠시 달나라에서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는 체험을 한 것과 같았다. 한번 느낀 해방감과 자유로움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 통제와 억압, 그리고 방임하는 부모, 그리고 종교로 중독되었던 나에게서 벗어났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과 평화로움을 맛보기로 보여준 것이다.
나는 이러한 평화와 해방, 자유로움, 가벼움을 여행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서도 느끼고 싶어졌다. 일 년에 한두 번의 여행은 나에게 자유로움에 대한 갈증을 부추겼다. 나는 여행지에서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얽매는 쇠사슬을 하나씩 끊어내기 시작했다. 여행의 낭만은 내가 언제 행복하고 즐거운지를 알려주었다.
Q. 지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나만의 탈출구는 무엇이 있나요? 여행도 좋고, 영화도 좋고, 뭐든 좋아요!
앤의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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