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에게 붙여주고 싶은 이름

Chapter 6. 잘자요, 반짝이는 호수님!

by 썸머


제목을 입력하세요 - 2023-07-13T181750.814.jpg


초록지붕집의 모티브가 된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큰 연못이 있다. 소설에는 ‘반짝이는 호수(Lake of Shining Waters)’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소설 속에서 불렸던 정식 지명은 ‘배리 연못’인데, 다이애나 배리의 아버지 배리 씨의 집이 호수 위편에 위치해서 에이본리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앤은 이 호수를 ‘반짝이는 호수’라며 자신만의 이름으로 불렀다.


사실 나는 <빨강머리앤> 이야기를 하도 보고 또 봐서인지 '반짝이는 호수'라는 표현이 그저 '반짝반짝 작은 별'의 동요 구절처럼 타성에 젖은 표현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호수니까 반짝인다고 붙여놨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크고 작은 연못들을 보니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분명 연못(Pond)이라고 지명에 적혀있지만, 한국에서 보던 연못과는 규모가 달랐다. 그런 연못들이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는 곳곳에 있었다. 눈앞에 반짝이는 호수를 마주하니 이렇게 예쁜 곳을 '배리 연못'이라고 부르다니! '반짝이는 호수'가 맞는구먼!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IMG_1871 (1).jpg [캐번디시(Cavendish)의 초록지붕집 유적지로 가는 길에 위치한 반짝이는 호수(Lake of Shining Waters)에서 잠시 아이를 뛰어다니게 했다.]


그저 연못에 불과할 수 있지만 나는 눈앞에서 ‘반짝이는 호수’를 보았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되었다.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아이와 함께 배리 연못 근처를 돌아다니며 잠시 놀기도 했다. 여러 들꽃이 피어있고, 햇빛은 밝고 하늘은 푸르렀다. 이 호수로 앤과 친구들은 주일학교 소풍을 오기도 했다. 나무 보트를 타기도 하고, 잔디밭에서 간식을 먹고 한참을 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말이다. 나도 마치 소풍을 잠시 나온 것 같았다. 아이는 잔디밭을 뛰어다녔고, 남편은 멋진 풍경을 부지런히 사진으로 담고, 나는 내가 주일학교 소풍을 나온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잠시 느꼈다.


앤에게는 여러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앤(Anne)이라는 평범한 이름이다. 그래도 ‘앤(Ann)’보다는 한 자라도 더 있는 ‘앤(Anne)’이 더 좋다고 느껴졌는지 항상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는 < 끝에 ‘e’가 붙은 앤>이라고 강조했다. 짧고 단순한 이름은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쉽지만, 앤은 멋들어지고 장황하고 긴 이름을 꿈꾸었다. 그래서 앤은 자신을 ‘코딜리어’ 공주라고 상상하기도 했고, 마음 친구의 이름 역시 ‘다이애나’라는 아주 길고 멋들어진 이름을 가져 행복했다. 그 때문인지 초록지붕집의 이곳저곳을 자신이 이름 붙여주기도 하였다.


이름은 단지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서 불리는 존재의 정체성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나의 필명을 새롭게 만들었다. 왠지 강렬한 햇빛과 푸른 하늘이 떠오르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 이름이 나에게 새로운 정체성이 주어일까? 필명으로 활동하면 실제 나의 나이를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새로운 정체성과 삶을 선물해주었다.



IMG_20211006_094122_329.jpg




Q. 당신의 내면아이에게 불러주고 싶은 이름이 있나요?




앤의 한마디가 필요하다면?

https://www.ciderhealing.com/test/anne-affirm/

keyword
이전 06화예쁜 것만 보며 살기